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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국에 온 이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 이모들을 중심으로 한 주변 친지분들의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된다는 것이다. 나이에 비해 아직도 천방지축 날뛰는 ‘애’ 같아서인지 부모님들은 의외로 주변사람들만큼 극성스럽게 나를 ‘볶지’ 않으셨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또 아무런 소득(?)도 없이 애꿎은 나이 한 살만 더 먹은 이 딸내미가 이제는 정말로 걱정되셨는지, 국제전화비 아까우셔서 항상 3분 이상의 통화는 좀체로 안 하시는 우리 아버지가 어느 날 족히 5분은 넘어가는 긴 통화를 하셨다. 말씀의 요지인즉, 올해의 내 ‘사주’인지 ‘운세점’인지를 봤더니 바로 '귀인이 나타날 해'로 나왔다는 것이다.

“올해 니 사주에 귀인이 있을 운이란다. 그 귀인이 거의 틀림없는 니 배필감인게 확실하다고 한다. 그러니 올해 니 주변에 나타나는 남자들은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잘 관찰해 보거라. 그 귀인을 놓치면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른다더라. 아빠말 명심하거라...”

여기에 한술 더떠서, 우리 엄마는 당신 딸내미가 아직도 ‘혼자’인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까지 하셨다고 한다. 엄마가 보기에는 남들에 비해 그다지 뒤떨어질 게 없는 것 같은데(가끔은 외모가 좀 처지는 것 같다고도 하신다) 무슨 해괴한 연고로 혼기를 넘기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문제는 바로 내 ‘성질탓’이라는 결론을 얻으셨단다. 그래서 올해는 나의 그 까탈스럽고 이상야릇한 성질을 개조하라는 ‘성질개조론’까지 들먹이셨다.

성격도 아니고 ‘성질’이 안 좋아서 혼기를 놓치고 있다니, 아무리 허물없는 모녀지간이기로서니 이건 정말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성격문제라면 대충 노력이라도 해보겠는데 도대체 ‘성질’은 어떻게 ‘개조’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예감상, 올해는 나의 ‘노처녀 수난시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 이야기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가 있다.
착한 여자는 바보처럼 착하기만 해서 늘 남들로부터 ‘착한 여자’라는 칭찬을 받지만 정작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로부터는 ‘착하기만 할뿐’ 별다른 성적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는다. 이에 반해 나쁜 여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라도 목적한 것을 획득하고야 만다.

나쁜 여자는 늘 남들로부터 ‘나쁜 여자’라는 비난을 받지만 남자들은 오히려 이 나쁜 여자가 가지고 있는 성적인 매력을 좋아한다. 착한 여자가 얻는 것은 세상의 ‘칭찬’이지만 세속적인 삶에서는 실패를 하고, 나쁜 여자는 늘 ‘욕’을 먹지만 세속적인 삶에서는 성공을 한다.

착한 동생과 나쁜 언니가 있다.
언니는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미모에 총명한 두뇌 그리고 사고방식이 무척이나 현실적인 여성이지만 이기적이고 때로는 나쁘기까지 하다. 나쁜 언니는 연애도 양다리 세다리를 걸치면서 돈과 학벌, 사회적 지위등을 고려하여 진짜로 사랑하는 남자를 차버리고 현실적인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남자를 선택한다. 심지어는 갓 낳은 자식과 남편까지 팽개친채 자신의 꿈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까지 가는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반해 동생은 언니보다 미모도 처지고 머리도 언니에 비해 그다지 총명하지 못하지만, 언니와는 달리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줄 아는 한없이 착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이 착한 동생은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는 모두 언니와는 반대로 참담한 실패만을 경험한다. 게다가 사랑을 느낀 남자들도 대부분이 언니가 ‘차버린’ 남자들에 대한 연민이다. 이보다 더 착하고 좋은 여자가 없다.

위의 두 가지 이야기는 지난 해말부터 최근까지 중국에서 많은 시청률을 올린 두 현대 드라마들의 기본적인 줄거리들이다. 이 드라마들의 성공 이후, 베이징일대의 언론매체를 중심으로 ‘좋은 여자와 나쁜 여자’라는 이분법적인 ‘여성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찮은 화제로 등장하였다.

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현대 드라마들의 절반 이상의 소재들은 희한하게도 ’이혼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아니면 위와 같은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로 대비되는 두 여자, 혹은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먹고 살만 해지니, 이젠 웬 가당치도 않은 ‘착한 여자/나쁜 여자 타령’인가 싶어 쓴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채널이 다른 중국방송에서 방영된 한국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을 보고나서는 ‘남 욕할 것’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동일하게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우리의 ‘이브들’은 중국 드라마속의 ‘이브들’보다 어쩌면 더 그렇게 극단적이고 원초적으로 묘사되어 있는지 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드라마속 중국의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들은 배시시 ‘눈웃음’을 쳐가면서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거나 또는 극단적인 요악으로 시청자들의 지탄을 받지는 않았는데 우리의 ‘이브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들이었으니 어쩌면 중국의 그녀들보다 훨씬 더 한수 위인 셈이다.

