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8 15:27최종 업데이트 24.03.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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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한국의 가계부채는 오랫동안 빠른 증가세를 지속하여 현재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 2023년 2분기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7%로 스위스(126%), 호주(111.1%), 캐나다(103.2%)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더욱이 해외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전세 제도의 전세보증금을 가계부채에 포함시키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말 기준 156.8%로 높아져 스위스(131.6%)를 제치고 압도적인 세계 1위이다.

국내 가계부채 동향이 부동산시장 움직임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주택담보 대출, 중도금 대출, 임대사업자 대출, 전세자금 대출 등 주택시장과 직결된 대출이 전체 가계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외에 신용 대출, 보험약관 대출이나 가계부채로 분류되지 않는 개인사업자 대출의 차입금도 부동산 투자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고평가와 과도한 부채 누증이 동반하는 현상을 '금융불균형'으로 지칭하는데, 현재 한국 금융은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있다.

디레버리징 없이 계속 누적되는 가계부채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부 앞을 이용객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가계부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이뤄졌는데 한국에서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됐다. 결국 한국 부동산시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시적인 침체 몇 번을 제외하고는 계속 상승세를 보여왔으며 서울의 집값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자산시장에 거품이 생기는 경우 위기를 거치면서 해소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제의 순환이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경제 구조를 건강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한국 경제는 독특하게도 위기를 장기간 거치지 않은 채 구조적 문제를 키워왔고, 그 귀결이 오늘날 가계부채 악화 및 금융불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 이러한 구조는 어떻게 고착화하였을까?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를 거치지 않고 가계부채 확대를 용인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또한 한국의 가계부채가 그렇게 누적됐어도 여전히 가계부채 발 금융위기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뭘까?

이 질문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다. 정부의 경제성장 또는 경기부양 정책, 금융정책⋅금융감독 및 그 영향력, 부동산 시장의 한국적 특징,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 및 감독, 부동산을 선호하는 심리적·문화적 요인 등등. 이러한 요인들은 긴밀히 얽혀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선후와 강약 관계를 따지는 것이 쉽지 않다.

여기서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한국 국민 대부분이 부동산 투자야말로 수익성이 높으면서도 길게 보아 안전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등 해외 주요국의 경우는 가계자산에서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데 비해 한국에서는 부동산의 비중이 압도적인 사실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얼마나 부동산 투자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부동산 불패 신화'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할까? '영끌'해서 아파트 샀다는 청년도 많아 부동산 투자에 대한 기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는 '건물주'는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상위 순위에 오르기도 한다.

정부와 금융기관, '부동산 불패'에 중요 역할

이와 같은 한국 국민의 인식 형성에 정부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정부 주도 경제개발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오른 것은 유명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강북 주민들에게 채소와 과일을 공급하던 강남 농업지대가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변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가 함께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규제에 따라 가계대출이 매우 제한됐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는 부채 주도의 부동산시장 부양 정책을 자주 쓰곤 했다. 집을 사는 사람에게 대출을 쉽게 해줘서 건설경기를 진작하는 것이 경기부양 효과가 크고 빠르기 때문이다. 가계의 주택 구매와 신축이 늘어나면 각종 내구재 등 내수산업도 덩달아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 과정에서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따라 소비도 늘어날 테니 이만한 경기부양책을 찾기도 쉽지 않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에서 저소득층의 주택 보유를 적극 권장한 정책을 추진한 것도 부채주도 경기부양 정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미국 정부의 이러한 정책이 결국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를 일으켜 2007~2009 글로벌 금융위기로 연결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계부채는 그 가계의 미래 소득을 담보로 한 것인데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 연체·가계 파산과 은행 부실화, 경제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여기서 한국의 가계부채는 미국의 사례와는 경우가 다르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가계부채의 구성을 보면 상환능력이 양호한 고소득 차주의 비중이 높다. 게다가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부채를 가진 차주의 비중이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기준 신용활동인구의 약 42%가 대출을 보유하고 있는데, 소득 1∼5분위는 30% 미만이 대출을 보유한 반면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10분위 신용활동인구는 75%가 대출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선 빈부를 불문하고 부동산 투자를 원하는데 소득이 높으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기에 더 쉬운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고소득층 위주의 가계부채 구조 덕분에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낮아지는 한편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가계대출이 매력적인 상품이 된다. 가계대출은 기업대출에 비해 연체율이 낮아 수익성과 안정성 면에서 더 선호된다. 은행 리스크 관리를 위한 바젤(Basel) Ⅱ 규제에서 가계대출 위험가중치는 35∼50%로 기업대출(20∼150%)보다 낮다는 점도 은행들의 구미를 당긴다. 한국에서 차주 단위 대출규제가 뒤늦게 시행된 데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도입한 후에도 상당수의 대출에 대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 역시 가계부채 급증의 공급측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 구성을 볼 때 부실화 우려가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부동산시장이나 거시경제 충격에 따라 위험해진 경우도 몇 번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국내 부동산시장 침체, 2012년 저축은행 부실화 사태, 문재인 정부의 9.13 대책 이후 주택가격이 하락한 2019년 등이 그 사례이다. 키움증권의 서영수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이 세 시점의 아파트 가격 하락률은 수도권 기준으로 각각 6.9%, 8.4%, 2.0%이다.

