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낭만닥터 김사부> 방송화면 캡처.

윤서정의 질문에 강동주는 갈등한다. 그 당연한 질문에 당연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드라마 주인공. 갑작스레 현실의 한 사람이 떠오른다. ⓒ SBS


"사망진단서에 생각 같은 게 왜 필요해? 팩트만 써넣으면 되는데."
"탈영병이에요. 거기다 외인사라고까지 해봐요. 얼마나 시끄럽겠냐고요. 거기서 발생될 수많은 파장에 대해 생각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글쎄 그걸 왜 생각해야 하냐고. 의사는 팩트만 전달하면 되는 건데."

지난 13일 방송된 SBS <낭만닥터 김사부> 속 주인공 강동주(유연석 분)와 윤서정(서현진 분)의 대화다. 이들이 일하고 있는 돌담병원에 수상한 환자가 찾아왔다. 집단 폭행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환자는 장천공과 그로 인한 복막염, 패혈증 등으로 당장 수술받지 않으면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도, 이 환자와 그의 친구는 병원에서 도망친다. 병원에 찾아온 헌병대 때문이었다.

이 환자는 탈영병이었다. 결국, 패혈성 쇼크로 정신을 잃은 남자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수술을 받았지만, 목숨을 잃고 만다. 수술을 집도한 강동주는 헌병에게 "최소 둘 이상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것 같다, 외부 충격에 의한 장기 손상이 원인"이라는 소견을 전한다.

헌병대는 돌담병원의 본원인 거대병원장 도윤완(최진호 분)을 통해 탈영병의 사인을 조작하려 한다. 탈영병의 죽음 원인이 미칠 파장이 두려워서다. 이들은 탈영병의 주치의인 강동주가 사인을 '병사'로 기재하도록 압박한다.

"사망진단서에 생각이 왜 필요해?"

 SBS <낭만닥터 김사부> 방송화면 캡처.

강동주가 속한 현실은 만만치 않다. 그저 쉽게 '정의감'을 운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 SBS


보통 드라마의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이라면, 이 가당찮은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동주는 달랐다. 이미 연봉 15% 인상에 매년 1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해주겠다는 도 원장의 파격 제안을 받았던 그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강동주는 전문의 시험을 전국 1위로 통과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하지만 실력보다 '백'(배경)이 좋은 동기에게 밀리기 일쑤. 그가 거대병원에서 쫓겨나 분원인 돌담병원으로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본원 외과 과장 송현철(장혁진 분)까지 나서 "눈 한 번만 딱 감으면 된다", "도 원장한테만 바짝 숙이면 네 인생이 달라진다"며 동주를 유혹한다. 본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강동주의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고 백남기 농민 주치의 백선하 "환자분 위해 최선 다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왼쪽)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등에 대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고 백남기 농민의 CT 촬영본을 보여주며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백 농민의 사망 원인이 '병사'가 아닌 '외인사'라고 주장하는 이윤성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눈을 감은 채 백 교수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백 교수는 "사망진단서의 작성은 고 백남기 환자분의 진료를 맡아온 주치의한테 맡겨진 신성한 책임과 의무이자 권리이다"며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 하지도 않았음에도 했다고 버젓이 활자화되어 나오는 말들 앞에서 개인적으로 커다란 무력감을 느끼지만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고 백남기 환자분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 고 백남기 농민 주치의 백선하 "환자분 위해 최선 다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왼쪽)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등에 대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고 백남기 농민의 CT 촬영본을 보여주며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백 농민의 사망 원인이 '병사'가 아닌 '외인사'라고 주장하는 이윤성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눈을 감은 채 백 교수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어딘지 익숙한 장면이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말이다. 그의 주치의였던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을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로 기록했다. 사망에 이른 직접 원인을 물대포 충격에 의한 뇌출혈 등이 아니라, 급성경막하출혈에 의한 급성 신부전증, 그에 따른 심폐 정지로 적시한 것이다.