“어디 가서 그렇게 좋은 아가씨를 찾나”

위 드라마들이 ‘강호’를 휩쓸고 간 후 최근까지도 중국의 인터넷과 신문들에서는 좋은 여자 혹은 착한 여자, 나쁜 여자에 관한 무수한 ‘잡담’들이 오고 가고 있으며, 심지어는 어떤 여자를 선택해야 보다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각종 ‘권위 있는’ 분석들도 나오고 있다. 도대체 어떤 유형의 여자가 중국인들에게 더 많은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진짜로 ‘좋은 여자’일까?

드라마속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의 ‘이브들’ 편에서는 돈 많고 잘 생긴 ‘아담'이 눈웃음이 인상적인 착한 여자와 달콤한 키스를 함으로써 행복은 바로 ‘착한 여자와 함께’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중국의 같은 드라마들은 좀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착했던 여자도 나빴던 여자도 둘다 서로 다른 ‘행복한 길’을 찾았으며, 그 행복은 멋진 ‘아담’들이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택한 ‘인생’속에서 발견한 행복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결국 두 드라마들의 결론은 세상에는 착한 여자도 나쁜 여자도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해석한 결론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현실속의 중국인들은 어떤 여자를 더 선호하고 있을까.

당연히 ‘착한 여자’를 선호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각박한 속세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드라마속의 ‘나쁜 여자와 나쁜 언니’ 유형의 여성들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靑年時報’ 최근호에 실린 “어디가서 그렇게 좋은 아가씨를 찾나”라는 제목의 관련 특집기사를 보면, 대부분의 젊은 중국인들은 다소 이기적이더라도 현실적인 ‘경쟁력’과 ‘생존능력’을 갖춘 ‘나쁜 여자’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렇게 ‘착하기만 해서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논리이다. 그리고 그렇게 착한 여자들도 지금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는 세상이라며 “어디가서 그렇게 좋은 아가씨를 찾을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답들’은 위 신문의 기사에서 인용된 모 혼인중개소의 한 책임자의 입에서 실감나게 들을 수 있다. 그 혼인중개소에서 다년간의 경험을 쌓은 ‘뚜쟁이’는 다음과 같은 분석들을 내놓았다.

“사람들의 배우자 선택 관념이 변한다는 것은 즉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죠. 예를 들어, 문화혁명시기만해도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시 했던 조건은 상대방이 어떤 가정 출신인가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말에 이르면 ‘지식은 곧 생산력’이라는 구호가 유행하면서 학벌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나타나더군요. 지금은 어떤지 아세요? 수입과 학벌 이 두 가지를 가장 우선시 하는 ‘하드웨어’ 조건으로 요구합니다. 즉 이 두 가지 조건이 오늘날 중국인들의 사회적 존재가치를 증명해 주는 것이죠. 때문에 우리 혼인중개소를 찾는 사람들중에는 그 드라마에 나오는 착한 동생같은 여자를 찾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이 25세 가량의 자기와 동등한 학력과 경제적 능력을 가진 여자를 찾아달라고 하지....”

‘나’는 어떤 유형인가

그럼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 여자일까?
드라마식의 분류법대로 하자면 나는 과연 착한 여자일까, 아니면 나쁜 여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둘다’ 내 스타일은 아니다. 착한 여자와 착한 동생처럼 남을 위해 헌신적이거나 유달리 많은 연민의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착하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성적매력과 사회적인 생존능력, 늘 남자들을 ‘뻥뻥’ 차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는 나쁜 여자가 갖추고 있는 그 ‘부러운’ 조건들중 어느 하나라도 갖춘 것이 없다.

더더군다나 그 중국 ‘뚜쟁이’가 말한, 오늘날 젊은 중국사람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25세 가량의 딱 좋은 나이와 좋은 학벌 그리고 경제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니 나는 도대체 어떤 유형의 여자란 말인가. 정말로 우리 엄마의 냉철한 분석대로 ‘성질 나쁜’ 여자인 것일까.

그러나 나는 ‘나’의 유형보다 더 궁금한 한 가지가 있다.
연초에 우리 아버지가 ‘예언'하신, 올해 안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고 하는 나의 그 ’귀인‘은 과연 어떤 유형에 속하는 남자인지.

착한 남자일까, 나쁜 남자일까. 아니면 재수없게도 ‘나’같은 ‘성질나쁜’ 남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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