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에 살던 작년 겨울의 일이다. 그때의 나는 심리적으로 탈진 상태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감당하기 힘든 불행도 마주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시기의 나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가위라고 하기엔 무언가 설명하기 애매한 것이 나의 수면을 방해했다. 불을 끄고 잠에 들려고 누우면, 나는 누군가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는 느낌에 시달렸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 본 남자가 검은 옷을 입고, 넋이 나간 눈빛임을 기억할 정도로 그 느낌은 강렬하고 생생했다. 어둡고 텅 빈방에서, 나는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이불 속에서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혼자 사는 처지에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공포에 못이겨 잠에서 깨길 반복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다시 잠들 수 없었다. 나는 거의 매일을 뜬 눈으로 아침 해를 마주했다.

그러다 몸부림을 치며 깨다 침대에서 떨어져 구른 날, 나는 집앞 편의점으로 뛰어가 술을 샀다. 소주의 쓴 맛으로 두려움을 덮다 알콜에 정신을 놓을 때면, 그 때부터 나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날부터 나는 하루도 빠짐 없이, 밤이면 밤마다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나는 부러 잠을 청할 필요도, 그 남자가 빈방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공포를 겪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잠에 드는 기억도 없이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눈을 뜨고 햇볕을 마주하면, 어제 저녁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그 남자가 내 방을 찾기전, 술의 힘을 빌려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삶은 유지될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나는 내 손에 술병이 들려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침대는 그 병에서 쏟아진 술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순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겨울이 지나고, 나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남자는 더 이상 내 방을 찾지 않았다. 지금은 적어도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나의 중독을 간결하게 표현해준 노래

 이소라의 7집 앨범 수록곡 'Track 7'은 중독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이소라의 7집 앨범 수록곡 'Track 7'은 중독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 CJ E&M


아무튼 술을 줄이기 시작한 시기, 나는 무엇에든 중독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샅샅이 찾아보았다. 물론 그 작품들이 나에게 도움을 주긴 했다. 그 작품들은 내게 동병상련을 느끼게 해주거나 때로는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 일을 겪을 것이란 엄중한 경고도 주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를 작품 속의 인물들과 동일시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 인물들은 지나치게 삶의 벼랑에 몰려 죽음을 욕망할 지경이거나, 혹은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을 스스로에게 돌린 자기파괴적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에 비하면 내가 가진 동기는 소박했다. 그저 무섭고 싶지 않다. 두려움에 떨며 잠에 들고 싶지 않다. 텅빈 방에, 그 남자와 단 둘이 남겨지고 싶지 않다.

그러던 그 시기,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노래가 바로 이소라의 'Track 7'이었다. 그녀의 7집에 수록된 이 노래에는 애타게 약을 찾는 화자가 등장한다. 이소라는 길지 않은 가사 속에 일상적 중독을 겪는 사람의 심정을 간결하게 녹여낸다. 화자는 애타게 약을 찾거나, 제발 약을 먹는 것을 막지 말라고 애원하거나("나 몰래 숨기지마"), 혹은 약을 숨긴 사람에게 옅은 적의를 드러내기도 한다("완벽한 너나 참아"). 그리고 다소 나른한 리듬위에 얹어진 그녀의 피로하고 비탄에 잠긴 목소리는 이 감정들을 탁월하게 증폭시킨다. 하지만 내가 이 노래를 떠올리고 공감하게 된 것은 다음의 가사 때문이었다.

"지난 밤 날 재워준 약 어딨는 거야."
"몸이라도 좀 편하게 잔다는 거야."

그랬다. 이유는 달랐지만 화자가 약을 찾는 이유도, 내가 술을 찾는 것과 같았다. 그 사람 역시도 잠을 잘 수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몸의 욕구가 좌절되고 있었다.

내가 이소라의 노래에 공감한 이유

사실 사람들은 중독을 겪는 이들이 지나치게 방종하고 방탕하거나 혹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탓에 제정신이 아니리라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내가 앞서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에 공감할 수 없었던 건, 그 작품들 속 인물들이 어느 정도 그러한 인식들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을 자지 않으면 찾아올 하루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 수면 부족이 주는 몽롱함과 끔찍한 두통 속에선, 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중독에는 주체되지 못하는 욕망만 있을뿐, 그 속에 어떠한 논리도 없다고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독에는 인과가 있다. 내가 이소라의 노래에 공감했던건, 그 노래의 가사가 그 인과의 시작점을 간명하게 짚어냈기 때문이었다.

 이소라 7집 앨범은 이별, 지독한 사랑, 외로움, 아픈 기억이 담겨있다.

이소라 7집 앨범은 이별, 지독한 사랑, 외로움, 아픈 기억이 담겨있다. ⓒ 유니버설


때문에 나에게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은 단순히 '탕자' 혹은 '광인'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나에게 그 사람들은 무겁고 커다란 벽에 짓눌린 채 온몸을 웅크린 사람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얹어진 무게는 홀로 벗어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겁에 질려있다. 움직일 수가 없다. 짓누른 벽은 조금씩 등을 굽게 만들고 무릎을 내려 앉힌다. 어쩌면 그 순간에 술이나 약은, 고통 속에서 찰나에 들이 마시는 한 숨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숨에 의존하면 할수록, 나는 도움을 청할 목소리마저 내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다. 하지만 그 숨이 없이는 나는 그 벽 아래에서 살아갈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중독은 외견상 자기파괴적으로 보일지라도, 사실은 생에 대한 깊은 의지를 담고있다.

견디는 삶

어린 시절 나는 행복한 삶을 꿈꿨고 그것이 가능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오며 깨달은 건, 그런 식의 인생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 스트레스와 소소한 불행을 견디다 가끔의 작거나 큰 행복에 의지해 살아간다.(당신의 일주일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마치 깊은 바다를 잠수하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은 조금씩 숨을 내쉬며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이따끔 수면위에 올라 숨을 들이 마신다. 그렇게 삶을 견딘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은, 큰 파도에 휩쓸려 너무 깊은 물에 잠기거나 암초에 발이 끼이곤 한다. 그런 사람들은 물 위의 숨을 대체할 다른 것을 찾는다. 그것은 술일 수도 있고 약일 수도 있다. 그렇게 그 사람들은 물 속을 견뎌낸다.

나의 경우 그 큰 파도는 공포였고 암초는 잠에 들수 없음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오늘도 잠에 들기 위해서, 혹은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서 빈방에서 홀로 술을 들이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어쩌다 술잔을 잡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당신을 짓누르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확답을 주지도 못하겠다. 다만 당신이 거기까지간 과정은 나의 것과 유사할지 모르고,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당신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손쉽게 당신을 비난하고 판단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다. 너무나 과한 욕심이지만, 어딘가에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것이 당신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독 이소라 TRACK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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