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8 07:15최종 업데이트 23.08.1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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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멕시코의 텔레비사가 제작한 어린이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은 1989년 10월부터 1991년 7월에 KBS 2TV를 통하여 방송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여전히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모두 교복을 입는다. 교복은 학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신발은 모든 유치원과 학교들이 검은구두 착용을 원칙으로 한다. 체육활동이 있는 날에만 운동화가 허용되지만, 운동화 역시 반드시 흰색이어야 한다 ⓒ 텔레비사


레이스가 달린 하얀 원피스를 즐겨 입던 히메나 선생님과 하얀 깃이 달린 하늘색 카디건을 입은 라우라, 시릴로, 마리아 호아키나, 하이메, 호르헤, 발레리아, 마리오, 그리고 많은 친구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기억 한편에 매일 오후 6시 방송되던 어린이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이 있을 것이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시청자 대열에 합류할 만큼 인기가 좋았다. 

우리에게 다소 멀었던 멕시코의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 이야기였다. '낭만'을 입에 달고 살던 라우라, 선한 시릴로, 공부는 잘 하지만 성격은 까칠했던 마리아 호아키나, 공부는 조금 부족하지만 정의감이 투철했던 하이메, 말썽꾸러기 발레리아, 그런 발레리아를 짝사랑한 모범생 다비드, 그리고 이전 학교에서 말썽 피우고 전학 온 천하의 악동 마리오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주인공이었다.


그 아이들의 중심에 히메나 선생님이 있었다. 더불어 까칠하고 엄격한 펠리시아 오라카 교장선생님과 한없이 너그러운 수위 페르민 아저씨, 그리고 학생들 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했던 보호자들 또한 주인공이었다. 

교실 안에서 학생들과 선생님이 웃고 울고, 그 와중에 갈등도 불거지지만 결국 이런저런 방법으로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이 드라마의 중심이었다. 가끔 악동이 등장하고 악동만큼이나 까칠한 교장선생님이 새로운 갈등 구조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극 전반의 중심 코드는 따스함이었다.

최근 한국에서 교사와 학생, 그리고 보호자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보도를 접하는 중에 30년도 더 된 그 시절의 교실 풍경이 선사했던 따스함이 아득하게 그리웠다. 

17년 전, 이곳 멕시코에 왔을 때 내 나이 스물에 봤던 <천사들의 합창>은 이곳 동료들과 나 사이에 대화를 끌어갈 수 있는 하나의 공통 소재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작품을 멕시코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어린이 연속극이었고 이곳 제목은 <회전목마>였다. 멕시코에서도 많은 성인 시청자를 확보했다고 하고 동료들도 대부분 <회전목마>의 히메나 선생님부터 톡톡 튀는 학생 캐릭터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드라마이고 게다가 사립학교를 다룬 소재이다 보니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였다는 말을 덧붙인다. 한마디로 멕시코의 모든 학교가 다 그렇진 않다는 말이다. 공교육의 허점이 많은 멕시코의 수많은 학교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최근 한국에서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화 나는 일, 황당한 일, 그리고 슬픈 일을 보면서 멕시코는 어떨까 생각해 봤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다른 점들이 있기에 몇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말해두고 싶은 점은 어떤 부분은 한국에 비해 선진적이고 또 어떤 부분은 한국에 비해 후진적이라는 사실이다. 둘 중 어느 나라도 모든 면에서 월등하거나 반대로 모든 면에서 열등하지 않았다.

보호자가 개입하려면 반드시 학교장 통해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이던 2021년 8월 30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한 공립학교에서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한국의 서이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멕시코 선생님들과 보호자들이 동시에 보인 반응은 '왜 학생의 보호자가 담임선생님한테 직접 연락하는가?'라는 물음이었다.

멕시코의 경우 초중고를 불문하고, 또한 공립과 사립을 불문하고 보호자가 학교에서 일어난 사안에 개입하려면 반드시 학교장을 통하게 되어있다. 한국과 달리 교장은 교원보다는 행정가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교사가 아닌 행정 직종에서 임용이 되는 경우도 많다. 교장은 학교 안 모든 사안에 대해 일차적 대외 창구 역할을 한다. 

