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가 무려 71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히 경기 출전에 만족하지 않고 번뜩이는 활약상을 남겼다.

이승우는 15일(아래 한국시각) 이탈리아 볼로냐 스타디오 레나토 달라라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 32라운드 볼로냐와 맞대결에서 0-1로 뒤진 후반 22분 그라운드를 밟았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팀의 패배를 막은 것은 아니지만 이승우의 움직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승우는 수비가 밀집한 좁은 공간을 장기인 드리블로 뚫고 나오며 득점 기회를 만들었고, 페널티박스 안쪽에서의 과감한 드리블로 페널티킥을 기대케 한 장면을 연출했다. 후반 43분에는 자신을 막으려던 수비수를 가볍게 따돌린 뒤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볼로냐 미란테 골키퍼 선방에 막혔지만 이날 베로나가 시도한 슈팅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엘라스 베로나의 이승우가 지난 15일 베로나 인근의 구단 전용 연습장에서 유니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엘라스 베로나의 이승우가 지난 2017년 11월 15일 베로나 인근의 구단 전용 연습장에서 유니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오랜만에 경기에 나선 이승우에게 박수를 보냈다. 베로나 지역 언론 '헬라스 1903'은 "이승우의 슈팅은 베로나의 유일한 위협적인 장면"이라 언급했고, 이승우에게 팀 내 최고 평점인 6점을 부여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베로나가 유일하게 상대를 위협한 장면은 이승우의 작품"이라면서 "이승우는 뭔가를 해보려고 시도한 유일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유로스포르트' 이탈리아판은 "이승우는 팀을 구원할 골을 위해 싸울만하다"라면서 "이승우의 잔여 시즌 기용 자격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볼로냐전 평점에서도 베로나 선수 중 최고점인 7점을 이승우에게만 줬다. '벤치' 혹은 '결장' 소식을 가장 많이 전해야 했던 국내 언론도 이승우의 활약에 칭찬 일색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언론과 팬 모두 1경기, 교체로 나선 짧은 시간의 활약상에 너무 큰 기대를 품고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20살 이승우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격려와 응원

베로나는 올 시즌 리그 6경기를 남겨둔 현재(16일 기준) 19위다. 17위 스팔과 승점 차는 3점에 불과하지만 강등권 탈출이 쉽지 않다. AC 밀란과 유벤투스 같은 세리에 A 강팀과 경기도 남아있다. 급작스럽게 팀 전술에 변화를 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승우는 여전히 교체 카드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승우는 프로 데뷔 시즌 많은 것을 배웠다. FC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으로 일찍이 스타덤에 올랐지만, 성인 무대는 만만치 않았다. 시즌 막바지에 다다른 현재까지도 리그 선발 출전은 한 차례도 없다. 리그 9경기 167분, 코파 이탈리아컵 2경기를 소화한 것이 기록의 전부다. 소속팀은 세리에 B(2부) 강등이 유력하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하고 있다. 

 23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전반전 한국 이승우가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23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전반전 한국 이승우가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월, 이승우는 베로나에서 선발과 조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던 지암파올로 파찌니, 측면의 핵심 마르틴 카세레스, 컵 대회에서 이승우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다니엘 베사 등 핵심 전력이 팀을 떠났음에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새롭게 팀에 합류한 브루노 페트코비치, 히데르 마투스 등이 큰 문제 없이 출전 기회를 받는 것과 대조됐다.

이승우는 출전 시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급해졌다. 과도한 긴장과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장기인 드리블은 볼 수 없었고, 평범한 패스는 실수로 이어졌다. 공격 포인트를 올리거나 위력적인 슈팅이 나올 리 만무했다. 우리가 알고 기대했던 이승우가 아니었다. 성인 무대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승우는 경기 감각에 대한 우려가 컸음에도 좋은 활약상을 남겼다. 신체 조건의 약점을 메우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짧은 시간에도 드러났다. 자신보다 10cm 이상 큰 수비수와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고, 스피드도 여전했다. 바르셀로나의 과거를 잊고 훈련에만 매진한 결과다.

조금씩 늘려나가면 된다. 올 시즌 리그 선발 출전이 없으면 어떤가. 이승우는 아직 20세다. 그와 비교하는 선수가 킬리안 음바페, 마커스 래쉬포드와 같이 세계 최정상급 선수여서 그렇지 이승우는 제대로 성장하고 있다. 연령별 대표팀과 '2017 U-20 월드컵'에서 수차례 증명했듯, 최소한 한국에서만큼은 특별한 재능임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그가 경쟁하는 무대는 이탈리아 세리에A다. 

올 시즌 남은 리그 6경기에서 확실한 교체 자원으로만 자리 잡아도 충분하다. 또다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해도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프로의 세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확인했고, 살려 나가야 할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낯선 타지에서 굵은 땀방울을 아끼지 않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20살 이승우.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과한 기대나 비판이 아닌 격려와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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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헬라스 베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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