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사랑에 빠지면 천생 여자가 된다."

사랑에 빠진 여성에 대한 비유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원래부터 여자인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진짜 여자가 된다고? '천생 여자'가 상냥하고 부드러운 여성을 뜻한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 연애와 젠더 사이 의미심장한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클리셰, 다른 말로 '차별'인 연애 관계 속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이다.

<하트시그널>부터 <나는 솔로>, <환승연애>, <솔로지옥>까지 다큐멘터리처럼 진짜 같고, 드라마만큼 설레는 관찰형 연애 프로그램. 하나의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애 프로그램은 요즘 미디어계의 흥행 수표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연애, 혹은 연인 관계 속 틀에 박힌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류 속에 <연애 남매>가 뜻밖의 방법으로 틀을 깼다.
 
 JTBC <연애남매> 관련 이미지.

JTBC <연애남매> 관련 이미지. ⓒ JTBC

 
연애 프로그램 속 틀에 박힌 성 역할

연애 프로그램 속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은 다양한 방식으로 틀에 박혀있다. 채널 A <하트시그널>에선 왕자님만 기다리는 공주처럼 여성은 수동적인 역할을, 남성은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했다(시즌3에선 차량 내 촬영 장면이 총 31회였지만, 여성이 운전석에 앉은 장면은 한 번도 없었다).

여성 출연진이 이동하기 위해선 남성 출연진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고, 그들은 운전하는 남성 출연진 옆에서 "내비게이션을 잘 본다"고 칭찬하거나 귤을 까주고 생수병을 건넨다. <하트시그널>은 남성 출연진에게만 이동할 권리를 주었다. 이를 통해 '진취적인 남성과 그의 조력자인 여성'이란 전통적인 성 역할을 재현했다. <하트시그널> 시즌3가 방영된 시점은 2020년. 벌써 4년이나 흘렀지만, 연애 프로그램 속 성 역할 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다.

2024년 방영된 넷플릭스 <솔로지옥 3>에서 출연진들은 신체적 매력을 어필했지만, 성별에 따라 방식이 달랐다. 남성 출연진은 '힘'을 어필했다. 예를 들어 여성 출연진을 안고 얼마나 스쿼트를 많이 하는지, 혹은 다른 출연진보다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에 따라 데이트권이 부여됐다. 반면, 어느 여성 출연진은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숙소 내에서 잠옷처럼 보이지 않는 섹시한 의상, 이른바 '독기룩(신체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옷차림)'를 입어 패널들을 당황하게 했다. 

여타 프로그램에서도 장면은 다르나, 맥락은 같다. SBS Plus, ENA <나는 솔로>에서 출연진들끼리 라면을 끓여먹는 장면에서 여성 출연진은 요리를 하지만, 남성 출연진은 "껍질 안 들어가게 조심해라", "국물 닦아서 달라"고 요구한다. 또한 남성 출연진이 당혹스러운 멘트를 던지거나 소위 '빌런'처럼 행동해도 여성 출연진이 그를 포용하는 식의 구도는 기수마다 반복된다.

티빙 <환승연애>처럼 헤어진 커플이 출연해 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프로그램에서조차 여성 출연진이 전 연인과 새로운 인연 사이에서 갈팡질팡 헤매면 '여우' 같다는 시청자 반응이 돌아온다.

로망과 현실이 공존하는 연애 프로그램을 볼수록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연애,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걸 탈피해도, 충분히 '도파민'이 터질 수 있지 않을까?
 
'사람'으로 다가온 출연진, <연애남매>의 새로움
 
 JTBC <연애남매> 관련 이미지.

