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축구에서 가장 많이 비난을 듣는 자리를 꼽으라면 역시 스트라이커였다. 역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치고 한 번쯤 국민적으로 욕바가지를 먹어보지 않은 선수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1994 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 황선홍의 '똥볼', 2010 남아공월드컵 우루과이전에서 이동국의 '물회오리슛',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박주영의 '따봉' 등은 지금까지도 팬들에게 회자되는 흑역사다. 이들은 월드컵 당시 그야말로 '숨만 쉬어도 까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국민적 비난에 시달렸고 일부 선수들은 한동안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이 다가오는 지금 대표팀의 '국민 욕받이'는 수비수들로 타깃이 넘어간 것 같다. 신태용호의 수비불안이 고질적으로 도마에 오르면서 대표팀 수비수들을 향한 비난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특히 수비의 중심이자 리더라고 할 만한 센터백들에 대한 비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하필이면 자책골-실수-경험 부족 등 유독 실점과 관련된 장면마다 중앙 수비수들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해외파 수비수 한 명도 없는 대표팀, 2002년 이후 처음

신태용호 출범 초기 주장으로 활약했던 김영권은 이란전에서의 미숙한 수비와 함께 '팬 비하성' 실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주영은 10월 유럽 원정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2연속 자책골이라는 희대의 진기록을 수립했다. 장현수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대표팀 주전 센터백으로 기용되었음에도 잦은 실수로 도마에 올랐다. 그나마 최근 대표팀 수비수 중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유망주 김민재도 지난 북아일랜드전에서 자책골 포함 2실점을 허용한 장면에 모두 연관되며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김민재, 밀리지 마라 김민재가 24일(현지시간) 영국 벨파스트 윈저파크경기장에서 열린 북아일랜드 평가전에서 제이미 워드와 공을 다투고 있다.

▲ 김민재, 밀리지 마라 김민재가 24일(현지시간) 영국 벨파스트 윈저파크경기장에서 열린 북아일랜드 평가전에서 제이미 워드와 공을 다투고 있다. ⓒ 연합뉴스


역대 대표팀에 비하여 신태용호에는 과거의 홍명보나 이영표처럼 수비진을 아우를 수 있는 경험 많은 베테랑 혹은 세계적인 수준의 '대형 수비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공격의 손흥민, 중원에는 기성용 같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선수들이 포진한 것과 달리, 수비만큼은 유럽파가 한명도 없다. 이는 2002 월드컵 이후 최초다. 김진수-박주호-홍정호 등 유럽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는 수비수들은 있지만 이들 모두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K리그로 돌아와야 했다. 신태용 감독은 K리그 최강 전북에서 활약하는 수비수들을 대거 발탁하며 안정감을 높이려고 했지만 대표팀은 북아일랜드전에서도 2실점을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반복했다.

홍명보-이영표 등은 대표팀에서 10년 이상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풍부한 경험과 리더십으로 수비진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던 선수들이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현재까지 대표팀에는 이 정도로 꾸준히 안정감을 보여주는 수비수가 없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조용형-이정수-이영표-차두리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홍정호-김영권-윤석영-이용이 주전으로 나서며 수비진이 전면 물갈이된 바 있다. 올해 러시아월드컵에서도 4년 전에 출전했던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구성으로 나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표팀에 홍정호와 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꾸준히 주전으로 활약했던 것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부침을 겪다가 오랜만에 복귀한 경우다.

이러다 보니 가장 큰 문제는 경험부족이다. 신태용호에서 가장 꾸준히 중용되었고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장현수-김민재-권경원 등은 클럽과 대표팀 모두 아시아 팀들과의 경력에 치우쳐 있다 보니 유럽과 남미 같은 다양한 스타일의 축구를 상대해본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수비진을 구축했던 홍명보-김태영-최진철 등도 모두 국내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었지만 당시에는 개최국의 이점을 살려 1년 전부터 장기합숙과 세계적인 강팀들과의 평가전을 통하여 충분한 적응력을 기를 시간이 있었다는 게 큰 차이다.

