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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전 오늘이다. 그토록 고대하던 에딘버러에 도착해 새벽공기를 마시며 민박집을 찾아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더위에 잠이 깰 정도로 무더웠던 다른 도시와 달리 서늘한 느낌의 새벽공기가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 에딘버러 시의 모습
ⓒ 조미영
8월의 에딘버러는 몹시 분주하다. 더위를 피해 찾아온 피서객들과 수많은 축제를 보기 위해 방문한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한꺼번에 집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곳까지 오는 교통편과 숙소는 미리 예약해 놓아야 한다.

여름이면 이곳은 밀리터리 타투와 국제 공연예술제,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재즈 페스티벌, 북 페스티벌, 필름 페스티벌 등의 축제가 연일 이어진다. 물론 좋은 공연 티켓은 미리 예매해 두어야 한다.

밀리터리 타투의 경우 주말 공연은 불꽃놀이가 행해진다는 점 때문에 봄부터 이미 예매완료가 되고, 주중 공연도 개막 전에 판매가 완료된다. 단, 당일 판매를 위해 남겨둔 50여 석 정도가 매일 아침마다 판매되는데, 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를 요한다. 판매시작은 오전 9시부터지만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5월쯤 여행 일정이 확정된 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려했으나 주말 표를 구할 수가 없어 이곳에 와서 표 사기를 시도했다.

▲ 매표소 앞에 줄을 선 사람들!
ⓒ 조미영
첫날 8시쯤 매표소에 도착했으나 이미 오늘 초과분 만큼 줄을 서고 있다. 하루에 50석, 1인 2장까지 구입 가능하니 계산이 얼추 나온다. 제일 앞에 온 사람은 대체 몇 시쯤 왔나 궁금해서 맨 앞으로 가 보았더니 ‘이게 웬걸’ 한국인이다. 조급한 마음에 새벽 6시 이전에 도착했다는데, 한 30분 늦어도 괜찮을 것 같단다. 역시 부지런한 한국인이다.

드디어 토요일, 숙소의 룸메이트와 6시 40분경 매표소에 도착했다. 다섯 번째이다. 오늘도 역시 한국인이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우리도 갖고 온 신문을 깔고 앉았다. 앞으로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까닭에 책을 들고 나왔지만 읽히지는 않는다. 앞뒤 사람 행동과 이야기에 힐끔거리기도 하고 같이 온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눴다.

이렇게 사람이 모인 곳에는 늘 통반장 역할을 자처하는 이가 있는데, 오늘은 내 뒷줄에 선 서양아저씨가 그렇다. 줄을 정리하고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이에게 핀잔을 주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덕분에 심심치 않은 시간이었다. 아침이 되어 길가에 사람이 많아지자 지나는 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늘도 역시 기다란 줄을 섰구나" 하며 무심히 지나지만, 이곳에 처음 온 관광객들은 "무슨 줄을 저렇게 섰을까?"하고 의아해 한다. 아마, 그 중에는 내일이면 우리처럼 신문을 깔고 앉아 표를 기다리는 이도 있으리라.

오전 9시, 매표소 문이 열리고 드디어 티켓을 샀다. 어찌나 흐뭇하고 기분이 좋던지 히죽히죽 자꾸만 웃음이 난다. 긴 줄에 서있던 노부부가 표를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보여주니 많은 이들이 몰려든다. 무슨 상장이라도 쳐다보듯 경외스러운 눈빛이다. 뒷줄에 서 있는 이들에게 "굿럭"을 외치며 돌아서는데 등 뒤로 부러워하는 시선이 자꾸만 와서 꽂힌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저녁식사 후, 타투 공연이 펼쳐지는 에딘버러성으로 향했다. 로얄마일(에딘버러성과 홀리루드성을 잇는 길)로 향하는 길목에 도착했을 때 일군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근처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한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하고 로얄마일 쪽으로 꺾어 들어갔는데, 그 줄은 저 멀리 성 입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가운데 도로만 남기고 양 옆 인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줄은 대략 500M가 넘는 듯 하다.

입장표를 갖고 있는 9000여 명과 일반 관광객까지 섞인 상태이니 만 명은 훨씬 넘는다. 아마, 공연 전에 이곳을 지나는 군악대들의 간단한 퍼레이드가 펼쳐지는데, 많은 이들이 맛보기라도 보기 위해 몰려든 탓에 더욱 북적이는 것 같다.

▲ 로얄마일을 꽉 채운 사람들의 행렬
ⓒ 조미영
▲ 관람을 위해 입장하는 사람들 - 성 입구쪽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 조미영
에딘버러성 입구 주차장에 설치된 관람석은 어느새 빽빽이 채워졌다. 사회자가 각 나라의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조명등은 어지럽게 관람객을 비추고, 해당 국가의 관객들은 소리로 화답한다. 이런 떠들썩함이 지난 후 불이 꺼지며 로얄석 맞은편의 에딘버러 성에서 광채가 난다. 잔뜩 부풀은 기대에 두근거림을 안은 시선들이 집중되는 순간이다.

공연 후 소감을 우선, 말한다면 이성과 감정이 굉장히 불균형상태를 이룬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군악대의 백파이프 연주를 시작으로 참가국 군악대들이 각자 기량을 선보이고, 나중엔 이들이 모두 나와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랭사인'을 부른다. 그 뒤로 이어지는 불꽃놀이까지 특별히 독특하거나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멀티미디어 불꽃 쇼를 익히 보아온 나는 몇 번 쏘아 올리고 마는 불꽃놀이가 싱겁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다. 가슴이 촉촉이 젖어 드는 게 연인이라도 옆에 있으면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은 분위기다. 어디서부터인가 시작되었는지 옆 좌석의 사람들과 손에 손을 잡고 커다란 물결을 이뤄낸다. 자국민들은 불꽃 아래서 펄럭이는 영국깃발을 보며 애국심이 막 용솟음칠 것이다.

▲ 스코틀랜드 군악대의 백파이프 연주
ⓒ 조미영
▲ 가장 인기를 끌었던 스위스팀의 모습
ⓒ 조미영
▲ 우리나라 팀도 참여를 했다!
ⓒ 조미영
참 이상한 일이다. 이성적으로 볼 때, 절대 굉장한 기량이나 구성의 군악제는 아닌 것 같은데…. 이 행사가 왜 이렇게 감동적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변여건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우선, 표 구입에서부터 어렵게 구하는 것이니 희소성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고, 축제를 둘러싼 주변 역시 끊임없는 흥을 북돋아 적적한 만족감을 안겨준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다. 대체로 군악대는 운동장이나 대형공연장 등에서 펼쳐지는데 여기서는 분위기가 너무도 꼭 맞는 에딘버러 성 앞에서 이뤄진다. 성에 비춰지는 파랑, 초록, 보라 등의 조명만으로도 충분히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다. 똑같은 공연을 무대장치와 조명 없이 보는 것과 공연장에서 분위기 맞추어 보는 것과의 차이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 참여팀 모두가 나와 합창을 하고 있는 모습
ⓒ 조미영
▲ 조명을 받은 에딘버러성
ⓒ 조미영
어두침침한 분위기에 기후 조건까지 나쁜 에딘버러 시지만 전통 있는 관광축제의 개발과 역사 문화적 공간의 효율적 보존으로 세계적 관광지로 거듭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올해로 55회를 맞는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는 8월 첫째 주 금요일이면 시작하는 전통에 따라 내일 개막한다. 어김없이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그들에게 불황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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