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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해서 숲을 떠난 것은 집을 나온 지 꼬박 석 달이 지난 뒤였다. 나 또한 그때쯤은 꽤 지쳐 있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나 모르게 숲에서 도망치고 없었을 때, 그 놈들이 나를 배신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식으로 모여든 놈들이니, 그런 식으로 헤여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숲에서 나오자마자,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여동생은 하루라도 빨리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남매의 인연을 끊어버리겠다고 을러댔다. 나는 여동생을 달랬다. 그동안 고기잡이배를 타는 바람에 아무 소식도 전할 수 없었다고 둘러댔다. 여동생은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내가 계속 그런 식으로 살다가는, 죽었다 깨어나도 평생 인간답게 살아보기 힘들 거라고 한탄했다. 게다가 애기 아빠가 되어서까지 그런 거짓말을 일삼는 건 남보기 창피한 일이라고 떠들었다.

나는 여동생이 하는 말에 욕지기를 느꼈다. 여동생 또한 내가 저지른 일을 비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 세상에 내가 다른 사람들의 지탄을 받지 않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내 나이에 학교를 벗어나 그 무엇을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곤 아무 데도 없었다. 나는 이대로 아스팔트 위를 뒹굴며 살다가, 그대로 아스팔트 위에 등을 대고 누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여동생은 말했다. 언니가 돌아왔어, 그리고 애기도 건강해, 그러니까 이제는 오빠가 그 모두를 책임져야 해. 그리고 나서 여동생은 우리 모두 어서 오빠가 집에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우리 모두라는 말에 진저리를 쳤다. 지금까지 집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기껏해야 여동생이 전부였다. 우리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어미가 집을 나간 이후로는 들어볼 수 없었던 말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제 내가 더 이상 어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누군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그 순간 나는 오로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세 사람을 부둥켜 안고 목놓아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당장에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에 조바심쳤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에게 돌아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내게는 그들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경찰에 쫓기는 몸이었다. 나는 여동생에게 내 한 몸 책임지기도 어려운 형편에 내가 어떻게 그 두 사람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며칠 동안 집 근처를 배회하면서 동정을 살폈다.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는 안심을 한 상태에서 집 대문을 넘어서다가, 문 밖에서 잠복 중이던 형사들에게 검거되었다. 나는 형사들에 의해 팔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와중에도, 댓돌 위에 놓여진 두 켤레의 신발을 보았다. 나는 그 신발의 주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용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형사들은 내 상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교사리스트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그때쯤 그 리스트를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그 리스트가 안주머니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나쁜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게 마련이듯이, 어쩌면 나는 그 리스트 자체를 잊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형사들은 그것이 내가 저지른 또 다른 범죄의 희생자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나를 추궁했다. 하지만 나는 그 리스트에 대해서만은 계속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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