북아일랜드전에서 허용한 2실점이 세트피스와 역습 장면이었다는 것은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수비수가 충분히 갖춰진 상태'에서도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응과 집중력이 매우 떨어진 것이 실점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실제로 강팀이 즐비한 월드컵에서도 대부분의 득점 상황이 세트피스와 역습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전반 김민재의 첫 자책골 상황에서는 직접 공격을 예상했다가 상대가 측면으로 공을 한 번 빼서 허를 찔리며 속수무책으로 크로스를 올릴 공간을 내줬다. 후반 막판 결승골 상황에서는 아군 수비수가 더 많은 상황에서도 서로 커버플레이를 미루다가 찰나의 순간에 상대에게 완벽할 슈팅을 시도할 타이밍을 내줬다. 수비수들의 간격을 유지하고 순간적인 대응을 지시할 수 있는 노련한 리더가 없었다.

신태용 감독의 전술적인 문제도 있다.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신 감독의 성향상 선수들이 라인을 끌어올리고 많이 뛰어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러다 보니 후반으로 갈수록 선수들의 체력저하가 빨라지고 공수 라인의 간격유지가 어려워진다는 문제점이 반복되고 있다. 수비진이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신태용호에는 앞선에서 1차적으로 포백을 보호해줄 수 있는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도 없다.

박주호, 끝까지 최선을 다해 박주호(15)가 24일(현지시간) 영국 벨파스트 윈저파크경기장에서 열린 북아일랜드 평가전에서 코리 에번스(13)를 앞에 두고 미끄러지며 발을 뻗고 있다.

▲ 박주호, 끝까지 최선을 다해 박주호(15)가 24일(현지시간) 영국 벨파스트 윈저파크경기장에서 열린 북아일랜드 평가전에서 코리 에번스(13)를 앞에 두고 미끄러지며 발을 뻗고 있다. ⓒ 연합뉴스


선수 개인 향한 비난보다 대안을 찾는 게 우선이다

기성용, 구자철, 정우영, 이창민 등 모두 수비형으로 기용할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걱 성향이 강하고 맨마킹이나 활동량에 장점이 있는 선수들이 아니다. 이번 대표팀에서는 박주호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가세했지만 장기간의 공백기로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북아일랜드전에서는 큰 실수만 없었다는 수준일 뿐, 수비형 미드필더로 느린 발과 부족한 활동량은 과연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믿고 쓸 수 있는 카드인지 의구심을 남겼다. 유럽이나 남미에 비하여 개인능력이 뒤떨어지는 한국 수비수들에게 상대 역습 상황에서 앞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부분은 계속되는 수비불안으로 인한 수비수들의 자신감 상실이다. 선수들도 사람이다 보니 실수가 나오고 그로 인하여 엄청난 비난을 듣다 보면 정신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선수들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비난하기는 쉽다. 문제는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이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들이라는 엄연한 현실이다. 당장 대표팀에서 기용할만한 수비수들은 모두 테스트했다. 누가 봐도 더 확실한 대안이 있는데도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니다.

사실 대표팀의 수비불안은 특정 선수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최근 대표팀의 수비가 도마에 오를 때마다 몇몇 선수들만 집중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현수다. 최근 A매치에서 몇차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년간 대표팀에서 꾸준히 중용되며 좋은 경기를 펼친 경우도 많았음에도 유독 실점장면만 부각되며 과도한 비난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북아일랜드전처럼 오히려 파트너인 김민재보다 더 안정감 있는 활약을 펼쳤음에도 장현수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댓글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호날두나 메시라도 경기에서 못하면 비판을 받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대안도 없이 맹목적으로 "OOO 때문에 졌다"거나 "OOO은 무조건 대표팀에 뽑지 말라"고 비난하는 것은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부진의 책임을 특정인에게 전가하는 감정적인 분풀이에 불과하다. 지금은 그저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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