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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장애아를 둔 유명인 웹툰 작가가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는 내용을 접한 뒤 유독 마음이 무겁다.

'현재 사안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교사의 행위가 정당한 훈육이었는지, 발달장애 아동에 대한 학대였는지 여부는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학부모 측의 입장문이 있었지만, 재판의 내용과 상관없이 이 사태는 본질적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단편적인 증거로 관계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다. '주호민 사태'라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하여 절절히 해명하고 싶은 이유는, 나 또한 이와 비슷한 일들을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20년차 특수교사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주호민' 화면 캡처
 유튜브 '주호민' 화면 캡처
ⓒ 유튜브 "주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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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민은, 기소된 이유를 보면서 내 경험을 떠올리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자폐성장애 학생을 대할 때는 짧고 정확하게 말하며, 비구어적 표현을 충분히 활용하여 아이가 눈치껏 알아챌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제공하려고 한다.

말이 길어지면 전달력이 떨어지고, 시종 친절한 말투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잘못에 대하여 훈계할 때는 단호한 목소리와 엄한 표정으로 표현하고, 반복적으로 지도할 때가 있다.

물론 아이마다 역치(감각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의 자극의 세기)와 반응이 다름을 전제하고 끊임없이 아이의 반응을 살피며 조절한다. 불안이나 강박의 정도가 높아 불안이 자기 조절을 방해하는 아이를 대할 때는 다독임과 단호함이 균형을 이루도록 조절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엄하기만 하다면 교육의 효과는 무용지물이다. 교사를 좋아하고, 교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아이들의 마음은 당연히 움직이지 않는다.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베풀어 아이들과 좋은 감정이 쌓여있을 때 엄격함과 단호함은 효과를 거둔다.

하기에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살필 때는 전체적이고 다각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녹취나 녹화된 화면 등 단편적인 자료만으로는 관계의 질, 교사의 전반적인 철학과 태도를 판단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살필 때는 전체적이고 다각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살필 때는 전체적이고 다각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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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초등학교를 기준으로 특수학급 수는 한 학급이나 두 학급밖에 없으므로, 특수교사는 한 학생을 여러 해 동안 맡게 된다. 만기를 채우고 학교를 옮기게 되면 5년을 함께 하는 아이들도 있으니, 특수교사는 아이의 적응과 성장 과정에 장기적으로 참여하는 협력자이다.

장애학생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여정이어서 힘겨움을 나누고, 다독임에 힘입어 나아가야 할 과정이다. 지치고 예민해진 장애아 학부모를 보았을 때 나는 '당신의 행동이 아이를 망치고 있다'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괜찮다. 우리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과정이 매우 힘드니 한숨 돌리시라. 그동안 내가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할 테니 다시 힘을 내자'고 말한다.

이것이 서로를 믿고 지지하는 진정한 협력자의 마음일 것이다. 20년간 특수교사로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 올 수 있었던 건 학부모의 신뢰와 지지 때문이었다. 나를 믿지 못해 녹음기를 넣어 보내고, 아이를 훈육하는 토막 증거로 특수교사의 본심을 훼손하는 부모가 있다면 이 힘든 여정을 어찌 함께 갈 수 있을까.

특수교사로서 학부모와 진정한 협력자가 되어, 장애학생의 삶에 긍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이번 사건이 제대로 해명되고 판결 나기를 기대한다.

태그:#주호민, #특수교육, #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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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생을 가르치는 20년차 특수교사입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내 표정을 발견하며 교육이 얼마나 정직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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