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5 11:59최종 업데이트 23.10.05 11:59
  • 본문듣기

2019년 5월 12일 청와대 김수현 정책실장이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월 13일 자 <오마이뉴스> 칼럼 '문재인 정부 실패한 정책, 진지하게 회고해야 하는 이유' (https://omn.kr/22pus) 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참모와 장관을 지낸 인사들이 사의재(四宜齋)라는 정책포럼을 결성한 데 대해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옹호하기에는 정책 내용에 치명적인 결함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던 인사들, 특히 부동산 정책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 문재인표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지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이 일을 정성껏 해서 그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장차 진보개혁 세력이 다시 집권할 때 문재인 정부가 저지른 오류를 그대로 반복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런 요청에 반응이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설계자로 알려진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하 호칭 생략)이 며칠 전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는 책(<부동산과 정치: 문재인 정부의 좌절과 한국사회의 과제>)을 출간했다(2022년 중반부터 집필을 시작했다고 하니 내 요청에 대한 반응은 아니었던 셈이다). 책은 형식상으로는 내 말대로 "문재인표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지 진지하게" 돌아보고 있다. 맨 앞 '책을 펴내며'에서는 집필 목적을 '책임과 성찰을 위해'서라고 밝히고도 있다.


김수현은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못 잡았고, 전세금까지 급등했으며, 마침내 정권교체까지 허용하는 실책을 범했음을 자인한다. 김수현표 정책임이 명백한 임대사업자제도 확대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실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임대사업자제도는 다주택자가 일정 기간 이상 주택을 임대하고 임대료 인상을 자제할 경우, 종부세·재산세·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세를 감면해 주는 제도로, 투기꾼에게 꽃길을 깔아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렇게만 보면, 그가 책을 집필한 목적이 정책 실패에 책임을 지고 성찰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임과 성찰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수두룩해서 당황하게 된다. 몇 가지만 지적해 보자.

사실상 후임자들에게 책임 전가하는 김수현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펴낸 <부동산과 정치> 표지 ⓒ 오월의봄


첫째, 김수현은 자신이 청와대 정책실장을 그만뒀던 2019년 6월까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집값을 안정시키고 있었으나, 그 후 유동성 관리에 실패함으로써 유례없는 집값 폭등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사임 후) 한국은행을 포함한 정부의 각 정책 결정 단위들이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방어를 위해 부동산으로 돈이 쏠리는 것을 알면서도 미필적으로 묵인했지 않았을까"(59쪽)라는 의심을 제기하는 동시에, 정책 전반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자기가 재임했던 동안은 정책을 잘 펼쳤지만, 자기 후임자들이 엉망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정책이 실패했다는 뜻 아닌가. 이런 진술은 사실관계에서도 맞지 않고, 도의적으로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둘째, 부동산값 폭등은 투기 광풍의 결과임이 자명함에도, 김수현은 '투기'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주택의 금융화 또는 유동성 폭증 등의 용어를 빈번하게 쓴다. 부동산값 폭등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불로소득을 취하려는 투기 심리가 자극을 받고, 실탄에 해당하는 유동성이 공급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김수현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런 이야기 가운데 앞부분을 생략하면서 유동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부동산값 폭등의 본질적 원인은 세금, 규제, 공급 등이 아니라 과잉 유동성이라는 것이다(56쪽). 이 주장은 불로소득 환수를 강조하는 견해를 애써 외면하려고 의도적으로 고안한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이 근거가 없다는 것은 주택의 금융화가 없었던 시절에도 부동산 투기가 주기적으로 발발했다는 사실에서 바로 드러난다. 

비판 견해를 모조리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다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2021.6.21. ⓒ 연합뉴스

 
셋째, 김수현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견해들을 모조리 '부동산 포퓰리즘'으로 규정한다. 물량 포퓰리즘, 보유세 포퓰리즘, 반값 아파트 포퓰리즘을 거론하는 식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집값이 올라 민심이 흉흉해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얘기들이 있다. "이것만 하면 될 텐데 그걸 안 해서 집값을 못 잡는다"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시장에 맡겨두면', '보유세만 제대로 올리면', '반값 아파트만 많이 공급하면' 하는 식이다. 원가 공개만 해도 집값을 낮출 거라는 얘기도 있다(256쪽)."

내가 기억하기에도 한 가지 정책 대안을 만능키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공급 확대론자와 원가 공개론자다. 하지만 금융·세제·공급 등 여러 방면에 걸친 대안을 제시하며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전반적으로 비판한 사람들도 있다.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을 어떤 한 가지 나쁜 이미지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게다가 김수현은 언론이나 부동산 전문가들의 성향을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와 불로소득 환수주의라는 양극단으로 구분한 후, 양비론을 펼친다. "각 그룹 모두 자신들의 주장과 요구대로 정부가 하지 않아서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며, 정부를 맹비난하는 대열에 나서는 것은 동일하다"(46쪽)라고 비판한다. 양비론이 책임 전가에 흔히 활용되는 수법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책 말미에서 김수현은 실패의 책임을 비판자들에게 전가하고 싶은 자신의 내심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런 포퓰리즘들은 그 당시는 현란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본질은 해결하지 못한다. 현실성도 없을 뿐더러 시장에도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부동산 이상주의자, 선동주의자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283쪽)." 

