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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경찰서 소속 전투경찰들이 농성천막과 모형감옥을 뜯어내고 있다.
ⓒ 통일뉴스 제공



천막

(전경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국회 앞 국가보안법농성장에 서서)


漢水야 너는 보았니
허우적 허우적 날아가는
홑겹의 천막을

漢水야 너는 보았니
파르르 떨다 무심히 떨어진
0.3평 남짓 모형감옥을

漢水야 너는 보았니
공사장에서 무너진 코로 방긋 웃던
일용노조 노동자의 못질이
두두두 달려온 우람한 군화에
가련히 생을 다한 것을

漢水야
썰물에 쓸려간 천막 사이로
밀물치는 바람이 무척이나 애리구나

너를 기다리며 한 것 들이킨 태양이
우리 눈에 영롱이다
두 볼을 타고 내리는구나

하지만 漢水야
나의 정제된 분노
우리의 갈무리된 신념은
휜다리를 피고 끊어진 뼈마디를 모듬어
다시 천막을 일으킨다

어리숙한 우리 팔뚝을
漢水야 보러오겠니
어설픈 천막에 너를 담고
해일되고
칼바람되어
도도한 여의도를 지나 보련다

국.가.보.안.법.완.전.폐.지.
작은 초 밝혀두고
漢水 너를 기다린다

2004.11.3.

유린당한 민주주의
공권력 국가보안법폐지 국민농성장 유린

국가보안법폐지 국민농성장 유린에 대한 짧은 보고


"오후 2시에 경찰이 농성장을 철거한다고 합니다. 모두 농성장 주변에 모여서 농성장을 지킵시다."
농성상황실장(신건수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부의장)의 허스키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농성장 주변에 울렸다.
장애인, 전교조 선생님들, 여성단체회원들, 인권운동가들, 종교단체상근자, 민주원로인사, 학생, 민주노동당 당원, 청년, 노동자 등 100명의 농성자들은 소속과 출신은 다르지만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천막과 모형감옥을 몸으로 사슬을 만들고 지키기 시작했다.

필자는 무기한 단식농성을 한다는 이유로 모형감옥 안에 앉아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서 동지가를 부르는 여성들의 입김을 하염없이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를까.
2시도 안 됐는데…
전교조 농성천막, 국보폐지 농성천막 3개, 모형감옥 5개, 장애인 이동연대 천막 1개.
길게 늘어선 농성장 전면과 측면에 경찰버스가 늘어서고 전경들이 공격대형을 갖추더니 급기야 두두두. 순식간이었다.
70~80이 넘은 노인들 위로 천막의 철제 앵글들이 뛰어다니고 밀리고 밟혀 쓰러지는 원로선생님들, 절규하는 여성회원, 온몸으로 경찰의 폭력에 맞서는 청년과 학생들.

모형감옥을 완전히 부수고 천막을 철저히 유린한 전경들은 유유히 버스 뒤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농성장을 지키던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도로 끝까지 뒤따라가며 몸싸움을 했고, 그나마 남은 플랜카드라도 건지려 안간힘을 썼다. 계속되는 몸싸움, 규탄집회. 무려 4시간의 사투를 벌인 농성단은 6시부터 촛불문화제를 시작해 8시까지 다양한 문화공연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공권력이 정말 유린한 것은 민주주의

우리는 지난 87년 6월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신군부는 제도적(형식적) 민주주의를 국민에게 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헤게모니를 쉽게 내놓을 리 없는 수구세력은 이후에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 세력을 분열시키고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퇴보시키려 했다.

그래서 인가. 아니면 수구냉전과 독재로 얼룩진 '병영국가'의 한계란 너무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인가.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민주주의는 제도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만 같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면 장애인, 여성, 노인, 동성애 등 소수자 문제에 천착하는 일상의 민주주의, 산업현장에서 나타나는 생산의 민주주의, 민족 또는 국가간의 관계가 국가 내부와 관계를 형성하는 대외관계의 민주주의 등 민주주의는 그 영역을 확장하기 마련이며 다양한 의견들과 요구들이 분출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차이점에 대한 관용과 공통점에 대한 이해, 더 나은 대안을 향한 진지한 협력 등에 있으며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원리는 '논쟁과 토론'의 공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이론은 슘페터류의 이론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가 국회앞에서 농성장을 차리고 깊은 가는 가을밤에 초를 밝히는 이유는 지난 56년간 냉전과 분단에 기대어 권력을 장악하고, 냉전과 수구논리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수구냉전구조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의견을 강력히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겨울의 길목에서 단식농성까지 진행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이 구시대의 유물을 청산하기 어렵다는 절박감과 수구냉전의 상징인 국가보안법폐지를 통해 분단과 긴장, 반민주와 인권유린의 사회구조를 극복하자는데 있다.

우리는 폭력을 사용하지도 않았으며 상식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과 저녁으로 우리의 행동반경을 청소하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식사를 해결하는 등 최선을 다해 시민들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에게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사회 공공의 문제, 우리 국가와 민족의 지향과 미래에 대한 문제이기에 시민들에게 송구한 마음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야기를 시민들과 함께 하려했다. 그래서 아침이면 여의도로 출근하는 발걸음을 찾아가 선전물을 건네주고 저녁이면 촛불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수구냉전질서에 익숙한 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지키고 보장해야할 공권력이 오히려 유린하는데 자기 폭력을 행사했다.
그들이 부순 것은 천막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간존엄이다.
그들이 부순 것은 통일과 평화이다.
그들은 부수면서 냉전과 수구질서를 다시 쌓았고 인간성 상실과 소외를 공고히 한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폭력이 계속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늦은 밤까지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다시 평상을 짰고 모형감옥을 임시로 만들고 다시 자리 잡았다.

폭력의 끝이 어디인지 지난 세기 식민지배와 전쟁, 군부독재를 통해서도 다 확인하지 못한 우둔한 이들에게 우리의 진정성이 깨우침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우리는 다시 천막을 세우고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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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석은 한양대에서 철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교원대에서 교육정책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교육감 정책비서와 국회 보좌관, 교육부 장관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민생경제연구소 공동소장과 (사)돌바내 이사이며, 2021년에 포스트86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공공정책에 초점을 맞춘 정책연구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를 만들어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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