JTBC <연애남매> 관련 이미지. ⓒ JTBC

 
그 대안에 JTBC <연애남매>가 있다. 처음 만난 출연진끼리 알아가며 사랑에 빠지는 게 지금까지의 방식이었다면, <연애남매>는 다르다. 이진주 PD는 "가족 혹은 관계성 있는 사람이 함께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이 사람의 인생을 입증해줄 수 있기에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라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연애남매>는 남매들이 한 집에 모여 자신의 연인과 혈육의 연인을 함께 찾아가는 형식이다. 출연진들은 누가 누구의 혈육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남매만큼 서로를 잘 아는 사이가 있을까? 그 덕에 <연애남매>에선 자신의 혈육과 데이트할 상대방을 대신 골라주거나 이성의 지목을 받지 못한 혈육을 위로하는 등 우애 넘치는 모습과 함께 사람들 없는 곳에서 투닥거리고 이상하게 꾸민 혈육을 몰래 놀리고 '현실 남매' 같은 순간도 관전할 수 있다.

남매가 연애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다는 포맷뿐만 아니라 출연진을 소개하는 방식도 새롭다. 시작부터 학력, 직업을 밝히고 외모나 신체적인 힘이 매력 포인트였던 프로그램들과 달리 <연애남매>는 가족 서사를 중심으로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주목한다.

초반 회차에서 출연진들은 살아오면서 쉽지 않았던 순간, 혹은 어려운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털어놓는다. 힘든 순간을 남매가 어떻게 함께 이겨냈는지를 듣다보면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빠져들게 된다. 그들의 직업과 학력은 중반 회차에서 공개됐다. 하지만 이는 출연진들이 지닌 다양한 매력 중 하나일 뿐, 시청자들에게 이미 그들은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JTBC <연애남매> 관련 이미지.

JTBC <연애남매> 관련 이미지. ⓒ JTBC

 
이 지점에서 <연애남매>는 연애에 얽힌 젠더 관념을 자연스럽게 탈피한다. '용우'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다정하지만,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런 그가 <연애남매>에 출연하여 처음으로 가족 관계에 얽혔던 힘듦을 고백하고,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출연한 거 같다"는 그의 말에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눈물을 흘리는 용우의 모습은 강인하고 가부장적인 남성상만 보여주었던 그간의 연애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던 장면이다. 연약한 감정을 드러내는 남성 출연진은 용우만이 아니다. '재형' 또한 부모님께 잘해드리지 못한 점을 돌이키며 눈물을 흘리고, '철현' 또한 자신의 가정사를 고백하며 운다.

눈물처럼 극적인 감정이 아니더라도 <연애남매>의 남성 출연진들은 감정 표현에 능하다.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의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자 '정섭'은 "나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고민하고 표현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연애남매>의 여성 출연진들은 단단한 모습을 내비친다. 첼리스트의 꿈을 지키기 위해 홀로 유학길을 떠났던 '윤하'의 이야기나 일찍 가족을 여의고 가장이 되어 가족을 지켰던 '초아'의 결심은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의 삶을 들려준다.

또한 <연애남매>에는 여성 출연진의 독립성을 부각하는 장면이 줄곧 나온다. 운전하는 '지원'과 그 옆에서 이야기를 나눠주는 '철현'의 모습은 여성 출연자가 한 번도 운전하지 않았던 <하트시그널>과 대비된다. 자신의 감정을 당당히 드러내며 애정을 표현하는 '세승'의 모습은 주로 남성 출연진이 관계를 리드하던 연애 프로그램의 서사를 전복한다.

마음껏 우는 남성들과 자유롭게 운전하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여성들. <연애 남매> 속 그들은 사회가 정한 성 역할에서 벗어났기에 더욱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다. 더는 '힘이 세고 강인한' 남성과 '상냥하고 섹시한' 여성의 연애가 아닌 다른 사랑이 보고 싶다. 성숙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 피어내는 사랑, 어쩌면 <연애 남매>가 연애 프로그램 속 젠더 관계에 균열을 내고 있을지 모른다.

진솔한 에너지로 가득 찬 <연애남매>, 이만한 도파민이 또 있을까.
연애남매 솔로지옥 환승연애 하트시그널 나는솔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글은 '그럼에도' 에서 시작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