교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해 학교나 보호자의 개입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교장을 통해 절차를 진행하게 되어 있다. 이는 교사와 학생 간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어떤 형태로든 원활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사는 교장실에 보고한다. 수업 중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 소음을 유발하거나 돌아다니거나 잠을 자는 학생들도 일반적으로 교장실 또는 학사코디네이터에 보고한다. 학생 역시 교장실 또는 학사코디네이터에게 교사와 관련된 불만을 보고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교사도 그렇고 학생도 그렇고, 불만이 있을 시 교장이나 학사 코디네이터에게 보고만 하면 된다. 이후 학교 행정 부서나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해당 사안은 교육심리사 혹은 보호자 면담이 이루어진다. 이와 관련된 모든 일정과 절차에 대한 조율 역시 교장을 비롯한 행정 부서에서 담당한다. 

일부 학생에 의한 수업 방해는 멕시코도 만만치 않다. 수업 중 학습을 방해하는 학생은 교사 재량으로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흔한 벌이다. 학생을 수업에서 배제하는 것이 학생의 수업권과 충돌하지만 해당 학생을 통제하지 않을 시 더 많은 학생의 수업권이 침해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한 반에 여럿 있는 경우 학기 중이라도 해당 학생들을 분산하기 위해 반을 바꿀 수 있다. 이 또한 흔한 일이다. 

초중고에서는 수업에서 배제된 학생들이 주로 도서관이나 교장실 혹은 실험실 같은 기타 학교 공간으로 보내진다. 대부분의 멕시코 학교는 수업 방해를 이유로 교실 밖으로 내보내진 학생을 감독하고 살피는 전담 직종이 있다. 프로펙토(Profecto)라고 불린다.

학교감시관 혹은 규율부장 정도의 의미다. 자칫 한국의 학교보안관으로 이해될 수 있겠으나 확연히 다르다. 프로펙토는 모든 학교에서 반드시 채용해야 하는 직종이다. 또한 교원이나 행정직원처럼 정년까지 일한다. 학교 규모에 따라 두 명 이상을 채용하기도 한다. 

학생의 문제 행동이 발생했을 때 일단 교실 밖 일이라면 담임이라도 개입할 필요가 없다. 전적으로 프로펙토에 의해 해결 절차가 진행된다. 담임 교사나 관여된 교사의 역할은 참고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에 그친다. 교실 안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도 교사가 원하면 프로펙토가 개입할 수 있다. 

역할 차이가 있는 담임제도와 유급제도
 

최근 디지털화된 멕시코 초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카덱스'(KARDEX)에는 학생들의 기본 신상 정보와 교과 성적이 입력된다. ⓒ 멕시코 연방교육국

 
가끔 한국의 지인들에게 멕시코 초중고에도 담임제도가 있는지 질문을 받는다. 답은 '있다'이지만, 한국과 다른 부분이 많다. 초중고 모두에 담임이 있는 것은 한국과 같지만 그 역할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멕시코에서 담임의 역할은 학생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방향으로 안내해 주는 정도에 한정된다. 자신의 반 학생 중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거나 가정폭력에 노출된 학생이 있으면 학교 사회복지사나 관내 아동보호국에 연결해 주면 된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교장이나 교육심리사 보고를 통해 연결해 주는 것으로 역할이 끝난다. 물론 자신의 교과 시간에 한해서다. 다른 교과 시간에 발생하는 일은 교과 담당 교사가 해결 절차를 직접 진행한다. 

담임 역할에 대한 또 다른 차이는 생활기록부 작성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의 담임 교사는 생활기록부 작성에 진땀을 빼는 반면 멕시코 담임은 자기 반 학생들에 대해서도 여느 교과 선생님들처럼 본인 담당 교과 성적만 입력하면 된다. 생활기록부가 있지만 각 교과 성적과 징벌 사항만 기재되기 때문에 훨씬 단순하다. 게다가 징벌 사항은 교장이 직접 기재하도록 되어 있어 담임이라도 생활기록부 중 성적 외 다른 정보는 열람이 불가능하다. 

멕시코 담임교사들도 부담되는 부분이 있다. 일 년에 두세 번 하는 보호자 회의다. 주요 안건은 성적표 확인과 전달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담임교사와 보호자가 대면해 학생의 성적을 확인한 후 성적표에 양자 서명한다. 담임이 학교에 상근하지 않는 경우라면 보호자와 교사 간 시간 맞추기가 더 어려워진다. 

맞다. 멕시코는 담임교사의 학교 상근을 전제조건으로 두지 않는다. 물론 초등학교의 경우 담임이 모든 교과목을 담당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상근이 이루어지지만, 중고등학교의 경우 수업 일정 부분은 시간 강사에 의해 전담되고 이들도 담임을 맡기 때문에 상근할 필요는 없다.

