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7일 대한민국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5성급 L호텔, 모두가 늦은 심야에 갑자기 사람들이 대거 운집하며 긴장된 분위기가 형성됐다. 호텔 주변에 경찰에 특수부대까지 출동하여 삼엄한 경비를 세웠고, 취재진을 비롯한 외부의 접근도 철저하게 제한됐다. 이유는 한 특별한 '국빈'의 방문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이자 최고 실권자였다. 빈 살만은 왜 한국을 찾았고, 한국은 왜 빈 살만에 그렇게 열광했을까. 12월 24일 방송된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1334회는 '노아의 방주인가 바벨탑인가-빈 살만과 네옴시티'편을 통하여, 한국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빈 살만의 행적과 그가 추진하는 미래도시 프로젝트의 현실성을 조명했다. 
 
2017년에 7천명에 이르는 사우디 왕자들을 제치고 왕세자로 책봉된 빈 살만은, 5년만에 총리직까지 오르면서 86세가 된 아버지 살만 국왕을 제치고 사우디의 실권을 장악한 인물이다. 빈 살만은 권력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왕족과 정적들을 가차없이 숙청하기도 했다.
 
세계 2위 산유국인 사우디의 지배자가 된 빈 살만은 흔히 중동 부호의 대명사로 꼽히는 만수르(UAE며 부총리)보다 무려 35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2조 달러(2400~2600조)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모든 것은 빈 살만으로 통한다'는 의미의 '미스터 에브리띵'이라는 별명은, 그만큼 빈 살만이 절대권력을 확립했음을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빈 살만이 한국에 방한하여 머문 시간은 약 20시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내에서 내내 화제가 됐다. 우리 정부는 빈 살만을 국빈으로 특급 대우했고 방한 내내 투자와 경제효과를 부각시키며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국내 재계에서도 빈 살만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모아지며 국내 대기업의 재벌 총수들이 그가 머운 호텔에 총출동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빈 살만의 '네옴 프로젝트'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한 장면.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한 장면. ⓒ SBS

 
이처럼 빈 살만이 한국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그가 직접 구상했다는 '네옴 프로젝트' 때문이다. 사우디의 발전 계획인 '사우디 비전 2030' 플랜의 하나인 네옴 프로젝트는, 사우디 서북부 사막 지역에 서울의 40배가 넘는 면적의 미래도시를 건설한다는 초대형 기획이다.
 
여기에는 한국과 비유하면 서울에서 강릉에 이르는 약 170Km에 이르는 구간에 롯데타워와 비슷한 높이의 고층건물을 연이어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도시 건설비용만 최소 5천억달러(약 68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장되며, 이는 '사막의 기적으로 불리던 UAE의 두바이 건설을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사되다면 지구가 생긴이래 최대의 사업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빈 살만은 석유 부국인 사우디 출신임에도 이 거대한 미래도시를 석유가 아닌, 1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친환경 미래도시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빈 살만은 미국 영화 <블랙팬서>의 팬이었고 극중에 등장하는 미래도시 '와칸다'에서 감명을 받았다고.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 기획의 현실성에 우려와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김영환 성균관대 경제학교 교수는 "사막위의 신기루와 같은 기획"이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빈 살만의 방한 이후 한국에서는 한동안 곳곳에서 장및빛 전망과 뉴스들이 속출했다. 정부도 원희룡 장관 등 주요 관계자들이 직접 나서서 "네옴 프로젝트가 제 2의 중동특수가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기획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그건 저희에게 물어볼 게 아니라, 빈 살만이 책임질 일"이라고 한 발을 뺐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의 서방 주요 외신들은 빈 살만과 네옴 프로젝트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반응이 대다수여서 눈길을 끈다. 튀르키예 기자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시나씨 알파고는 "한국에는 중동의 현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진짜 기본도 모른다"고 강도 높게 지적했다. 이광수 애널리스트는 "빈 살만이 왜 그렇게 많은 나라중에서 굳이 한국을 방문했을까. 그 답을 한국이 먼저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며 의미심장한 경고를 남겼다.
 
빈 살만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뉴캐슬을 인수하고 코로나19기간동안 주가가 하락한 세계 유망 기업들의 주식을 싹쓸이하는 등 '통큰 씀씀이'로 주목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빈 살만을 바라보는 서구권의 시각은 대체로 차갑고 부정적이다. 빈 살만은 권력장악과정에서 정적들에 대한 가혹한 반인권적 탄압과 숙청 의혹을 받고 있다.

빈 살만의 부패와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대하여 비판 보도를 했던 사우디 출신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의문의 암살을 당한 사건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빈 살만을 비판하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석유 증산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자, 빈 살만이 면전에서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굴욕을 준 장면도 큰 화제가 됐다. 

빈 살만은 이후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시진핑의 중국- 푸틴의 러시아와 밀월관계를 형성하며 신냉전으로 향해가는 국제질서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미국 언론들은 빈 살만의 행동이 미국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분석하며 '중동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러시아와 중국의 중동진출을 막으려는 나를 감당하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네옴 프로젝트 역시 빈 살만 본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정작 사우디 내에서는 빈 살만에 대한 우호적인 반응이 높아지고 있다. 본래 사우디는 중동 국가중에서도 이슬람 원리주의(와하비즘)가 강하고 여성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런데 빈 살만이 집권한 이후로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최근 사우디를 방문했던 여행 유튜버 이지은씨는 빈 살만 집권 이후 외국인 여행자들에 대한 입국 비자가 해제됐고, 여성들도 히잡을 안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또한 사우디 유학생 샤리파는 서구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자국내에서는 사회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여성에 대한 대우도 달라지면서 빈 살만에 대한 인기와 지지가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사우디 교민의 증언이나 현지인들과의 인터뷰, K팝 스타들의 사우디 진출 등의 사례를 통하여, 그동안 우리가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빈 살만의 사우디가 개방적인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다는 증언들이 속속 나왔다.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한 장면.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한 장면. ⓒ SBS

