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5 21:01최종 업데이트 24.04.2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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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을 강화하고 산업계의 자율규제를 고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중대재해전문가넷에서 법의 집행 과정을 돌아보고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규제와 지원 정책을 살펴봅니다. 아울러 산재사망과 사회적 참사를 줄이는 데 법이 미친 영향을 파악하여 중대재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4차례에 걸쳐 모색하고자 합니다.

① 중대재해처벌법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가
②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행정조직을 개편하자
③ 중대산업재해 획기적 감소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
④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사망 예방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된 다음날인 1월 28일 경기도 고양시 한 공사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새로 중대재해처벌법 테두리 안에 들어온 5∼49인 사업장은 83만 7천 곳이다. ⓒ 연합뉴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지 2년이 지났다. 법에 규정된 대로 올해 1월 27일부터는 상시 근로자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도 이 법률이 적용됐다. 적용대상 범위가 크게 확대되고 거의 석달이 지났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가 30여 곳의 중소기업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동네 빵집부터 식당까지, 다수의 중소기업이 도산을 하고 문을 닫을 것이라는 호들갑(?)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이 법률에 대한 위헌소원을 제기했다. 직접 피해자, 즉 이 법에 의해 처벌되었거나 구체적인 처벌 위험이 있는 기업경영자가 없는 상태에서 제기된 헌법소원이어서 우선 당사자 적격을 갖추었는가부터 의문이지만, 여하튼 분명한 것은 공포 후 3년, 시행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법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초 이 법은 시민사회의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 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기업' 처벌을 강조한 것은 최근 크게 발전하고 있는 안전학(安全學)의 성과, 즉 재해라는 결과에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조직적·구조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의 결여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또 그동안 사회적 재해가 발생했을 때 현장 행위자나 중간관리자만 처벌을 받아왔을 뿐, 정작 결과에 최종 감독책임을 져야 할 사람(법인을 포함하여)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예리하게 인식한 탓이기도 하다.

관리자 감독책임 묻는 법 해외에도 많아
     
그러나 기업을 처벌하는 데에는 법적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단체는 죄를 짓지 못한다'는 전통적인 로마법 원리를 고수하여 법인의 범죄 주체성을 부정하는 우리 법원과 학계의 태도 때문이다. 이런 주장과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법인을 벌하는 양벌규정이 다수 있지만 실제 선고 형은 너무나도 미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2011년부터 5년간 법인에 대한 평균 벌금 선고액은 377만 원에 불과했다.

여기에 기업에 대한 벌금을 크게 올린다 하더라도 기업에 법 위반행위를 억제할 만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더해졌다. 대기업의 경우 자산과 순이익의 규모가 막대하기 때문에 기업의 의사결정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려면 이에 필적하는 벌금액을 선고해야 할 것인데, 이런 법률의 제정은 기존의 다른 법들과 형평성의 문제를 낳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 선고된 벌금액을 비용으로 처리하거나 제품 가격에 반영하여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 결국 기업에 대해 가능한 유일한 형벌인 벌금은 기업 자체에 손실을 입힌다기보다 그 기업의 주주나 노동자, 나아가 채권자나 소비자와 같은 이해관계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기업 대신(혹은 기업과 함께) 기업 경영자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자연인에 대한 형벌이므로 자유형(징역형)이 가능하고, 경영자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형사사건과 거리가 먼 화이트칼라이므로 그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점도 지적되었다. 또 무엇보다 최고경영자가 기업 전체 의사결정에서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려하면, 안전보건의 영역에서도 역시 이런 사람이 관리시스템의 흠결에 대한 구조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는다.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 관리자의 감독책임을 묻자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이미 1845년 프로이센 영업법에서부터 시작된 이런 내용의 조항이 지금은 질서위반법에 규정되어 있다. 이론적으로는 경제형법학자인 쉬네만과 티데만 등이 기업 내부의 조직 지배를 근거로 기업 종사자의 범죄에 대해 경영자에게는 부작위범의 책임이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즉 재해 예방 행위를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경영자가 예방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일본에서도 1960년대에 대형 재해에 대해 기업 경영자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관리감독 과실론'이 주장되었다. 현행 일본 노동기준법과 '사적 독점의 금지 및 공정거래의 확보에 관한 법률'은 '법인의 대표자'에 대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위의 외국법이나 이론들이 다른 행위자의 '범죄'를 경영자 책임의 전제로 하고 있는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에게 직접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여 재해가 발생한 경우 곧바로 그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런 형식의 입법례는 아직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소 급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처참할 정도로 심각한 우리 사회의 재해 실상과 고위경영자가 거의 처벌되지 않는 사법 현실이 그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가벼운 집행유예 처벌
 

배조웅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과 정윤모 상근부회장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중대재해체벌법 헌법소원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청구서 제출을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면 지금까지 2년 동안 법률을 집행한 결과는 어땠을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중대재해는 2022년과 2023년 각각 611건, 584건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수사 대상이 된 것은 모두 510건인데, 이 중 수사를 끝내고 검찰에 송치한 것은 100여 건이라고 한다. 근로감독관과 같은 특별사법경찰은 자체적인 수사종결권이 없으므로 나머지 400여 건은 여전히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얘기다.

