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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보이>가 칸영화제에서 이룬 성과는 정말 고무적이다. 전통이라는 안전띠를 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사착륙을 하였으니 앞으로도 위험한(?)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새삼스레 하는 뜬금없는 소리가 의아스럽겠지만 오늘은 왠지 이 말을 먼저 하고 싶었다.

▲ 에딘버러시, 축제의 중심부인 이 거리는 연일 사람과 광고판으로 들끊는다.
ⓒ 조미영
지난번 소개한 '에딘버러 프린지 축제'의 탄생에는 '국제공연예술제'(International Festival/EIF)가 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같지만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고 자유스러운 프린지 축제에 비해 EIF는 격식을 따지는 까다로움 때문인지 무거운 분위기다. 참여는 엄격한 심사를 거친 검증된 작품에 한해서 초청하고, 작품에 대한 모든 사항은 주최측이 결정한다.

▲ 공연장 앞에 이번 행사의 공연 시간표를 적어놓은 모습
ⓒ 조미영
초청자는 기획, 홍보, 공연전반에 대한 충분한 예우를 제공하는 대신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한다. 작년에는 우리나라의 판소리가 이 곳에 초청되었다. 매 공연마다 객석을 가득 채웠고, 호응도 좋아 나중에는 현지 비평가 그룹이 선정하는 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난, 당시 에딘버러에서 운 좋게 취재에 동참할 수 있었다. 프린지 축제와 달리 EIF는 취재에 제약이 많았다. 공연이나 리허설 취재는 일체 할 수 없고, 기자회견형식으로 정해진 시간에 일시적으로 허용했다.

딱딱한 담당자의 통제 하에 우리 언론들은 번개처럼 영상과 사진을 찍고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한 채 쫓겨나듯 빠져 나왔다. 다들 멋쩍은 표정이었다. 담당자와 안면이 있는 듯한 외국 기자가 몇 장을 더 찍고 나오는데 괜히 심술이 났다.

▲ 기자회견장의 우리나라 언론과 지역언론사 취재진 모습
ⓒ 조미영
박물관 강의실에서는 판소리 관련 워크숍이 따로 마련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 음악을 배워간 영국 교수가 요청을 하여 진행하는 행사라고 한다.

호기심에서 찾아가 보았는데 아쉽게도 참여는 저조했다. 이 교수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였지만 거절한다. 무례하지는 않았지만 무리한 부탁이었나 보다.

▲ 취재를 위한 공연. 무대위로 영어자막이 흘러 이해를 돕는다.
ⓒ 조미영
그래도 EIF에서의 좋은 기억도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공연 시 너무 비싼 공연료 때문에 고민하다 못 보고 놓친 쿨베르 발레(Cullberg Ballet)단의 공연을 5파운드에 보는 뿌듯함을 얻었다. EIF의 후원사인 스코틀랜드은행에서 매 공연의 50석 정도를 후원해주어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 쿨베르 발레단의 공연은 이 공연장에서 있었다!
ⓒ 조미영
그러고 보니 런던에서 본 뮤지컬들도 우리나라에서보다 저렴하게 봤다. 다양한 가격의 입장권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우리 공연시장의 여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공연시장은 너무 경직되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마구 치솟기 시작한 공연료는 예사로 10만원대를 오락가락 한다. 좌석에 따라 3등급 정도로 나뉘지만 3등급 자리는 생색만 냈을 뿐 거의 없다. 그러니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큰 맘을 먹어야 한다. 자연 일부 부류들만의 호사 정도로 여겨지며 대중들과 멀어져 간다.

▲ 공연티켓 구매를 위한 기다림은 즐거움이다!
ⓒ 조미영
해외 팀의 비싼 초청료와 대형화되는 우리 공연들의 비용 증가로 인한 이윤 맞추기라지만, 스스로 체질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비싼 비용은 관객층을 얇게 만들어 장기공연을 불가능하게 하고 그렇게 올리는 일회성 공연들은 관객 동원을 위해 감각적으로 흐를 뿐이다.

손쉬운 번안극이나 브로드웨이를 모방하는 뮤지컬 일색의 공연은 식상하기까지 하다. 이마저 자체 해결이 힘들 때는 해외 유명 공연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공연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연예술인의 빈곤을 초래한다. 창작을 할 수 없는 예술인이 잉태되는 것이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실력이 힘이라면 실력을 키워야 하는데, 여건이 되지 못한다. 일부 천재적 재능을 갖춘 개인에 의지하여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때론 "우리 것은 좋은 것이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라며 전통을 내세우지만 막상 우리의 문화재는 방치되고 전통은 사라져간다.

전통 연희들은 늘 찬밥처럼 이리저리 밀려다니다가 국제적 행사가 있을 때만 반짝 출연을 한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그들에게 발전적 모습까지 바라기는 미안할 지경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판소리와 부채춤에만 의지할 수 없는 현실이고 보면 충실한 전통보존과 함께 발전적 변화모색이 필요하다.

▲ 축제 정보가 담긴 팜플렛과 신문 ; unusual spectacle로 판소리를 표현한 언론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 조미영
인정하기 싫지만 해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신기함 그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이다. 우리가 이집트를 생각할 때 피라미드와 파라오를 상상할 뿐 그들의 현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별로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를 한두 번 본 후에는 다신 찾지 않는다. 신기함을 충족하는 데는 한두 번이면 족하다.

글 첫머리에 영화 <올드보이>를 거론한 이유도 여기 있다. 그간의 낯선 문화에 대한 경외심에서 벗어나 서구인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등장시켜 맞대결했다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재조명되는 계기로 본다. 판소리는 인정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서구인들에게서 색안경의 색을 조금은 뺀 느낌이었다.

▲ 인텔은 축제지원과 함께 무료 인터넷 체험장을 마련해 노트북 광고를 하고 있었다.
ⓒ 조미영
지금은 문화의 시대다. 문화를 점령하는 자가 세계를 차지한다. 맥도널드와 코카콜라가 입맛을 담보로 미국 문화의 척후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총성 없는 전쟁에 기업도 나라들도 문화마케팅 전략을 갖고 뛰어든 지 오래다.

정작 우리만 경제 불황 탓을 하며 손놓고 앉아 있다. 나라도 기업도 투기만 하지 투자는 하지 않는다. 투자를 통한 미래의 더 큰 수익을 생각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 프린지축제의 든든한 후원자 로얄 스코틀랜드 은행이다.
ⓒ 조미영
일례로 에딘버러 축제에는 스코틀랜드 은행, 위스키회사 등의 지역 기업은 물론이고, 벡스맥주, 포드자동차, IBM컴퓨터 등의 기업후원이 지방정부와 문화재단의 재정지원보다 더 많다. 그리고 지역 관광청은 이를 효과적으로 정리하여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한다.

물론 전통도 오래고 워낙 유명한 축제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키우기까지의 여건과 노력을 생각해 보고 싶다. 예술인들의 끊임없는 창작의욕이 밑바탕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 공연홍보를 위해 망가지지만, 이렇게 맘껏 표현할 수 있어 좋다!
ⓒ 조미영
우리도 기업 후원과 복권수익 등의 투자를 통한 문화활성에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다양한 인재들이 탄생하리라 본다.

판소리가 세계적 공연예술제에 초청된 최초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길 바라며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갈고 닦는 세계의 예술인들을 상상해 보며 갖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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