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를 굴린 주역들

<택시운전사>를 굴린 주역들 ⓒ (주)쇼박스


1100만 관객 돌파면 우리나라 인구의 약 1/5이 본 거다. 관람할 수 없는 여러 이유를 감안할수록 대박이다. '광주 5.18'이 낯선 어둠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웬 붐인가. 8월 끝 날 객석에 앉아서야 이해한다. 가슴이 내킨 군상들을 들이민 연출 때문이라는 걸.

연출은 스토리텔링과 한통속이다. <택시운전사>는 내륙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광주민들을 보여 준다. 그리로 안내하는 이는 운동권이 아니다. 도리어 먹고사니즘에 급급해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욕하던 서울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이다.

김만섭은 당시의 장삼이사 격 시민의식을 대변한다. 장훈 감독은 김만섭을 부리어 '광주 5.18'이 민주항쟁임을 은연중에 역설한다. 시국에 대해 청맹과니였던 김만섭이 눈떠가는 내면 변화를 관객에게 먹히도록 해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연출이다.

 광주로 향하는 서울 택시

광주로 향하는 서울 택시 ⓒ (주)쇼박스


그 둔중한 시절로 들어서는 초기 화면은 의외로 경쾌하다. 고물이 다된 차를 애지중지하며, 주인집 아들에게 생채기를 낸 딸을 어르는 김만섭의 셋방살이가 코믹하게 흐른다. 그러면서 아내를 잃은 후 정신 바짝 차린 그의 긍정적 안간힘과 잽싼 이기심을 조명한다. 그 화면들은 추후 도망쳤다가 울먹이며 광주로 차를 되돌리는 그의 반전을 이해하게 하는 복선이다.

게다가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따라 부르는 송강호의 장단 치는 표정은, 뭔 내용인지를 알고 들어선 객석이 태풍의 눈으로 여겨 마음 졸일 만큼 밝고 기껍다. 반면 광주에서 뺑소니치듯 나와 밥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김만섭의 귀에 들리는 '제3한강교'는 방정스럽다. 날조된 유언비어에 밀려 광주 소식이 불통하는 현실에는 생뚱맞은 멜로디여서다.

그러나 지난 8월 27일 현재 1100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운전사>의 쾌거는, 김만섭 캐릭터와 그의 동선 변화에 공감하는 현상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다. 경천동지할 국정농단을 겪고서야 비로소 눈뜬 촛불 민심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시점이어서 가능한 장훈 감독의 성공 신화다.

 황태술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중에 오가는 정담.

황태술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중에 오가는 정담. ⓒ (주)쇼박스


<택시운전사>의 스토리텔링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의 경험담을 뼈대로 한다. 서울 택시운전사 김만섭과 함께한 페터의 광주 진입과 탈출의 로드맵 재현은, 빨갱이 천지로 낙인찍은 언론통제의 민낯과 만행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렇게나마 영화는 광주민들의 해묵은 누명을 우선 걷어낸다.

사건이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는 페터의 기자정신은, 김만섭과 페터를 먹이고 재우고 탈출시킨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 분)의 도리와 닮은꼴이다. 그것은 또한 김만섭이 사사로운 이익을 포기하고 위험천만한 공적 모험을 시도한 행위와 내통한다. 영화는 그렇게 있는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함을 좇는 서민들 중심으로 전개되어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영화의 시너지 효과는 더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김사복(페터가 기억하는, 영화 속 김만섭의 이름)을 그리워하는 고(故) 페터의 영상은, 현실에서 확인되지는 않은 김사복의 아들을 출현시킨다. 게다가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서술한 전두환 회고록 1권의 출판과 배포를 금지한 법원의 결정을 끌어낸다.

더 극적인 것은, JTBC 뉴스룸을 통해 5.18 전두환 신군부가 출격 대기 명령을 내렸다는 당시 조종사 증언을 육성으로 듣게 된 사건이다. 그걸 기점으로 이것저것 증거들이 발견되어 규명하는 중이다. 영화 한 편이 역사 차원의 묵은 체증과 부채감을 해소하는 단초가 되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맡은 역할에 빙의된 듯한 명배우 송강호나 유해진의 연기에 대해서는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 아울러 사복조장 역 최귀화가 없었으면 <택시운전사>가 응시한 광주의 울부짖음은 생생하지 않았으리라. 광주 민주화운동을 종북몰이로 진압하는, 그 확신에 찬 표정 연기는 당시 살풍경에 닿아 있다.

모처럼 시대정신과 호흡하며 상생하는 명화를 만나니 덩달아 살맛 난다.

 서울 복귀의 키를 쥔 검문.

서울 복귀의 키를 쥔 검문. ⓒ (주)쇼박스



택시운전사 송강호 김사복 페터 최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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