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그 날의 광주를 재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여러 영화가 근현대사의 비극을 그려 관객의 마음에 다가가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2017년 여름, 이 사건을 해외에 알린 독일 기자와 그를 광주로 데려다준 서울 택시운전사의 눈으로 비극의 시간을 더듬는 영화가 나왔다.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김만섭(송강호 분)은 대학생의 데모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는 소시민 중 하나다. 사우디에 가서 돈을 벌며 치열하게 살아온 그에게 대학생들의 데모는 그저 비생산적이고 게으르며 한심한 행동으로 보인다. 사글세가 밀린 만섭은 우연히 독일에서 온 기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만난다. 광주에 갔다 오면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혹한 그는 힌츠페터를 태우고 1980년 5월의 광주에 간다.

영화는 광주를 이야기하면서도 광주의 내면을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군인들이 시민에게 방아쇠를 당기기 전의 이야기보다, 총성이 울린 후에 벌어진 사건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는 광주에 살던 시민의 눈이 아닌, 우연히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방문하게 된 서울의 한 택시운전사의 시점으로 5.18을 다룬다. 버드 아이 뷰로 바라보는 군중,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광장의 모습, 그리고 군인의 총탄에 쓰러져가는 시민들의 공간에서, 만섭과 힌츠페터의 눈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의 눈과 동일시된다.

1980년 5월, 광주의 목격자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사진.
ⓒ 쇼박스

관련사진보기


<택시운전사>는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조명하기보다는, 역사 속 광주의 분위기를 목격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여러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하고 보편적인 방법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 날의 광주를 알거나 혹은 알고자 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눈앞에 벌어지는 참혹한 광경은 당시에 비극의 중심에서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크린에서 재현되는 참상을 바라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통용될 비극이다. 대학생들의 데모에 혀를 차며 오로지 자신의 삶을 살아온 택시운전사 만섭이 사건을 목격하는 주인공이라는 점은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당대의 평범한 소시민의 정서를 드러내는 인물이 보기에도 그 날의 광주는 비극의 공간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자칫 암울해질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영화는 전반적으로 소소한 유머가 깔려있다. 우리가 송강호라는 배우에게서 기대했던 유머는 물론이며, 독일기자 힌츠페터와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면서 빚어내는 소통의 불협화음 또한 유머로 적절하게 사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유머는 광주의 참상을 더욱 부각한다.

<택시운전사>의 배우들은 단순히 대사만으로 연기력을 뿜어대지 않는다. 유해진은 광주의 택시운전사 연기를 하지만 사실 그는 광주시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광주의 정서 그 자체를 연기했다. 광주의 시민들과 택시운전사 동료들의 말들을 넉넉한 미소로 받아내면서도 자신의 캐릭터도 소홀히 하지 않는 그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우리는 그 날의 결말을 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만섭(송강호)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돈벌기에 바쁜 택시기사다. 딸과 단둘이 사글셋방에서 사는 그는, 돈을 아끼려고 점심 도시락을 싸 갖고 친한 정비소 뒷방에서 먹곤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만섭(송강호)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돈벌기에 바쁜 택시기사다. 딸과 단둘이 사글셋방에서 사는 그는, 돈을 아끼려고 점심 도시락을 싸 갖고 친한 정비소 뒷방에서 먹곤 한다. ⓒ (주)쇼박스


그리고 역시, 송강호라는 배우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속물근성을 숨기지 않는 보통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1980년 5월의 광주를 목격하고 서서히 변화한다. 남은 가족을 위해 생존하려는 만섭에게 그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이나, 머뭇거리며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송강호의 호흡과 눈빛은 참고 있던 관객의 감정을 터뜨리고야 만다.

우리는 이 영화의 결말을 안다. 힌츠페터 기자는 광주를 무사히 빠져나와 그날의 참상을 해외에 밝혔다. 그 날, 자신과 어설프게 대화했던 택시운전사와 소통했던 그 날을 잊지 못해 그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사복'이라는 가명을 쓴 택시운전사는 분명 역사의 진실을 알린 영웅과도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나서지 않은 이유는 어쩔 수 없이 광주를 떠나야 했던 그때, 걱정하지 말고 빨리 떠나라고 했던 광주 시민의 미소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그때가 미안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험하고도 놀라운 일을 해낸 사람이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며, 아직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택시를 운전하며 우리와 함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 날의 광주를 겪고, 지켜보고,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날의 시간을 품에 안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건의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택시운전사 송강호 5.18 광주 영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