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득점  26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안컵 여자부 한국과 대만의 경기. 고민정이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고민정 득점 26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안컵 여자부 한국과 대만의 경기. 고민정이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연합뉴스

 
이번에도 한국축구가 성장하고 있다는 희망은 충분히 보여줬다. 다만 이제는 '아잘싸(아쉽지만 잘싸웠다)'를 넘어서 결실을 만들어내는 '위닝 멘탈리티'도 갖춰야 할 시점이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은 26일 오후 4시 일본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EAFF-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최종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4-0 완승을 거뒀다. 전반 35분과 전반 40분 터진 이민아의 멀티골과 전반 38분 강채림의 추가골로 5분 사이에 3골을 몰아친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 터진 고민정의 쐐기골까지 더하여 기분좋은 완승을 이뤄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콜린 벨호는 1승 1무 1패(승점 4점)의 성적을 기록하며 동아시안컵 최종 3위로 대회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일본은 최종전에서 중국과 득점없이 비겼지만 2승 1무(승점 7점)를 기록하면서 동아시안컵 2연패 및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했다. 중국이 1승 2무(승점 5점)로 2위, 3전 전패를 당한 대만(승점 0점)이 최하위가 됐다. 한국은 2005년 대회에서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이후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안컵에서 콜린 벨호에 대한 평가는 내용은 매우 우수,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로 요약된다. 벨 감독이 자평한 대로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준 팀이었다. 하지만 우승을 노렸던 한국은 첫 경기에서 일본에 1-2로 패했고, 중국에게는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1-1로 비기며 아쉬운 결과에 그쳤다. 2경기 모두 상대와 대등하거나 우세한 경기력을 보이고도, 후반 중반 이후에 뼈아픈 실점을 허용하며 '뒷심 부족'에 발목이 잡혔다.
 
홈팀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A매치 경험이 없는 23세 이하 어린 선수들로 구성됐다. 대표팀 주축인 베테랑 대다수가 유럽에서 뛰고 있어서 일본은 유럽 클럽팀들의 A매치 차출 의무가 없는 동아시안컵에 결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이 경기를 주도하며 일본보다 더많은 찬스를 만들었지만 결정력 부족이 아쉬웠다. 반면 한국전에서 골을 넣은 히나타 미야즈와나가노 후카는 모두 1999년생의 어린 선수들이었다. 일본전 패배 후 벨 감독이 이례적으로 선수들을 질타하며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했을 정도다.
 
중국전 역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전반까지 한국은 볼점유율과 슈팅숫자에서 중국에 유효슈팅을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 중반 들어 1-0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후반 31분 왕린린에 뼈아픈 실점을 허용하며 또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에이스 지소연을 최전방 대신 플레이메이커에 가깝게 활용한 전술은 점유율과 중원 장악에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반대로 최전방의 결정력 부족이라는 또다른 문제점을 야기하며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대표팀의 고질적 뒷심 부족은 곧 뼈아픈 역사로 이어져왔다. 특히 중국전에서는 잇달아 역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지난해 4월 대표팀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중국에 합계 스코어 3-4로 밀려 첫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당시 1차전에서 1-2로 진 대표팀은 2차전 전반전에서 2-0으로 앞서며 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후반전에 뼈아픈 한 골을 내주며 동점이 되어 연장전으로 접어들었고, 결국 연장에서 다시 결승골을 내주면서 무릎을 꿇었다. 지난 2월 있었던 2022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결승전에서도 전반 2골을 지키지 못하고 후반에만 세 골을 내리 실점하며 통한의 2-3 역전패를 당했다.
 
일본도 2019년 동아시안컵 3차전에서 한국에 비수를 꽂은 바 있다. 당시 중국(0-0 무)~대만(3-0 승)전에서 1승 1무를 거둔 한국은 일본을 꺾으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경기 막판 페널티지역에서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PK)을 허용하며, 결승골을 내주고 다잡은 우승컵을 놓친 바 있다. 반복되는 뒷심부족은 한국여자축구가 중요한 고비에서 약한 '새가슴'이라는 오명을 안게 된 이유다.
 
장기적으로 한국 여자축구가 아시아 정상, 나아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일본과 중국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과 역대 전적에서 4승 11무 18패, 중국에는 4승 8무 29패에 그치고 있다. 한국이 두 팀을 상대로 마지막으로 승리한 것은 모두 2015년이 마지막으로 무려 7년 전이다. 콜린 벨 감독 부임 이후 꾸준한 경기력 향상으로 일본-중국과의 격차를 좁힌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승리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반 중반 계속해서 뼈아픈 실점을 허용한 것은, 실력보다는 집중력의 문제다. 그리고 집중력은 곧 체력과 무관하지 않다. 박빙의 승부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한국 선수들은 지친 기색을 보이며 패스 미스와 슈팅 실패가 잦아지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도 체력이 떨어지면 집중력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는 대표팀에서의 체력관리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대표급 선수라면 결국 소속팀과 리그를 통하여 기본적으로 유지-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다. 콜린 벨 감독은 WK리그에서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의 훈련량이나 경기중 활동량이 다른 국가의 리그들과 큰 차이가 없다면서, "고강도 움직임이나 전력질주 횟수에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또한 선수들도 이제는 '이기는 습관'을 들이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선제골을 넣거나 잘싸우고도 결과를 가져오는 경기가 반복되면, 선수들에게는 불안감과 매너리즘이 싹트게 된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전에서 한국 선수들은 이기고 있거나 대등한 승부를 하고 있음에도 후반에 골을 터지지 않자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위닝 멘탈리티가 강한 팀들은 아무리 부진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내거나 강팀을 잡아내는 경험을 통하여 한 번 한계를 넘어서고 나면 더 큰 성장이 가능하다. 남자축구대표팀이 이전까지 1승까지 거두지 못하다가 2002 한일월드컵에서 철전한 준비와 반전으로 4강신화를 이뤄낸 것이 대표적이다.
 
콜린 벨호의 다음 과제는 내년에 예정된 호주-뉴질랜드 공동 개최의 2023 FIFA 여자월드컵이다. 체력과 집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위닝멘탈리티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내년 월드컵에서도 희망고문과 정신승리에만 만족해야 할 수도 있다. 올림픽-아시안컵 등 이미 수많은 기회를 아쉽게 놓친 여자축구가 다가오는 월드컵에서만큼은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팬들이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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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벨호 여자축구 동아시안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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