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잃어버린 땅>  다큐멘터리, 영국(BBC Earth), 3 Episode, 나레이션: 리처드 아미티지
출연: 앨런 라비노비츠(호랑이 전문가, 원정대장), 스티브 백쉘(박물학자 겸 추적자), 조지 맥개빈(현장 생물학자), 저스틴 에반스(야생동물 촬영기사), 고든 뷰캐넌(야생동물 촬영기사)

▲ <호랑이, 잃어버린 땅> 다큐멘터리, 영국(BBC Earth), 3 Episode, 나레이션: 리처드 아미티지 출연: 앨런 라비노비츠(호랑이 전문가, 원정대장), 스티브 백쉘(박물학자 겸 추적자), 조지 맥개빈(현장 생물학자), 저스틴 에반스(야생동물 촬영기사), 고든 뷰캐넌(야생동물 촬영기사) ⓒ BBC Earth


매년 7월 29일은 '국제 호랑이의 날(International Tiger Day)'이다. 오늘 같은 날에는 호랑이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는 게 어떤가?

호랑이는 지구상의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 가장 크고,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지는 동물이다. 하지만 지난 세기를 거치며 전체 호랑이의 98%가 사라졌고, 남은 호랑이들은 외딴 지역에 갇혀 다른 야생동물들과 함께 밀렵의 표적이 되고 있다.

오랜 세월 공포와 숭배·사냥의 대상이었던 호랑이는 현재 300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으며,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 동물에 지정되어 있다. 야생 호랑이는 20년 내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서 호랑이를 찾아 히말라야 산맥으로 향하는 게 이 다큐멘터리의 시작이다.

멸종위기에 몰린 호랑이


과거엔 호랑이가 아시아 전역에 분포했지만 지금은 작은 집단으로만 남아 있는데, 히말라야를 따라 흩어져 있는 개체군들을 통합하면 전체 호랑이의 수가 증가할 수도 있다. 그래서 히말라야의 산악 왕국인 부탄의 호랑이들이 중요하다. 수십 년간 외부와 격리돼 있었던 곳, 부탄의 호랑이들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멸종 위기의 호랑이를 구할 해결책은 고립돼 있는 그들에게 통로를 열어줘서 유전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고립된 영역 사이를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더 넓은 영역이 확보되지 않으면, 야생 호랑이는 완전히 멸종할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고립지역을 연결해서 하나의 넓은 영역을 만들어야 하는데, 바로 그 중심에 부탄이 있는 것이다.


야생 호랑이의 생존에 있어서 부탄은 매우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히말라야는 멸종 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열쇠이고, 부탄은 호랑이가 서식하는 지역 중에서 아직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부탄에 있는 호랑이의 수는 아무도 모른다. <호랑이, 잃어버린 땅>은 부탄 산악지대의 호랑이들을 조사하러온 최초의 원정대에 관한 이야기다.

원정대는 총 5주간 부탄에 호랑이가 얼마나 살고 있는지 알아내야 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곳에 호랑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다(이 다큐멘터리의 초반에는 전문가들도 호랑이의 생존 여부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호랑이의 생존에 필요한 야생동물들과 서식 환경을 살펴보고, 이곳의 호랑이 분포 상황을 파악하는 게 원정대의 목표다.

이번 원정은 흩어진 개체군들을 연결해 세계 최대의 호랑이 보호구역을 만들겠다는 계획의 출발점인 셈인데,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부탄의 호랑이들이 번성해 있어야 한다. 거대한 호랑이 'Corridor(일정 지역을 연결하는 길쭉한 통로, 회랑)'는 상당수의 호랑이가 있어야만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남부 정글만이 아니라 산악에도 호랑이가 존재해야 한다.

호랑이를 찾아 나선 원정대

부탄은 인도와 접한 국경에서부터 7000미터 솟아오른 히말라야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원정대는 일단 부탄 남쪽에 위치한 강둑에 캠프를 설치한다. 첫 3주는 열대 남부 정글에서 호랑이들을 찾아볼 예정이고, 이후 2주는 해발 3000미터 산악 캠프에 머물 것이다. 원정대의 주요 구성원은 5명이고, 이들을 도와줄 현지 연구자들(레베카 프라단, 체왕 노부, 캐쉬미라 카카티)도 함께한다.

 BBC 다큐멘터리 '호랑이, 잃어버린 땅'

BBC 다큐멘터리 '호랑이, 잃어버린 땅' ⓒ BBC Earth


이번 탐험을 이끌고 있는 원정대장은 일생을 호랑이 연구에 헌신한 전문가인 앨런 라비노비츠 박사다. 다음 세대에서는 야생 호랑이를 아예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정도로 호랑이에겐 시간이 별로 없는데, 불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그 역시 지금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20년 넘게 호랑이의 멸종을 막기 위해 애써 온 그에게 이번 원정은 어쩌면 마지막 여정일 수도 있다.