 
그런데 빈 살만이 주도한 이러한 개혁과 개방은 단지 인기를 끌기 위한 포퓰리즘일까. 현재 사우디의 국가재정은 석유로 인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빈 살만은 국영 방송에서 국가 비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우리는 산유국이자 부국은 아니다. 과거에는 인구가 적었는데 석유가 많았기에 부유했다. 하지만 이제 인구는 2천만이 넘었다. 지금까지의 저축액을 보존하고 수단을 배분하지 않으면 매일매일 가난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빈 살만은 '비전 2030'을 제시하며 대대적인 사우디 개조를 위한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네옴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에 해당한다. 이러한 국가 개조 프로젝트는 빈 살만 역시 사활을 걸고 진행하는 승부수이며, 그 성공 여부에 따라서 빈 살만의 정권 안정화와 장기집권까지 좌우할 수 있다.
 
빈 살만은 자신의 계획에 대한 의심과 불안, 저항 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만일 당신의 정체성이 세계와 공존할수 없다면 정체성이 약한 것이므로 버려야 한다"며 단호한 철학을 드러냈다.

안정성과 경제적 타당성에서 의문
 
그렇다면 빈 살만이 구상하고 있다는 미래도시 '더 라인'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롯데타워나 부르즈칼리파 등과 맞먹는 높이의 고층건물들을 대규모로 짓는다는 구상을 현실화하려면, 지진, 화재, 풍압같은 다양한 재해에 대한 대비, 건물 유지와 관리에 드는 비용 문제 등을 두루 고려야 한다.
 
하지만 국내 건축-안전 전문가들은 '더 라인'의 설계와 조감도를 분석한 결과 안전과 경제적인 타당성 모두 확신할 수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빈 살만이 주장하는 신재생 에너지 사용 역시 기술적이 문제로 현실화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교 교수는 "이것은 SF적인 도시다. 이 도시가 완성되는 시점은 건설하는데 달린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실현 가능할 정도로 개발되는 시점에 달렸다"라고 진단했다.
 
서구 건축가와 환경전문가들은 빈 살만의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전형적인 마케팅이자 '그린워싱(환경친화적인 특징들을 제시해놓고 실제로는 변화가 없이 사업적인 이득만 취하는 것)'의 수단이라고 평가절하한다.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나 설명이 없다는 것도 지적됐다. 파브리지오 치카 뉴질랜드 도시설계공학 교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필요한가' 환경을 지키기 위하여 필수적인가'라고 했을 때, 답은 '필요없다'이다"라고 일축했다.
 
알파고는 "사람들이 더 라인 프로젝트와 네옴시티를 혼동한다. 네옴시티는 팔각형 도시(옥사곤)을 의미하는 거고, 더 라인은 그 이후로 추가된 것이다. 더 라인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옥사곤만 잘되면 자기네 목표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네옴시티의 진짜 목표는, 산업생산단지인 옥사곤에 세계 최고의 인재와 기업들을 유치하고 그 원천기술을 빼내려고 한다는 것. 알파고는 그 근거로 "장소는 사우디인데, 사우디 기업이 없다. 프로젝트가 잘되면 돈만 버는게 아니라 노하우까지 버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사우디에 더 이득"이라고 지적했다.
 
빈 살만은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2040년이 되면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공평하게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에 알파고는 "빈 살만은 치밀한 사람이다. 노 리스크 노 리턴'이라는 전략을 제대로 할줄아는 사람이니 무서운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중동 특수'에 대한 한국의 막연한 환상도 짚어넘어갈 필요가 있다. 중동의 건설사업을 수주하여 한국의 외화벌이에 큰 도움이 되었던 중동 특수는 1970년대에 딱 한번 발생했고, 당시는 국내 근로자들을 저노동 고임금으로 활용할수 있었던 구조였기에 입찰에서 경쟁력을 발휘할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상황이 불가능하다.
 
2013년 UAE 플랜트 사업 수주했던 건설사들이 잇달아 대규모의 영업손실을 본 사건은, 중동특수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중동 수주에 집착한 한국 업체들끼리의 저가 경쟁이 과열되면서 제살을 깎아먹는 구조가 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라크 주택사업에 참여했던 H건설은 공사대금이 수차례 지연되면서 결국 막대한 손해만 보고 사업을 철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내 전문가들은 빈 살만이 한국에 관심을 보인 이유가 오직 '낮은 가격' 때문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빈 살만은 올해 '패싱 논란'이 있었던 일본과는 이미 훨씬 전인 2017년부터 수주 협상을 진행해왔다.한국-중국-일본 등 국제적인 인프라 수주경쟁이 심해지면 더 이상 과거처럼 회사가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 된다.
 
네옴 프로젝트의 성패와 그에 따른 리스크는, 해당 기업만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네옴시티 수주를 위한 외교적 지원은 몰론이고 국책은행을 통하여 거액의 지원까지 추진하고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만일의 사태를 경계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이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국민들이 관심있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가 공유된되고 안전장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과연 네옴 프로젝트는 한국 경제를 위기에서 살리는 '노아의 방주'일까, 아니면 무모한 탐욕이 빚어낸 또다른 '바벨탑'이 될까. 인터뷰에 참여한 많은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전자가 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동특수라는 막연한 환상만이 아닌, 정부과 기업의 치밀하고 현실적인 전략, 그리고 국민들의 냉정한 감시와 견제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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