이 정도의 하락률에도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주택시장 부양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물론 체감으로는 이보다 더 떨어졌을 수 있으며, 당시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크게 감소했던 사정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소폭 하락하더라도 정부가 적극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굳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와 같은 "역대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이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굳건하게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주택시장이 침체상태에 빠져 그 신화가 깨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정부는 그 때마다 주택가격의 하락을 막기 위해 발빠르게 개입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정부가 주택가격 하락의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면서 일종의 톱니효과(ratchet effect)가 발생해 오늘날 천문학적 수준의 주택가격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부동산 불패'는 서로의 믿음으로 상승한다
 

지난 2월 23일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정부의 정책, 금융기관의 적극적 대출 영업, 개인들의 부동산 투자에 대한 믿음 등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부동산 부양책 또는 금융불안 대응책을 바탕으로 남녀노소빈부를 막론하고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줄곧 오르며 일시적으로 정체하거나 하락하더라도 좀 지나고 나면 충분히 빠르게 오른다는 믿음이 널리 확산되어 있으며, 이는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기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즉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부동산을 많이 사면 실제로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는 속성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사항은 부동산 투자에 대한 여러 사람의 믿음이 서로 상승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내 스스로는 부동산 투자의 수익률에 대해 뚜렷한 믿음이 없지만 다른 여러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가 유망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보자. 이 경우 나는 미래 전망에 확신이 없어도 부동산 투자를 늘리는 게 맞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에 따라 부동산에 투자할 것이므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아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서로의 생각을 엿볼 수 있으며 내 전망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부동산 시장을 불확실하게 보는 내 전망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들이 투자를 주춤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동산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낙관적 시각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도 부동산 투자를 늘릴 것임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예상할 것이다. 즉 기대에 대한 기대, 또는 믿음에 대한 믿음(higher order beliefs)이 중층적으로 형성되면서 부동산시장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게 쉽지 않다. 큰돈이 걸려 있는 투자판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부동산 시장처럼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이 광범위한 경우는 좀 특별하다. 투자자들은 매일 같이 부동산 성공에 대한 믿음을 퍼뜨리고 다시 이러한 믿음은 기존의 투자자들을 결속시키는 한편 새로운 투자자들을 불러 모은다. 일시적인 하락이나 충격이 올 수도 있지만 결국 부동산 불패라는 거대한 믿음의 흐름과 이 믿음이 실현되는 소용돌이에 휩쓸리곤 한다.

부채로 지탱하는 '부동산 불패' 영원할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부채를 통한 부동산 투자, 부동산 가격의 상승, 그리고 부동산 불패의 믿음으로 연결된 순환구조가 영원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주택가격이 너무 높아져 미래 소득을 모두 동원하더라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 구조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 경우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부동산 가격 하락과 비관적 전망의 순환구조로 바뀌면서 부동산시장이 붕괴되는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있다. 2021년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거래량이 급감했는데 만일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이나 대출금리 하락 유도 등의 정책이 없었다면 상당한 위기로 비화됐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내린 믿음이 무너질 정도로 위기가 진전된다면 그 조정과정은 매우 혹독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정부가 앞으로도 부동산시장 위기 때마다 개입하는 경우 경제의 구조적인 장기침체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가격의 폭락을 막고 이에 따라 금융기관 부실화도 방지할 수 있겠지만 고부채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부채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민간소비 침체가 이어지고 경제 전반의 생산성도 낮아질 수 있다. 또한 높은 주택가격 및 주거비용에 따라 저출산 역시 지속될 수 있다.

결국 이 두 가지 시나리오를 모두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질서 있는 가계부채 디레버리징이 필요하다. 금융불균형 확대에 낮은 금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만큼 우선 통화 정책은 되도록 긴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거시건전성 정책과의 공조도 중요하다.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보고서(2023년 9월)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의 사례에서 금융불균형에 대해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의 정책기조가 동일할 때 주택가격과 가계대출에 대해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면 두 정책의 기조가 반대 방향인 경우에는 정책효과가 반감되거나 불확실성이 증대되었다.

거시건전성 정책의 수단 가운데서는 정책 시차 문제가 작은 DSR 규제 등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연구원의 김현태 연구위원에 따르면 DSR 규제는 자동안정화 기능을 내재하고 있다. 주택시장이 활황세여서 주택가격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보다 높은 경우 자연스럽게 DSR이 낮아지게 되고 결국 추가적인 신용 공급을 제한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LTV(담보인정비율) 규제의 경우 주택시장이 호황을 지속할수록 담보가치가 커지므로 대출 가능 금액도 늘어나는 문제점이 있다. 나아가 변동금리 대출에 대한 '스트레스 DSR'의 도입 역시 바람직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스트레스 DSR은 잠재적 금리 인상폭을 반영해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하는 제도다.

가계부채를 효과적으로 줄이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가계부채 연착륙이 가장 관심을 두는 장기목표라고 밝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금융위기를 겪지 않고 디레버리징을 한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힘든 길이더라도 결국은 가야만 하는 길이다. 등 떠밀릴수록 고통은 더욱 클 것이란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강경훈 /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강경훈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로 정보(information)와 데이터 관점에서 다양한 금융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한국은행 조사부, 기획부 및 한국금융연구원에서 근무했으며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등을 역임했습니다. 학계에서는 한국금융정보학회 회장, 한국금융학회 부회장, 공동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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