원정대의 행동대장격인 스티브 백쉘은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탐험대가 머물 부탄의 열대 남부에 호랑이의 생존에 필요한 세 가지가 다 있다고 말한다. 풍부한 먹잇감, 밀림, 물. 그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험난한 협곡의 거친 급류도 마다하지 않으며 호랑의 흔적을 집요하게 추적해 나간다. 때론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는 언제나 능동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헤쳐나간다.


옥스포드 대학교의 생물학 박사인 조지 맥개빈은 부탄 산악밀림의 생태 평가 임무를 맡았다. 다른 원정대원들에 비해 장기간의 오지 탐험은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부탄 왕국에 이번 원정의 결과를 직접 보고하는 아주 중요한 임무도 그의 몫이다. 호랑이 외의 다양한 카메오들(히말라야의 각종 야생동물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과 함께하는 그의 모습이 꽤 흥미롭다.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BBC의 다큐는 시청률도 높은 편이며 전 세계에 팬들도 많고, 각국 방송국에서도 참고한다)를 만들어 온 BBC를 대표하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야생동물 촬영 기사인 저스틴 에반스. 오직 히말라야 호랑이를 화면에 담겠다는 일념으로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는 야간에도 혼자서 카메라 하나만 믿고 촬영에 임한다. 언제나 그렇듯, 성별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구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10년 넘게 고양잇과 동물들을 촬영해온 고든 뷰캐넌은 이번 원정에서 열대밀림부터 험준한 산악지역까지 종횡무진 활약한다. 호랑이가 나타날 만한 곳이면 어디라도 그는 카메라를 설치했고,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는 히말라야 호랑이 발견에 결국 큰 기여를 하게 된다.

BBC의 힘 보여준 다큐멘터리

<호랑이, 잃어버린 땅>은 총 3개의 에피소드(각 50분)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원정대원들을 소개하고, 이 탐험의 배경과 목적을 설명한다. 2부는 원정 개시 열흘 이후부터의 여정인데, 호랑이 서식의 증거 확보가 주된 내용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산악지대로 수색망을 확대한 탐험대의 이야기가 나오고, 조지는 원정 보고서를 가지고 부탄의 수상도 만난다. 바야흐로 원정대의 귀중한 발견이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멋진 순간을 결말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히말라야의 야생 호랑이 통로가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멸종 위기 동물 보호 활동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오랜 세월동안 호랑이 보존에 힘써온 전문가들이 베일에 싸여 있던 히말라야의 야생 호랑이를 보며 그 어떤 말보다 '아름답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발견에 대해 거창한 설명을 덧붙이기보다는, 그저 아름다운 생명을 향해 경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그들을 보며 인간의 '진정성'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리고 원정대원들이 단순히 호랑이 발견에만 함몰되지 않고, 그 지역 사람들이 호랑이의 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강한 신념을 가진 인간들은 그 이념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타인의 입장을 등한시하기 쉬운데, 이 작품 속 전문가들은 야생동물 보존과 현지 주민의 생활이 둘 다 중요하다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참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는 듯하다.

"서식지를 정할 때 그 장소만 놓고 생각할 순 없어요. 사람도 같이 고려해야 하죠. 야생동물이나 그 동물의 서식지를 보존하는 일을 할 때는 늘 사람도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어떤 노력도 소용 없거든요."

부탄은 이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2010년 유럽 신경제재단이 조사한 세계 행복지수에서 1위를 차지한 국가다. 단순하게 말해서 헬조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행복한 나라'인 셈인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부탄 사람들의 말 또한 기억해둘 만하지 않을까 싶다.

호랑이로 인한 가축 피해를 염려하는 조지의 물음에 한 주민은 "야생동물과 함께 사는 건 인간에게도 좋죠"라고 말한다. 이들은 야생동물과의 조화를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데, 이 대답에 옥스포드의 생물학 박사도 부탄은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라고 말한다. 또 조지와 만난 부탄의 수상은 이렇게 감사를 표한다. "호랑이는 우리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백두산 호랑이가 사라진 것을 항상 아쉬워 하는데, 만약 지금 당장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갑자기 호랑이가 출현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그 호랑이는 야생에서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배고파서 가축이라도 몇 마리 잡아먹었다가는 지역주민들이 가만 있지 않을 테고,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밀렵꾼들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입으로만 백두산 호랑이를 떠드는 불행한 나라 국민들과 근본적으로 야생동물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 국민들의 차이를 우리도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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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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