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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랑하는 아내에게

올해는 어느 해보다 가을이 길군요. 가을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에겐 축복입니다. 더욱이 국가보안법폐지 무기한 감옥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보니, 겨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가을이 무척이나 고맙기도 합니다.

아직은 때 이른 아침이군요. 0.75평 모형감옥에 앉은뱅이책상을 펴고 '20세기 자본주의와 시민사회'관계에 대한 논문을 읽고 있어요. 논문을 보다 문득 창살 너머 찾아온 흐린 늦가을 하늘이 모형감옥 안까지 빠끔히 들어온 것을 봤어요. 백열등에 의지했던 방에 흐리긴 하지만 아침의 축복이 방 한가운데까지 온 것을 보니 당신의 따뜻하고 훈훈한 입김이 그립군요.

편지를 쓰고 있는데 당신의 전화가 왔어요. 우리 마로가 아빠를 많이 찾는가 보군요. 당신에게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국가보안법폐지 전국도보행진 기간 동안 새벽에 들어오고 이른 아침에 나가는 나에게 당신은 아무 말 없이 이른 아침밥을 해놓았죠. 국가보안법폐지 서울도보행진을 하느라 일주일 동안 집을 비웠을 때도 당신은 묵묵히 나를 응원했죠. 도보행진이 끝나자마자 무기한 단식농성을 들어가는 나에게 당신은 맑은 눈으로 건강하라며 내 등을 따뜻이 안아주었죠.

그런데 나는 내가 왜 미련하게 감옥 안에 나 자신을 가두고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려는지에 대해 당신에게 별 얘기를 하지 않았더군요. 내가 모형감옥에 들어가 단식을 하고 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국가폭력을 폭로하기 위함입니다.

▲ 0.75평 모형독방 안에서 5일째 단식을 진행하며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한청 송현석
ⓒ 통일뉴스 제공
친일파들은 광복 이후 친미 군정에 붙어서 권력을 유지했죠. 내선일체의 헤게모니담론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했던 이들은 광복 이후엔 반공이데올로기로 헤게모니 담론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이들의 헤게모니는 반공반북담론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라왔습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분단과 냉전이라는 구조와 반공반북이데올로기라는 헤게모니담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수구냉전세력의 정권유지수단이었습니다.

수구냉전세력이 오랜 시간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정치, 교육, 언론, 문화, 경제, 종교 등 한국 사회 모든 곳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국가보안법은 이들에게 성경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수구냉전세력들은 국가보안법을 성경 말씀처럼 유포하면서 국민들을 맹목적 반공반북담론의 노예로 전락시켜왔고 우리 국민들의 비판이성을 제거하고 도구이성같은 존재로 묶어두려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신의 자리에 성직자와 권력자들이 자리하고 신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사람의 사랑과 우정으로 가득해야할 교회가 부와 권력을 위해 물신화되는 것처럼, 국가보안법은 성경을 넘어 수구냉전담론과 질서의 생산자가 되고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수구냉전에 대한 상징적 저항일뿐만 아니라 구조와 담론을 해체하는 역사의 큰 발전이 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한국사회의 수구냉전담론과 질서의 생산자가 되고 주인이 되다보니 한국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수구냉전의 감옥'이 우리의 이성과 삶을 제약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눈으로만 보고, 오른쪽 머리로만 사고하고, 오른쪽 팔과 다리로만 생활해야 하며, 북쪽 마을사람과는 만나서도 안 되고 쳐다봐도 안 되는 사회가 강제되었죠.

드디어 국가보안법은 구조화된 국가폭력이 되었으며 보이지 않은 강제와 감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한국사회와 국가보안법의 심층을 감옥농성을 통해 퍼포먼스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모형감옥에 들어가 단식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더불어 사는 사회, 국가'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 국가'는 다른 말로 하면 '공화국'이라 합니다('공화국'에 대해서는 한나 아렌트의 글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기본원리는 '관용, 협력, 사랑'이라 생각해요. 차이에 대해 관용을 베풀고, 협력하며 토론과 논쟁하고 대안을 창출할 때 더불어 살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바탕에는 '더불어 사는 사람, 가정, 사회' 등 사람과 사회에 대한 사랑이 기초에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관용, 협력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과 그런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신념에 기초합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으로 상징적으로 표출되는 수구냉전 국가폭력은 이런 사랑의 담론, 관용과 협력의 사회구조를 유린하고 메마르고 팍팍한 사회를 강요합니다.

저는 작은 감옥 안에 갇혀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상에 작은 목소리로 알리고 싶습니다. 허기에 꺾이는 내 허리를 보며 80 노구를 이끌고 '좋은 물'을 길어다 주는 선생님, 어디 바람 세는 곳이 없나 아침 저녁으로 종종 걸음하는 선배와 후배들, 단식하는 내 옆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며 매일 점심을 거르는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중앙간부들, 혹독한 경쟁사회에서 진을 다 빼앗기다가도 저녁마다 농성장 옆에서 개최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하는 청년들…. 길을 가시다 감옥 앞에 선전물을 보시고 사탕을 한 주먹 안겨주시는 중년 부인, 힘들지 않으냐고 걱정해주시는 농성장 옆 빌딩의 수위 아저씨. 찬란한 가을태양의 가슴 벅찬 감동이고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당신
만 5년 수배생활 뒷바라지를 시작으로, 수형생활 옥바라지, 청년회 사무실에서 먹고 자던 시절까지 당신은 물심양면으로 나를 챙겨주었죠. 주변 사람들 모두 2000년 6월 그 감동을 즐길 때, 당신은 대공분실에 있는 나를 면회하러 오기 위해 공안경찰들과 몸싸움을 해야 했죠.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부모님들의 반대와 만류, 형님들의 걱정을 홀로 이겨냈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우리는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나는 언제나 보기 힘든 남편, 아빠가 되었고 생활과 육아는 온통 당신의 몫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늦은 새벽에 살며시 들어오는 내 잠자리를 당신은 피곤한 눈으로 마련하고 기다렸죠. 당신의 깊은 믿음과 사랑. 너무 감사합니다. 당신을 너무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지금 나 여기 있고 당신은 그곳에 있어, 우리 그립고 힘들지만 이 고비를 넘어가는 것은 이후 그대의 편안한 잠자리를 만드는 것이니 걱정보다 희망을 앞에 두기 바랍니다.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수북한 낙엽은 그대 향한 내 사랑의 선물입니다. 바쁜 출근길이겠지만 잠시라도 우리 대학시절의 설렘을 다시 만나기 바랍니다.


2004. 11. 10.
그대 반쪽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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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석은 한양대에서 철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교원대에서 교육정책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교육감 정책비서와 국회 보좌관, 교육부 장관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민생경제연구소 공동소장과 (사)돌바내 이사이며, 2021년에 포스트86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공공정책에 초점을 맞춘 정책연구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를 만들어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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