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토냐> 포스터.

영화 <아이, 토냐> 포스터. ⓒ 누리픽쳐스


어렸을 때부터 피겨스케이팅에 관심을 갖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토냐 하딩(마고 로비 분). 극악한 엄마 라보나 골든(앨리슨 제니 분)의 폭력적인 관심과 가르침 하에 피겨계의 스타로 떠오른다. 반면, 토냐는 자신만의 개성과 자유분방한 성격, 돌출행동으로 가십에도 자주 등장한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킬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지만, 고급스럽지 않은 의상을 입고 하드록 음악을 틀고 스케이팅을 타는 이 선수를 심사위원들은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였고, 1992년 알베르빌과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러나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직전 일어난 '그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더 이상 피겨스케이팅을 타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녀에게 '은반 위의 악녀'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부여했으며, 미국 피겨스케이팅 추락의 빌미를 제공했다.

영화 <아이, 토냐>는 토냐 하딩이 '그 사건'으로 추락하기까지의 일생을 되짚는다. '그 사건'은 1990년대 미국을 발칵 뒤집은 '낸시 캐리건 습격 사건'으로, 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사건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낸시 캐리건 습격의 배후로 지목됐던 토냐 하딩은 이 일로 피겨스케이팅 계에서 제명됐다.

토냐 하딩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상 자신이 낸시 캐리건 습격사건의 배후임을 시인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부인했다고 한다. 영화는 그녀의 비공식적 부인에 맥락을 맞춘 듯하다. 덕분에 우리는 역사적 가십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게 이 영화가 이 사건을, 토냐 하딩을 25여 년 만에 끄집어내 우리 앞에 내놓은 이유인 듯하다.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 누리픽쳐스?


'토냐 하딩'의 이야기

영화는 토냐 하딩이 뛰어난 피겨스케이팅 실력을 갖추게 된 데에 엄마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말한다. 엄마 라보나는 어렸을 때부터 토냐의 소질을 알아보고 전문 훈련을 시켰다. 힘든 상황일수록 분노의 힘으로 더욱 열심히 하는 토냐의 성격까지 완벽히 파악해 피도 눈물도 없는 훈계와 폭력으로 대했다. 칭찬 따윈 없었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조차도 토냐를 나약하다고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라보나는 토냐에게 있어 최고의 팬이자 둘도 없는 매니저였다.

엄마의 폭력이 극에 달했을 때 토냐는 남자친구 제프 길롤리(세바스찬 스탠 분)에게로 간다. 우연히 만난 그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그는 폭력적인 광인이었다. 엄마의 일상화된 폭력에서 빠져 나와 정착한 곳이 또 다른 폭력 지옥이었던 것.

첫눈에 반해 격렬한 사랑으로 결혼까지 한 그들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끝없는 폭력으로 얼룩진다. 엄마와 남편의 폭력 성향은 토냐로 하여금 개성 있고 자유분방하다 못해 반사회적이기까지 한 성격을 갖게 했을지도 모른다.

토냐 인생에 가장 큰 선물과 가장 치명적인 불안을 안긴 엄마와 남편.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의 한 축을 이룬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면서도 블랙 코미디 요소를 끌어들였다. 그때 그 시절의 느낌과 캐릭터를 최대한 그대로 가져와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 대사로 차용했지만 진지하지 않은 편집과 음악, 영화적 기법 등을 통해 더 깊은 감정이입은 차단한다.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 누리픽쳐스


토냐 하딩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들

토냐는 개성 있고 자유분방한 데다가 반사회적이기까지 한 여성이었다. 1980~90년대 미국은 절제와 통제의 시대로 진입해 있었다. 스포츠 종목 중 유독 여성적인 피겨스케이팅은 실력만큼 외모와 이미지를 중시했다. 능동적이고 진취적이게 느껴지는 토냐의 외모와 이미지는 그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당했다.

토냐의 품행은 언론에도 완벽한 먹잇감이었다. 그녀의 삶, 그 이면을 잘라내고는 대중이 많이 찾을 만하게 재단해 내놓았고, 그녀의 실력이 절정기에 있을 때에는 그 유명세에 기댔으며,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찍어 그야말로 버려버렸다. 

그 사건, 피해자 낸시 캐리건은 토냐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이 원하는 여성상에 거의 완벽히 부합하는, 그야말로 토냐와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습격한 괴한은 토냐의 전 남편과 보디가드와 연루된 사람이었다. 토냐는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았고, 결국 미국 피겨스케이팅 계에서 축출됐다. 토냐는 자신이 배후라고 인정하기도 했고, 부인하기도 했다.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 누리픽쳐스?


영화는 토냐 하딩의 삶을 여러 면에서 조명한다. 실력은 좋았지만 외모와 개성 때문에 주류 피겨스케이팅 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토냐. 엄마와 남편의 학대에 시달린 토냐. 승부를 위해 동료 선수 낸시 캐리건 습격사건을 사주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론 전 남편과 보디가드가 그녀 모르게 꾸민 범죄의 희생양이었을지도 모르는 토냐 등등. 아마도 영화는 토냐 하딩의 영원한 낙인 '은반 위의 악녀'에 수식어 하나를 더 붙어줄 요량이었던 듯하다. '미워할 수 없는' 정도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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