<호수의 이방인> 포스터. 프랑스에서 2013년 개봉한 이 영화가 최근 국내에도 소개됐다.

<호수의 이방인> 포스터. 프랑스에서 2013년 개봉한 이 영화가 최근 국내에도 소개됐다. ⓒ (주)레인보우 팩토리


프랑스에서 2013년 개봉해 제6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한 알랭 기로디 감독의 영화 <호수의 이방인>이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게이들의 만남의 장소인 호수를 찾은 프랑크(피에르 델라돈챔프스 분)가 매력적인 남자 미셸(크리스토프 파오우 분)을 만나 매혹되지만 이후 프랑크가 우연히 목격한 살인사건이 그들의 관계를 시험한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특별한 공간의 변화없이 숲과 호수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을 관조한다. 호수는 게이들이 만남을 주선하거나 그냥 시간을 때우는 장소이고, 숲은 그들이 만나 욕망을 발산하는 공간으로 설정된다. 주인공 프랑크는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기도 하고 즉흥적인 만남을 통해 숲에서 섹스를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미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보통 퀴어를 다룬 영화가 퀴어 당사자의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이성애적 외부세계로부터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를 등장시키는데 이 영화는 호수밖에서 병렬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지는 않는다.  <호수의 이방인>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영화의 많은 장면이 파란 호수와 숲을 카메라로 관조한다. 호수는 결국 이성애적 세계로부터 떨어져 욕망과 평화를 찾는 곳이다.

 이 영화에서 호수라는 공간은 특별한 속성을 지닌다.

이 영화에서 호수라는 공간은 특별한 속성을 지닌다. ⓒ (주)레인보우 팩토리


감독 알랭 기로디는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내게 숲과 호수는 그 자체로 시적이고 관능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원하는 모든 요소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자연물의 순간 순간을 포착해 가며 하나의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특별한 배경음악 없이 숲속에서 불어오는 강렬한 바람과 호수의 물결소리가 음악을 대신한다.

그러나 미셸은 호수의 평화를 파괴한 살인자다. 아직 아무도 그가 범인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마음을 놓고 올 수 있는 호수라는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되자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외부인이 출입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형사가 수사를 위해 호숫가를 휘젓고 다니며 알리바이를 캐고 다닐 때 더욱 더 그렇다.

미셸의 살인으로 호수의 평화는 파괴된다. 많은 이들이 대안적 공간으로 선택한 이곳에 오는 횟수를 줄인다. 실제로 프랑크가 느끼는 공포감은 스크린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된다. 프랭크에게 자신이 자유롭게 욕망할 수 있는 공간에서 평화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이성애적 규범이 가하는 폭력에 준하는 공포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두운 숲 한가운데 선 프랑크는 미셸을 자꾸만 부른다. 방금 미셸이 또 누군가를 살해하는 광경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공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프랭크는 갈피를 못 잡고 영화는 끝이 난다.

성소수자에게 있어서 대안적 공간은 어떻게 인식되는가, 그리고 그 공간이 파괴되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를 알랭 기로디 감독은 <호수의 이방인>을 통해 충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을 못할 수도 있었다. 남성들이 나체로 등장하는 퀴어영화가 성적 표현에 상당히 민감한 국내의 등급심의 기준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던 것. 현재는 김승환씨가 대표로 있는 레인보우팩토리가 수입을 한 덕분에 이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로부터 제한상영가를 받는 순간 대중과의 만남은 요원해진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퀴어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의 위치를 논하고 그들의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즉 영화 속에서 나오는 '호수' 같은 대안적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혐오가 현실이 된 지금, 성소수자 당사자가 맘 놓고 담론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은 없다. 중요한 건 퀴어를 포용할 수 있는 호수 같은 공간이 있느냐는 것이다.

#퀴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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