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19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원내대표에 선출된 김덕룡 의원이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번도 이 당을 떠나지 않았던 마당에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생각하고 있다."

김덕룡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002년 3월 '대선후보 경선 지방선거 이후 개최'를 주장하면서 한 말이다. 당시 이 발언은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할 뜻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 의원은 또 "공정한 경선이 보장되지 않는 형식적인 경선이라면 참여할 의미가 없고 당에 남아 합심할 의미가 있겠느냐"며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불신을 끝내 거두지 못하고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포기한다.

김 의원이 불출마 결심을 굳힌 것은 이 전 총재를 비롯해 최병렬·이부영 의원 등 당내 경쟁 후보가 잇따라 출마 선언을 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친데다 출마하더라도 승산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어쨌든 당시 김 의원 주변에선 김 의원이 당분간은 정치권 전면에 나서지 않고 향후 정치권 지각변동 등을 기다려 잠복 행보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의원은 불출마 선언 이후 대선후보 경선을 뒤로한 채 1주일간 호주, 뉴질랜드 등 외국방문에 나선다.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패배 이후 걸어왔던 '영원한 비주류'의 길에 다시 한 번 오른 것이다.

'영원한 비주류' VS 'TK 차세대 주자'

"최근 당 안팎에서 대선후보 출마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뿌리가 깊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언젠가 꽃을 피우는 정도의 정치인이 되겠다'고 얘기했다."

▲ 2002년 5월 10일 서울 잠실실내채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강재섭 의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당 부총재를 지낸 강재섭 의원이 지난 2002년 4월 대선후보 경선과 함께 치러지는 최고위원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회창 대표 지지를 선언하고 적극 도운데 이어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

특히 "금년까지는 '이회창 정치'를 하겠지만 내년부터는 '강재섭 정치'를 할 것"이라며 차기 대권도전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선후보 경선 출마가 점쳐졌던 강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으로 선회한 것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강 의원은 "당이 흔들려 후보에게 많은 약점이 노출됐을 때 틈새를 이용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다"며 "놀부처럼 다리를 부러뜨리고 치유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막는데 주력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당 주변에서는 영남 주도권을 놓고 경쟁중인 최병렬 후보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당시 강 의원은 "내가 대구·경북의 대표 정치인인데 (전당대회에서) 표가 시원찮게 나오면 지역주민들이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겠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17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실시된 경선에서 4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됐고, 대구·경북지역의 대표적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덕룡과 강재섭의 엇갈린 행보

이로써 '호남 비주류'의 김덕룡 의원과 'TK 맹주' 강재섭 의원은 차기를 기약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면서도, 당내 위치에 있어서는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두 사람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차이점은 또 있다.

당시 거세게 불었던 '노풍(노무현 바람)'에 대해 김 의원은 "시대의 흐름"이라며 주목의 대상으로 봤다. 반면 강 의원은 "황사 바람이긴 하지만 현재 불고 있는 바람을 남쪽에서부터 막는데 노력할 것"이라며 '노풍' 방어의 선봉장역을 자임했다.

이에 앞서 1995년 1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바로 세우기'에 따른 5·18 특별법 제정에 있어서도 김 의원은 적극 찬성했지만 강 의원은 당론을 어기고 반대해 이목을 끌었다. 광주항쟁과 관련 옥고까지 치른 김 의원과는 달리 5·6공에 몸담았던 강 의원은 "민자당 대변인시절 내가 한 말을 뒤집을순 없지 않느냐"며 국회 법사위에서 반대를 표명했다.

어쨌든 서로 다른 길을 걷던 두 사람은 1년 뒤인 2003년 6월 대선패배 후 '포스트 이회창' 시대를 끌어가게 될 새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정면으로 맞붙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최병렬 의원과 서청원 전 대표에 큰 표 차이로 밀려 3·4위에 그쳤다.

