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기자회견하는 클린스만 감독 축구 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2023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최종전 말레이시아와의 경기를 하루 앞둔 24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식 기자회견하는 클린스만 감독 축구 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2023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최종전 말레이시아와의 경기를 하루 앞둔 24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수들은 사죄했고, 팬들은 분노했다. 그럼에도 정작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침묵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은 이번에도 혼자만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나타나서 자화자찬으로 일관했다.
 
지난 2월 8일 '2023 카타르 AFC 아시안컵' 일정을 마친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64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노렸던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요르단에 졸전 끝에 0-2로 완패하며 우승의 꿈이 좌절됐다. 주장 손흥민을 비롯한 유럽파 선수들은 현지에서 곧바로 소속팀에 복귀했고, 코칭스태프와 국내파 선수들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대표팀은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해외파 다수가 포함되며 '역대 최강의 전력'으로까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경기력은 내내 심각했다. 대표팀은 6경기에 무려 10실점을 기록하며 한번도 클린시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정규시즌 90분 이내에 거둔 승리는 조별리그 첫 경기인 바레인전뿐이었다.
 
조별리그 2차전부터 4강전까지 대표팀은 5경기 연속으로 상대팀에 리드를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펼쳐야 했다. 토너먼트에서 사우디와 호주를 상대로 2연속 연장승부 끝에 대역전승을 거두며 '좀비축구'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지만, 내용상으로는 졸전에 가까웠다. 특히 마지막 경기였던 준결승에서는 피파랭킹 87위의 요르단에 한국축구 아시안컵 역사상 최초로 유효슈팅을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완패를 당했다. 요르단전 이후 축구팬들의 여론은 일제히 충격과 분노로 들끓었다.
 
실망스러웠던 전술과 선수구성 

사령탑인 클린스만은 대회 내내 선수구성에서부터 전술과 경기운영 등에서 모두 낙제점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사실상 선수들의 개인 능력에만 의존하는 무색무취한 축구로 일관했다는 평가다. 오죽하면 외신들에서도 클린스만을 '한국축구의 불안요소'로 거론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요르단전 패배 직후 실망하고 좌절하는 선수들이나 팬들과 달리, 혼자만 유유자적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클린스만의 포착된 것은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난 1년여간 거듭된 클린스만의 연이은 기행과 근무태만을 참고 지켜봐야 했던 팬들은 아시안컵마저 최악의 결과로 마감하자 일제히 경질을 외치고 있다. 덩달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클린스만을 선임하고 사실상 전횡을 방치해 온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비판도 커졌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클린스만이 과연 어떤 입장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됐다. 클린스만은 이미 탈락 직후 카타르 현지 기자회견에서 향후 거취에 대하여 아시아컵 결과 분석과 월드컵 예선 준비 등을 언급하며 간접적으로 감독직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힌 바 있다.
 
귀국 당시에도 역시 클린스만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여유로운 얼굴로 공항에 등장한 클린스만은 "이번 대회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며 아시안컵 성과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또한 앞으로도 월드컵 예선에서 계속 대표팀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감독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에 대해서는 "솔직히 여론이 좋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지난 1년동안 우리 팀은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여전히 여론과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대표팀의 귀국을 보기 위하여 공항에 모인 팬들은 클린스만이 나타나자 곳곳에서 야유를 쏟아냈다. 인터뷰하는 클린스만을 향해 고성과 욕설이 쏟아졌고, 몇 개의 엿사탕이 근처로 날아오기도 했다. 그만큼 여론의 분위기가 격앙되어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아시안컵이 클린스만의 '무능'에 대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회였다면, 대회 직후 보여준 클린스만의 연이은 태도 논란은 그가 얼마나 '무책임'한 인물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장면이었다. 왜 그가 한시라도 빨리 경질되어야 하는지 확신만 더 강하게 심어준 순간이었다.
 
부임 초부터 자신을 향한 비판 여론이 나올 때마다 아시안컵 성적을 통하여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강조해온 것은 다름아닌 클린스만 본인이었다. 지난해 9월 유럽 원정 당시에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감독의 숙명이다. 아시안컵이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올해 초에도 아시안컵 출정을 앞두고 "아시안컵에서 성적을 내면 나의 방식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한 바 있다. 대회 기간 중에는 현지에서 취재중인 기자들에게 "한국은 무조건 결승전에 진출한다. 그러니 결승전까지 숙소 예약을 연장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랬던 클린스만은 아시안컵에서 탈락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바꿨다. 주장 손흥민을 비롯하여 선수들이 나서서 팬들에게 우승 실패와 좋지 못한 경기력에 고개 숙이고 사죄하는 동안, 정작 수장으로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클린스만은 선수들의 뒤에 숨었다.
 
이러한 클린스만의 거짓말과 말바꾸기는 처음이 아니다. 클린스만은 한국 대표팀 감독 취임 기자회견 당시에도 "한국에 상주하며 근무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했으나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클린스만은 잦은 외유와 재택근무, 대표팀 감독 업무와 무관한 번외활동 등으로 비판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국가대표 감독의 업무는 클럽팀과 달라서, 국제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핑계로 일관했다.
 
자신이 직접 했던 말도 지키지 않고, 약속을 하루아침에 말 뒤집기를 밥먹듯이 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을 과연 어떻게 신뢰할수 있을까.
 
비판적 질문엔 동문서답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역전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역전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클린스만이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클린스만은 아시안컵에서 나타난 대표팀의 부진과 관련하여 자신의 책임을 어느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우승 실패 이유를 묻는 말에는 "요르단과의 경기전에는 13경기 무패였다", "아시안컵은 굉장히 어려운 대회"라고 동문서답을 했고, 10실점을 한 경기력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이번엔 "요르단이 우리보다 좋은 팀이었다", "우리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등 다른 동아시아팀들도 중동팀에 고전했다"는 등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또한 대표팀 운영방식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대표팀 감독임에도 외국에서 주로 일하는 근무 방식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클린스만은 "나의 업무 방식이 맞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앞으로도 변화는 없을 것" 이라고 일축했다.
 
결국 아시안컵이 대참사로 끝났음에도, 정작 본인은 전혀 잘못한 것도 책임져야 할 것도 없다는 게 클린스만의 속마음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니 결론은 "4강까지 올랐는데 내가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실망스러운 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클린스만의 일방적인 '가스라이팅'에 한국축구 전체가 농락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비극의 배후에는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대한축구협회가 있다. 석연치 않은 명분과 절차를 통하여 이미 구설수가 많았던 클린스만을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한 것도, 지난 1년 가까이 이해할 수 없는 운영방식을 묵인한 것도 바로 축구협회다.
 
수십억의 연봉을 받는 외국인 감독이 국내에 체류하며 선수 점검과 발굴에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시간에 해외를 오가며 본업에 소홀한 게 정상이었을까. 그 결과가 아시안컵에서 최악의 경기력으로 드러났는데도 문제인식이나 반성은 없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도 '내 맘대로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감독이 정상일까. 그리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과연 대한축구협회는 무엇을 한 것일까.
 
아시안컵은 비극의 끝이 아니라 어쩌면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일개 외국인 감독의 기행에 휘둘려 국가대표팀을 농단하고 있는 지금의 사태는 차라리 '클린스만 게이트'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한국축구의 위기다.
 
클린스만이 한국대표팀 감독직을 물러날 의사가 없고,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대표팀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대놓고 한국축구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축구협회 역시 위약금이나 혹은 다른 정치적인 이유로 클린스만을 손놓고 방치한다면, 이는 한국축구를 더 큰 수렁으로 몰고가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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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인터뷰 축구대표팀 아시안컵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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