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한국영화는 <부산행>과 <인천상륙작전>이다. 각각 주말을 기점으로 하여 800만 명과 200만 명의 고지를 넘어섰다. <부산행>은 <제이슨 본>에 예매율 1위를 넘겨줬다가, 이번엔 <인천상륙작전>에 1위를 뺏겼다. 현재 예매율 순위는 <인천상륙작전> <부산행> <제이슨 본>이다.

한 영화 프로그램은 <부산행>을 이기적인 영화라고 평했다. 1000만 관객을 노린 게 뻔히 보인다는 뜻이었다. <부산행>과 <인천상륙작전> 두 영화를 모두 관람한 필자는 솔직히 <부산행>보다 <인천상륙작전>이 더 나았다.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이유였고, <인천상륙작전>은 너무 기대하지 않았던 탓이다.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를 기대하게 하였다. 워낙 전작이 준 충격이 컸던 까닭이다. <돼지의 왕>은 일상의 권력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소영웅심리가 지닌 객기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사이비>는 종교의 구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옥죄고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하는지 알려줬다. 이야기의 힘이 정말 컸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일침은 예술의 인문학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나리오가 상업영화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다.

여름방학, 가족애, 할리우드식 연출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부성애가 강조된 좀비 영화 <부산행>. 일단 흥행에 성공해보자는 식의 영화 만들기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부성애가 강조된 좀비 영화 <부산행>. 일단 흥행에 성공해보자는 식의 영화 만들기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 NEW


하지만 <부산행>은 기자와 평론가들이 박수를 보낼 정도로 좋은 시나리오는 아닌 것 같다. 1000만 관객을 지향하는 이야기와 어디 다른 좀비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은 진부했다. 굳이 <월드워 Z>나 <새벽의 저주> 등 기존 좀비 영화들을 거론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각종 좀비 영화의 기법을 차용해와 '한국적'인 틀과 부성애를 내세우며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연상호인데, 이건 아니지 않나. <부산행>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거머쥐었어야 한다.

<부산행>은 여름 특수를 노린 한탕의 영화가 될 소지가 크다. 최근 한국영화들이 여름방학을 맞이해 '블록버스터' 영화를 많이 내놓고 있다. 특히 가족애를 영화 전반에 깔아놓고, 할리우드식 연출기법을 차용한다. 혹은 2∼3명의 스타급 주연이 영화를 독차지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너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주연이 돋보이는 영화보단 주·조연들이 합을 잘 이루는 영화가 좋은 영화이다. 한국영화는 흥행실적만을 좇으며, 흥행 성공의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이러한 프레임을 벗어던진 최근 수작으로는 <곡성>만이 유일하다.

<부산행>은 좀 더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아쉽다. 물론 배우들의 호연과 영화 막바지에 보여준 몇몇 장면은 영화를 빛나게 한다. 그런데도, 공유와 마동석만으로 영화를 밀어붙이기엔 한계가 있다. 진희역의 안소희는 왜 나왔을까. 임산부 성경 역을 맡은 정유미도 존재감이 약하다. 수안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또한 흥행 성공의 프레임인, 연기 잘하고 눈빛 좋은 아역을 붙인 것뿐이다. <부산행>은 기존 흥행 성공의 방정식을 너무 따르려 했다. 기존 프레임을 뒤집을 순 없었을까.

나쁘지 않았던 <인천상륙작전>의 긴장감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한 장면 속이려는 장학수와 의심하는 림계진.

▲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한 장면 속이려는 장학수와 의심하는 림계진. ⓒ CJ엔터테인먼트


처음엔 <포화 속으로>를 만든 이재한 감독이 왜 또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의아해했다. 거기에 맥아더 역의 리암 니슨과 주인공으로 이정재와 이범수까지 나서다니.

물론 후반부로 들어가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쉬운 면들이 많다. 6.25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다루면서 균형감을 잃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북한의 고민 혹은 반격과 림계진(이범수 역)의 활약이 더욱 진중하고 논리적인 흐름을 따랐더라면 어땠을까. 영화는 정말 아쉽게도, 장학수가 영웅으로서 임무를 마치며 끝난다. 긴장감을 유발하며 잘 유지되다가, 정말 진한(?) 반공이 섞이면서 무너진다. 개인적으로 뻔한 반공영화는 싫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제외하면 <인천상륙작전>은 의외의 재미를 보장했다. 영화의 초반을 보면 긴장감을 자아내며 관객의 눈길을 끈다. 북한군으로 위장 침입해서 인천 기뢰의 해도를 탈취하려는 작전은 매번 난관에 부딪힌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묘수들은 그럴듯하다. 영화를 보는 재미는 오히려 이런 면에 있는 게 아닐까.

특히 두 배우로 압축되어 보여준 남북 간 대결은 박진감이 있었다. '피보다 이념이 진하다'는 림계진(림계진)의 사상과 개인의 자유를 더 중요시하는 장학수(이정재). 림계진을 포섭해야 하는 장학수와 의심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 림계진의 눈빛은 강렬하다. 거기에 박철민과 김병옥 등 조연배우들의 존재감도 짙다. 맥아더 역의 리암 니슨은 전쟁광이면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지난 면모가 보인다. 오히려 <인천상륙작전>은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던 <암살>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았다. <암살>은 민족주의가 너무 강해서 이야기의 힘이 약해진 경향이 있다.

요새 할리우드 영화가 진화하고 있다. 스타급 주연만 내세운 영화들이 줄어들고, 주·조연의 경계가 흐려지며 각각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시나리오의 힘이 막강해지고 있다. 탄탄한 이야기의 힘을 밑바탕으로 연기파 조연들이 연기력을 뽐내고, 주연급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영화를 재밌게 만든다. 연출력이야 '할리우드식'으로 여전히 관객들의 시선을 뺏을 만큼 놀랍다.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다. 흥행에만 집착하는 한국 영화들이 프레임에서 빠져나와야만 정말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관객의 한 명으로서 정말 좋은 한국영화를 보고 싶다.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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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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