당시 전체 유효투표 12만8721표 중 최 의원과 서 전 대표가 각각 4만6074표, 4만2965표를 얻은 반면 강재섭 의원은 1만8899표, 김덕룡 의원은 1만5680표를 얻었다. 두 사람이 모두 당선권에서는 한참 멀어졌지만, 강 의원이 김 의원을 약 3000표 차이로 앞서면서 묘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박근혜 대표, 김덕룡 지원... 강재섭은 '비당권파'

최병렬 대표 체제가 '차떼기'에 걸려 중도하차 한 뒤 실시된 지난 3월 임시전당대회에서는 두 사람 모두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강재섭 의원은 공식적으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고, 김덕룡 의원은 오랜 친구인 홍사덕 후보의 눈치를 보느라 비공식적으로 박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이후 두 사람은 탄핵 역풍이 몰아친 4·15총선에서 무난히 5선(13·14·15·16·17대) 달성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두 사람의 행보는 다시 엇갈리기 시작한다. 김덕룡 의원이 지난 19일 실시된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데는 박 대표의 직접적인 지원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의 한 측근은 "박근혜 대표가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와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귀띔했다.

▲ 2003년 6월 23일 오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표경선 서울.강원지역 합동연설회에서 6명의 대표후보들이 앉아 있다. 왼쪽부터 최병렬, 강재섭, 김형오, 김덕룡, 서청원, 이재오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 의원은 전체 119명의 당선자가 참석한 가운데 실시된 당선자 총회에서 지역별로 초선부터 중진까지 비교적 고른 지지를 받으며 과반인 66표를 얻어 압승했다. 특히 당의 분권화 방침에 따라 원내대표의 위상과 역할이 종전보다 격상됐기 때문에 김 의원과 박 대표가 실질적으로 당을 이끌어 나가는 쌍두마차가 되면서 당내 역학구도 역시 급변했다.

'영원한 비주류' 김덕룡 의원이 한나라당 창당이래 처음으로 주류에 선 것이다. 이미 당내에는 박 대표와 김 의원을 지지하는 '당권파'와 반(反)박 대표 진영을 중심으로 하는 '비당권파'로 나눠지는 분위기다.

반면 강재섭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원내대표 경선 이틀 전 박희태·맹형규·김성조·박혁규·임태희·박진 의원 등 34명의 당선자를 규합해 '국민생각'이라는 모임을 만든다. 구성원 상당수가 그동안 당내 '주류'로 분류됐던 사람들이다.

다른 모임이 '공부모임'을 표방한 것과는 달리 이 모임은 공식적으로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선언했다. 강 의원은 "박 대표가 옳은 방향으로 가면 지지를 하지만 잘못 가거나 우리 생각과 다르면 따끔하게 얘기할 것"이라고 말해, '당권파'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서의 자리매김을 시도했다.

대권 야망 접지 않은 두 잠룡의 3년 후?

당 안팎에서는 두 사람의 위치는 바뀌었지만 대권에 대한 야망은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김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 전인 지난 16일 기자와의 오찬 자리에서 "대통령은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며 "큰 흐름이 있다, 두 번의 대선 패배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대통령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국민과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라며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이미 초월한 사람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김 의원은 17대 총선 직후 캠프 관계자들에게 "초선 때 마음가짐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한 측근은 "김 의원은 '3김 시대의 막내'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맏형' 역할을 할 것"이라며 김 의원의 개혁성을 은근히 강조했다.

강 의원 역시 총선이 끝나고 측근들에게 "18대 총선에는 나가지 않겠다, 이제 마지막 뜻을 펼쳐 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강 의원은 지난 20일 SBS 라디오 '정진홍의 SBS 전망대'에 출연, "불출마하겠다고 확실히 얘기한 적은 없다"면서도 "국회의원을 오래해서 국회의장을 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특히 "지역 주민들이 엿가락처럼 늘려서 국회의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저한테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각오로 이번 임기를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18대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통해 2007년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극복해야 할 과제가 존재한다. 김 의원은 63세라는 나이가 가장 부담스럽다. 2007년 대선 때는 66세가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차기 대통령의 연령은 더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무시할 수 없다.

강 의원의 경우에는 TK출신이라는 점이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한나라당에서 호남에 대한 전략을 세우지 않고서는 불임정당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이 영남출신 후보를 내세워 성공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같은 대구 출신으로서 잠재적 대권 주자인 박근혜 대표의 존재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다. 한순간에 주류가 비주류가 되고,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정치판에서 3년 뒤 실시될 대선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대권을 향한 두 잠룡의 빠른 발걸음은 이미 시작됐다.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는 두 잠룡 중 최후 승자는 누가 될까? 자못 궁금해진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