'보유세 만능주의'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넷째, 김수현은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보유세를 "시장 상황에 따라 극단을 오가는 포퓰리즘 패키지의 대표"(260쪽)라고 매도한다. 이런 표현은 오랫동안 보유세 강화를 주창해 온 조지스트(Georgist: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를 추종하는 사람)를 향한 비난인데, 논거가 박약해서 무척 실망스럽다. 한국의 조지스트 가운데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당장 '완전히' 환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또 보유세를 부동산 문제 해결의 만능키처럼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더욱이 고가 다주택에 대해서만 보유세를 올리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없다. 

부동산 보유세는 투기 근절과 부동산값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필요조건 중 하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부동산값을 안정시키려면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의 대책이 모두 필요하며, 개발규제·가격규제·거래규제·금융규제 등 각종 규제 대책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전 부동산 시장에 불이 붙기 시작한 상황에서 굳이 보유세 강화 정책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기자회견을 개최한다든지, 출범 후 재정개혁 특위라는 정체불명의 민간위원회를 만들어서 보유세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꼼수'를 부렸다는 점에서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다. 초기에 제대로 된 보유세 강화 정책을 발표했더라면, 부동산 투기 광풍을 잠재웠든가, 아니면 실제보다 훨씬 약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값이 한정 없이 폭등하고 난 다음에야 취득세·보유세·양도소득세 모두를 다주택자 중심으로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원칙에도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타이밍에서도 완전히 잘못된 결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앞서 언급한 <오마이뉴스> 칼럼에서 지적했던 내용을 다시 인용해 보자. 

"보유세 강화 정책은 한국 부동산 정책의 오래된 숙제이기는 하지만, 아무렇게나 보유세를 높이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보유세를 강화하되 거래세는 완화하고, 가액 기준의 일률 누진 과세 방식을 적용하며, 세 부담이 급증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조세 정책은 이 세 가지 원칙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보유세와 거래세 심지어 양도소득세까지 모조리 강화했으며, '1주택자 = 실수요자, 다주택자 = 투기꾼'이라는 프레임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다주택자에게 과중한 세율을 적용했고, 공시가격 급등으로 세 부담이 급증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김동연 지사는 국토보유세를 지지했다
 

2017년 10월 24일, 당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표 공약인 국토보유세에 대한 평가에도 문제가 많다. 국토보유세는 전국의 모든 토지에 대해 일률과세하여 그 수입을 모든 국민에게 n분의 1씩 기본소득으로 분배하자는 정책이다. 주택·토지·빌딩을 차등 과세하여 과세 불공평을 초래하는 현행 종부세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자는 것이자, 그 세수를 전액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분배하여 모두가 국토의 주인임을 실질적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김수현은 현행 종부세 구조에서는 누진성이 극심하므로 어떤 방법으로든 실효세율 인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현행의 보유세 구조 자체를 개편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국토보유세는 현행의 보유세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자는 정책이다. 

김수현은 국토보유세가 모든 토지에 대한 보유세를 올리되 저가 주택 소유자에 대해서는 되돌려 주는 것이기 때문에, 조삼모사이자 결과는 같다고 평가한다. 또 포장을 어떻게 하든, 고가·과다보유자만 올리자는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토보유세의 자세한 내용과 종부세와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내가 쓴 2021년 12월 5일 자 <오마이뉴스> 칼럼 '다급한 이재명, 그 길은 정도가 아니다'(https://omn.kr/22dsb)을 참조하라. 

김수현은 자신과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의 보유세에 대한 견해가 같았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김동연이 <대한민국 금기깨기>라는 책에서 국토보유세를 지지하는 입장을 피력한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김수현은 국토보유세와 조지스트 이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괜찮은데, 내용을 똑바로 알고 했더라면 좋았을 터이다. 

윤석열 정부의 시장만능주의 부동산 정책은 당연한 것인가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오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명박 정부보다도 더 빠르고 철저하게 시장 만능주의적 부동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종부세·재산세·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장치들이 모조리 후퇴했고, 문재인 정부가 일부 성과를 낸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도 축소되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는 완화되었고 금융규제도 마찬가지였다. 

김수현은 부동산 정책의 내용은 정권의 성격과 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릴 때에는 보유세와 양도세, 그리고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었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 양상을 보일 때에는 세제와 규제가 완화되었다고 본다. 그러니 현재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놓고 크게 비판할 거리도 없지 않겠는가. 오래전 빈민 운동에서 출발한 김수현의 개혁적 행보가 완전히 빛이 바랜 듯해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