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에서 손흥민의 부상 상태를 밝히는 조제 모리뉴 토트넘 감독

조제 모리뉴 토트넘 감독 ⓒ AFP/연합뉴스


손흥민이 부상으로 결장한 토트넘이 충격적인 유로파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토트넘은 19일(한국시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2020-21 UEFA 유로파리그' 디나모 자그레브와의 16강 2차전서 0-3 완패를 당했다.

토트넘은 지난 1차전 홈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유리한 고지에 있었지만 이날 패배로 1~2차전 합계 2-3으로 밀리며 8강행 티켓을 얻는데 실패했다. 1983-84시즌 이후 37년만의 유로파리그 우승에 도전했던 토트넘의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날 출전 명단에서 제외된 손흥민은 지난 15일 아스널과 프리미어리그 '북런던 더비' 도중 왼쪽 허벅지 뒷근육(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공간침투를 앞세운 골결정력은 물론 상대 수비를 끌고다니며 찬스를 만들어내는 손흥민의 부재가 토트넘의 전체적인 공격력 약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손흥민의 부재는 토트넘의 졸전을 설명할 결정적인 핑계는 되지 못할 듯하다. 결국 시즌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플랜B'가 없는 모리뉴 감독의 소극적이고 안이한 용병술이 이런 참사를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다.

토트넘은 원정에서 열린 2차전에서 또다시 수비적인 전술로 나섰다. 홈에서 열린 지난 1차전에서 실점하지 않고 2골을 벌어둔 상태였고 손흥민도 없는 상황이라 다소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추구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상 토트넘이 자그레브보다 우위에 있었고 또 자그레브는 조란 마미치 감독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령탑을 잃은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토트넘은 이런 자그레브를 상대로 라인을 내리고 노골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세적인 플레이로 일관하다가 오히려 상대 공격 흐름을 살려주고 말았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자그레브는 후반들어 잃을 것이 없다는 각오로 총공세에 나섰다. K리그 출신 미슬라프 오르시치(한국명 오르샤)에게 2골을 허용하며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갔고, 연장전에서 한 번 더 실점하여 헤트트릭을 내주면서 대역전 드라마의 희생양이 됐다. 포체티노 감독 시절인 2018-19시즌 아약스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2차전 전반까지 합계 전적 2-0으로 끌려다가다 루카스 모우라의 헤트트릭으로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던 '암스테르담의 기적'이 자그레브에서 똑같이 재현된 꼴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토트넘이 비극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설상가상 모리뉴 감독이 경기후 패배의 책임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듯한 인터뷰까지 하면서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BT스포츠' 등 영국 현지 언론들은 모리뉴 감독의 인터뷰를 보도하며 "자그레브는 땀과 에너지, 피를 남겼다. 마지막에 그들은 행복의 눈물까지 흘렸다. 아주 겸손하고 헌신적이었다. 그들을 칭찬한다"고 상대팀를 호평했다.

반면 토트넘에 대해선 혹평을 남겼다. 모리뉴는 "나의 팀은 중요한 경기에서 뛰는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으나 내게는 중요했다.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져야한다. 축구는 단순히 선수 수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에 달렸다. 상대는 우리를 그 부분에서 이겼다"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토트넘 선수들의 집중력에 아쉬움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에게 최상의 경기력을 끌어낼 책임이 감독에게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모리뉴 감독의 질타는 자기 얼굴에 침뱉기일 뿐이다.

토트넘이 지난해 포체티노를 경질하고 모리뉴를 데려온 것은 우승을 위해서였다. 지난 시즌은 중도에 지휘봉을 잡은데다 부상선수가 속출하며 모리뉴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올시즌은 온전히 모리뉴 감독이 원하는 팀컬러와 선수구성으로 임했다. 

초반에는 각종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우승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 이후 단조로운 용병술과 수비불안이 도마에 오르며 모리뉴 감독의 실리축구는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FA컵에서 탈락했고 EPL도 8위에 머물며 다음 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주어지는 톱4 진입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유로파리그도 16강에서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이제 토트넘에게 우승 가능성이 남은 대회는 결승전에 올라있는 리그컵(카라바오컵) 뿐이지만 하필 상대가 현재 EPL 선두이자 컵대회 4연패에 도전하는 강호 맨체스터 시티라 현실적인 우승 가능성은 낮다. 2007-08시즌 리그컵 우승 이후 무관에 그치고 있는 토트넘으로서는 이대로라면 올시즌 역시 빈손으로 끝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모리뉴 감독은 적어도 올해는 선수나 외부 환경을 탓하기 어렵다. 포체티노 전 감독 시절과 비교하여 올해의 토트넘은 대대적인 전력보강을 통하여 가레스 베일, 세르히오 레길론, 에밀 피에르 호이비에르, 비니시우스, 조 하트 등 더블스쿼드에 가까운 전력을 구축했다. 케인과 손흥민은 EPL 최고의 공격듀오로 자리매김하며 시즌 중반까지 팀을 하드캐리했다.

대진운도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일찌감치 유로파리그 예선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했던 부담은 있지만 다른 강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토트넘은 예선에서 조별리그-토너먼트까지 유럽 5대 리그에 속해 있거나 대회 우승후보로 꼽힐 만한 강팀을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자국 컵대회에서도 첼시를 승부차기 끝에 꺾은 것을 제외하면 강팀을 줄줄이 피하는 행운이 이어졌다. 하지만 FA컵에서 유일하게 토트넘보다 리그 순위가 높은 에버턴을 16강전에서 만나자 바로 대량실점을 허용하며 연장접전 끝에 무너졌다. 바꿔말하면 대진운조차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토트넘은 지금보다 더 참혹한 성적을 거뒀을 가능성도 높다.

토트넘이 만일 올시즌도 무관에 그치거나 다음 시즌 유럽클럽대항전 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주축 선수들의 거취도 불투명해진다. 전성기에 접어든 해리 케인이나 손흥민같은 핵심 선수들이 굳이 토트넘에서 미래를 기약해야할 희망이 사라진다. 최근 몇 년간 커리어가 지속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모리뉴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토트넘이 모리뉴 감독과 이별할 타이밍을 가늠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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