사고 후 1년여 동안 (비록 의식은 없었지만) 생존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얻은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면, 사망의 원인은 사고일까 합병증일까? 언뜻 어려운 문제 같지만, 사실 이는 그리 복잡한 일이 아니다. 통계청은 '교통사고 후 식물인간 상태에서 1년 2개월 동안 누워있던 환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사인은 외인사로 적어야 한다'는 친절한 예제까지 더해 의사들에게 사망진단서 작성법을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현직 의사와 법의학자, 의대생들이 입을 모아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라 말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론 진실보다 침묵이 약이 될 때가 있다"는 도 원장과 "사망진단서는 절대 외압 때문에 팩트가 바뀌면 안 된다"는 윤서정,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는 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강동주와 "사망진단서에 생각 같은 게 왜 필요하냐"고 묻는 윤서정의 대화는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논란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를 지적하고 있다.

강동주의 낭만적인 선택... 현실은?

 SBS <낭만닥터 김사부> 방송화면 캡처.

결국 원칙대로 소신을 지킨 주인공. 이 드라마가 판타지인 이유이다.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달랐으니까. ⓒ SBS


강동주는 결국 도 원장이 제시한 탄탄대로의 미래가 아닌, 의사로서의 양심을 택했다. "미쳤냐, 원장님 오더를 어기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느냐"며 힐난하는 송현철 과장에게 "배운 대로 했을 뿐"이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사인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도 잘 알고 있다"고 답한다. 그는 유가족에게 수술 과정을 녹화한 영상 파일을 넘겨주며 "늦어 죄송하다. 진실 규명을 위해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며 지난 고민의 시간을 반성한다.

하지만 강동주의 선택은 그저 양심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강동주는 어린 시절 돈 없고 백이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의사가 됐다. 하지만 그는 의사가 된 후, 비슷한 상황에서 VIP 수술을 택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환자 가족에게 '살인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때마침 돌담병원을 찾았다가 이를 목격한 어머니의 눈물과 짝사랑하는 윤서정의 설득이라는 장치가 아니었다면, 강동주는 다른 선택을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사부의 일갈... "쪽팔리지도 않냐?"

 SBS <낭만닥터 김사부> 방송화면 캡처.

김사부가 도 원장에게 한 일갈은, 이 드라마가 백선하 교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지 모른다. ⓒ SBS


김사부(한석규 분)는 강동주를 압박한 도 원장을 찾아가 주먹을 날린다. "그만 흔들어 대라, 그 나이 처먹고 젊은 애들 붙잡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 지르며 "쪽팔리지도 않냐. '찌질'한 새끼"라며 혀를 찼다. 백선하 교수가 강동주라면, 김사부의 펀치는 백 교수가 그런 선택을 하도록 압박한 누군가를 향한 것이었을 터다.

유인식 감독은 <낭만닥터 김사부> 기자간담회에서 "의사라는 일을 통해 뭔가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라는 일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현실 세계에서 물질이 아닌, 직업윤리를 최고 가치로 삼는 것이야말로 낭만적인 일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12회 말미, 강동주는 "사망진단서는 환자 유족들에게, 의사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닥터 김사부>의 결말처럼 훈훈하지 않았다. 김사부가 없는 현실 세계에는 "쪽팔리지도 않느냐"며 펀치를 날려줄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도, 김사부 같은 스승도 없을 현실의 수많은 강동주들에게, 부귀영화가 보장된 꽃길이 아닌, 양심을 택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그저 '낭만적인 일'일까? 어쩌면 지금 시대의 <낭만닥터 김사부>는 <푸른 바다의 전설>보다 더한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나와라_최순실'과 오체투지 24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 부검반대, 특검도입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조계종 사회노동위 승려와 신도들이 종로구 조계사를 출발해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오체투지 행렬이 지나가는 벽에 정권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 관련 '#나와라_최순실" 포스터가 붙어 있다.

▲ '#나와라_최순실'과 오체투지 24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 부검반대, 특검도입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조계종 사회노동위 승려와 신도들이 종로구 조계사를 출발해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오체투지 행렬이 지나가는 벽에 정권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 관련 '#나와라_최순실" 포스터가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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