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스틸컷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토론'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법을 통해 발언권과 신변의 안전을 보장한다. 건설적인 토론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시선'이다. 다수와 반대되는 주장을 할 때, 집단 혹은 사회에 불필요한 잡음이라고 생각되는 주장을 할 때 느껴지는 시선들이다. 구성원의 따가운 눈총은, 입 밖으로 나오려는 생각을 다시 입안으로 욱여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년 작)은 '보이지 않는 시선'이 형성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배경은 미국의 법정이다. 제목에 나와 있는 12인은 배심원들을 말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소년의 유/무죄를 결정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다. 검사는 유죄를 확신했고, 소년의 담당 변호사도 소년이 유죄일 것이라 생각해 변호를 반쯤 포기했다. 살해 장면을 정확하게 목격한 증인이 있었고, 소년의 알리바이는 명확하지 못했다. 사인(死因) 역시 소년의 범죄 사실을 증명해주는 듯 보였다. 소년이 상점에서 구매한 칼이, 소년 아버지의 심장에 꽂혀있었다.

"무슨 얘기를? 11명이 유죄라는데?"

배심원 12인은 전원 일치된 의견을 내야 했다. 날은 더웠고, 선풍기는 안 돌아갔다. 영화 내내 배심원들은 땀에 젖어있다. 앞서 말한 재판에서의 사실들도 소년이 살인범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에 배심원들은 빨리 의견을 결정하고 각자의 스케줄대로 움직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첫 배심원 투표가 이뤄졌다. 결과는 11대 1. '배심원8' 역을 맡은 주인공 헨리 폰다가 반대했다. 11명의 배심원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배심원8은 소년이 '유죄가 아닐 것(not guilty)'이라고 의견을 냈다. 법정에서 제시된 증언과 정황들이 100%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배심원8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집단의 다수가 한 곳을 향할 때, 홀로 다른 곳을 향하기란 쉽지 않다. 집단에 갈등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점과, 그에 따른 주변인의 시선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그랬다. 11명의 배심원 중 많은 인원이 짜증을 내면서 배심원8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하지만, 배심원8은 굴하지 않았다. 배심원의 '유죄' 판결이 소년의 사형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난 이상한 기분이 들었소."

배심원8은 조목조목 자신의 이상한 기분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유일한 목격자의 증언이 지닌 허점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정황 증거 역시 100% 확실하지 않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그의 노력은 점점 '유죄가 아닐 것'이란 사람들의 수를 늘린다. 11대 1에서, 10대 2로, 9대 3으로...

여기서 핵심은 점점 늘어나는 숫자가 소수의견의 힘을 뒷받침해준다는 데에 있다. 배심원8이 설득한 사람들이 배심원8과 같은 의견을 지니면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의구심을 하나하나 꺼내 논증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혼자 논증하던 것들이 여러 사람과 같이 논증하면서 힘을 더 얻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이상한 기분'은 '증언의 오류'와 '정황의 오류'로 진화하게 된다.

"법정에 와서 우리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의 유·무죄 여부를 판단해달란 통지를 받았단 말이오. 이 평결 때문에 득이나 실이 없소. 그래서 우리가 강한 거요."

배심원들은 소년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안면불식의 관계다. 서로 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건성으로 배심에 임하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두가 열중해 배심에 임한다. 노동자, 건축가, 광고업 종사자, 풋볼 코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배심을 하면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토론이 무엇인지 배워가는 모습을 보였다.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고, 또 나와 상관이 없어 보임에도 진중하게 토론하는 자세는 민주주의의 힘이자 동력이 된다. 사실 소년에 관한 배심원의 결정이 배심원들과 상관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배심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공권력이 잘못된 결정을 했을 때, 배심원들의 힘을 통해 그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데에 있다. 삶을 살아가는 누구나가 공권력에 접해있다. 배심원들도 공권력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 영화 속 피고인이 소년이 아니라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가였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포스터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일상의 민주주의, 토론의 중요성, 소수의견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는 영화다. 배심원들이 토론하는 공간에서 그들의 토론 장면만 나오는 영화지만, 몰입감이 상당한 영화였다. 앉아서 얘기만 하는 영화이지만, 재미와 메시지가 상당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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