100여 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이 중 40건을 기소했고 10건에 대해서는 불기소처분을 했다. 이 가운데에는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린 사건도 있다. 나머지 50여 건에 대해서도 언제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지 알 수 없다. 참고로 형사소송법 제257조는 고소 또는 고발 사건의 수사는 3개월 이내에 완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우리 법원은 수사나 재판의 기간 규정을 모두 '훈시규정', 즉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되는 권고규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기소된 40건 가운데 15건에 대해서 1심 판결이 내려졌는데 모두 유죄였다. 하지만 이 중 실형이 선고된 것은 단 2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그 집행이 유예되었다. 실형 2건은 각각 1년, 2년의 징역형이었는데, 그다지 무거운 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집행유예의 형량도 대체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1~2년의 징역형에 2~3년의 기간이 유예되는 식이다. 검찰의 구형량을 법원이 절반으로 깎아주는 일반 형사사건처럼, 2~3년의 구형에 1~1년 6개월의 형이 선고되는 것이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집행과 관련한 이상의 간단한 통계로부터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중대재해 사건,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수사대상이 된 사건에 대한 정보의 공개가 필요하다. 보통의 범죄사건과는 달리, 특히 규모가 크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정부가 공식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의견서로 작성한다. 재해의 발생 과정과 원인을 밝혀 향후 예방대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 의견서는 사건 직후에 1차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이므로 그 만큼 정확하고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고, 노동부로서도 이후 수사과정에 중요 참고자료로 활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재해조사 의견서와 또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 즉 어느 의무조항에 위반되었다고 보았는지와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의 이유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노동부로서는 수사 관련 서류를 공개한다는 부담이 있겠지만 중대재해 사건의 특수성과 특히 시행 초기에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외부의 객관적·비판적 검토를 통해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 이 점은 검찰의 법적 판단, 특히 불기소 처분의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동부가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였음에도 불기소 결정을 한 경우 그 이유를 공개해 법 적용의 기준을 객관화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연구자나 시민단체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법 준수 여부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기업 측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중대재해는 경미한 과실범이라는 인식
 

18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전북본부 조합원들이 전북 익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 현장 중대재해를 엄중 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 50분께 익산시청 신청사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크레인에서 추락해 숨졌다. ⓒ 민주노총 건설노조 전북본부

    
둘째, 형량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을 시행하면 구속되는 경영자가 속출하고 따라서 기업의 경제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와는 정반대로, 지금까지 실형 선고는 단 2건뿐이었다. 또한 실형이든 집행유예된 자유형(징역형)이든 모두 법률이 정한 하한에 가까운 1~2년의 범위에서 선고가 이뤄지고 있다.

당초 법률을 제정할 때 논란이 많았던 법정형(法定刑)은 비슷한 내용의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을 고려하여 형량의 상한 없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정했다. 시민단체와 민주당의 원안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되어 있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너무 과중하다는 비판을 수용하여 '1년 이상'으로 줄인 것이다. 이때부터 이미 지나치게 가벼운 형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는 이제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경영계는 지금도 이 법률이 '과잉처벌 금지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적어도 지금까지 이뤄진 선고의 결과는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 즉 처벌이 너무 무거워서가 아니라 너무 가벼워서 문제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다시 말하지만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경영자와 같은 고위관리자에 대한 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중간관리자 등 기업 측 인사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한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현재처럼 예전의 처벌 수위와 별 차이가 없는 나약한 형벌은 이 법의 제정 의도와 효과를 크게 감소시킨다는 사실 역시 인정해야 한다.

셋째, 이렇게 불충분하게 법이 집행되고 있는 이유에는 중대재해를 여전히 경미한 과실범의 하나로 생각하는 기업가와 법률가들의 인식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고의범이냐 과실범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많은 학자들과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와 같이 이 법의 위반을 고의범으로 본다. 여기에 사람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더해진 이른바 '결과적 가중범'이다. 이런 형식의 범죄에는 통상 무거운 형벌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실제 현실에서는 이를 마치 과실범처럼 다룬다. 이 점은 무엇보다 법원의 양형기준이 산업안전보건 범죄를 (업무상) 과실치사죄와 같은 항목에서 다루고 있다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기준에 규정된 형량의 범위도 대체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이제 이들에게 이렇게 물어봐야겠다. 우리나라 중대재해의 현실은 별도의 특별법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가? 이를 인정한다면 이 법은 이전보다 중한 형을 규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아가 규정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무거운 형을 선고·집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지금과 같이 '종이호랑이' 또는 '상징 형법'에 머무르게 되고 말 것이다. 

최정학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 최정학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최정학 교수는 울산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에서 형사법과 형사정책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된 관심 영역은 기업범죄와 형벌이론인데, 이런 덕분인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에서 이 법의 입법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 정책팀장과 중대재해전문가넷 대외협력국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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