물론, 시간 강사의 경우 담임을 맡으면 해당 시간에 대한 급여가 지급된다. 한 교사가 두 학급 담임을 맡는 경우도 흔하다. 한국처럼 조·종례가 없기도 하려니와 담임 역할이 문제 발생 시 직접 해결이 아닌 해결을 위한 부서나 기관에 연결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수업 외 문제 해결은 '전문가'가 맡는 것이 원칙이다. 

멕시코 학교가 한국 학교와 다른 또 하나는 여전히 존재하는 유급제도다. 초등학생이라도 일정 수준의 학업을 성취하지 못한 경우 가차 없이 유급시킨다. 2020년 3월 이후 2년간 코로나로 대면 수업이 중단되면서 일시적으로 유급이 유예되었지만 2022년 초등학교 1~2학년을 제외한 모든 학년과 중고등학교에서 유급이 재개되었다.

유급 기준은 학업 성적 10점 만점에 6점 이하로 정해진다. 중고등학교는 최하 0점까지 처리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는 최하 5점으로 처리된다. 5점 미만은 아동학대로 간주되어 사라졌다. 초등학교의 경우 유급이 매우 한정적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보호자와 학생이 유급을 자청하기도 한다. '동갑' 문화가 없는 멕시코에서는 또래보다 1~2년 학업이 늦어지는 것에 비교적 유연한 편이다.

달라도 많이 다른 멕시코 학교
 

지난 5월 15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전국교육노동자연합(CNTE) 회원들이 멕시코 대통령이 발표한 8.2% 임금 인상안을 거부하고 스승의날 기념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엇보다 한국과 멕시코 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교사 파업과 학생들의 학교점거 시위다. 멕시코 교사의 파업은 악명이 높다. 고속도로나 철도 점거와 같은 과격한 방식으로 행해질 뿐 아니라 여러 달에 걸친 장기 파업으로 학생들의 수업 손실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100일 이상 수업결손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교사의 파업 이유는 대부분 급여와 관련된다. 지난 6월에도 멕시코주(수도와 접해 있어 우리나라 경기도에 해당)에서 교사들이 급여 인상분 미지급을 이유로 파업하면서 수업 손실이 발생했다.

학생들의 학교점거 시위 또한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멕시코 학교의 한 단면이다. 특히 멕시코 국·공립학교 중 가장 규모가 큰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 부속고등학교 학생들의 학교점거 시위는 과격할 뿐 아니라 빈번하다.

1999년에는 등록금 문제로 최장 9개월 동안 학교가 점거되기도 했다. 올해도 여러 부속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발생하고 있는데 학생들 역시 한 번 학교를 점거한 채 시위를 시작하면 일주일이나 보름을 훌쩍 넘기기 때문에 수업 손실이 불가피하다. 

학생들의 시위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 시위는 학교 내 성소수자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과 학교 내 보건시스템이 부실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외에도 교내 성희롱이나 성추행, 학교 예산편성에 대한 불만이 학교점거 시위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학교점거 시위는 수업 손실뿐 아니라 학교 집기나 건물 파손, 방화로 인한 기록물 소실을 야기하기도 한다.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부속고등학교 중 하나인 아즈카포찰코 인문사회과학 고등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학교가 폐쇄되고 학교 수업이 전면 중단되었다. ⓒ FORO TV


그럼에도 학생 시위는 법적으로 보장된다. 지난 2~3월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의 한 부속고등학교에서 학생 총회를 통해 학교를 점거하고 시위에 들어가겠다는 결정이 났을 때 해당 학교의 교장이 학생 총회 결정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게시했다.

학교장은 공문을 통해 학교 구성원들에게 학생 총회에서 결정된 학교 점거 시위의 개시일(2023년 2월 28일 17시 55분)과 종료일(2023년 3월 13일 07시 정각)을 알렸고 공문의 마지막 줄에는 학생들의 의사 표현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과 학교 측이 계속 대화의 창을 열어둘 것을 명시하였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달라도 많이 다른 멕시코 학교의 모습이다. 

글을 맺기 전 '갑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번 한국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속에 '갑질' 혹은 '진상'이라는 표현이 툭툭 튀어나왔다. 멕시코에서는 이 말들의 의미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 풀어 설명한다면, 인간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측의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심각하게 결여된 상태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갑질'과 '진상' 사례들을 보는 멕시코 사람들의 반응은 '그러다 총 안 맞아?'라는 물음이다. 맞다. 한국의 '갑질'이나 '진상'에 상응하는 행태가 멕시코에 비교적 적은 것은 누가 총을 가졌는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사람이 사람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한국이나 사람이 사람을 절대로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이곳 멕시코나 속사정이 슬프기는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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