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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저런 이유로 그들은 학생들과 동류이기를 거부했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어울리기를 거부했다. 나는 그들이 내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절망을 느꼈다. 같이 웃자고 이야기하거나 같이 즐기자고 한 행동인데,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내 의도와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곤 하는 교사들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했는데, 웃는 얼굴을 구둣발로 짓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교사들이라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학교를 다니지 않게 된 이후로, 나는 점점 더 참을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제 내 유머라는 것도 바닥이 드러난 셈이었다. 실없이 웃어넘기는 일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꽤 농담을 즐기는 편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내 말은 그야말로 거개가 진담 반, 농담 반이었다. 듣기에 따라서 내 농담이라는 것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협박으로, 그리고 어떤 아이들에게는 공갈로 들렸는지도 모른다. 말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 말들은 대부분 말 그대로의 실제적인 의미를 나타내거나 꼭 그렇게 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내 말의 어느 부분이 농담이고 어느 부분이 진담인지를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나는 어느쪽이냐 하면 농담이 좀 과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대부분 그냥 무시되어도 좋았던 것들이다. 사실 내 말의 구십프로는 농담이었다. 그동안 내 농담에 시달려온 사람들에게는 좀 맥빠지는 일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좀 허풍이 과한 놈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용서하라. 그 당시 나는 그런 짓마저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사는 재미가 덜했던 것이다.

내 농담 중에는 교사들 몇 명을 지목해서 언젠가 꼭 한 번 손을 봐주겠다는 것도 있었다. 물론 농담이었다. 아이들 몇 명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그 아이들을 좀 유쾌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에서 떠벌린 것이었다. 아이들은 내 말에 모두들 즐거워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늘 교사들에게 지적당하고 두들겨 맞기만 하던 아이들인지라 그 교사들을 언젠가 한번 실컷 두들겨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 기분이 남다른 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그와 유사한 농담을 여러 번 되풀이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결코 실행에 옮길 생각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되먹지 않은 인간이기로서니, 힘없고 돈없고 빽없기로 속살까지 드러내 놓고 사는 교사들을 상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그런 짓은 지능지수가 네 발 달린 짐승 못지 않거나 사리분별력에 근본적인 장애가 있는 저능아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농담이 최근에 와서 결코 농담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퇴학을 당할 때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당한 치욕을 앙갚음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내게 폭력을 행사했던 교사들을 대상으로 보복 행위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문제는 그 사이 내가 점차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늘고, 주먹을 휘두르지 않고서는 좀처럼 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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