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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아빤 내꺼야" 꼭끼하고 어깨에도 뽀뽀하는 마로
ⓒ 송현석

나의 눈 나의 심장 마로에게

사랑하는 아빠 딸 마로. 요즘 장염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엄마한테 들었다. 감기를 넘어서자마자 장염이라. 엄마도 너도 고생이구나.

어느덧 우리가 떨어져 지낸 지도 23일이 되었다. 서울도보행진까지 합치면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떨어져 있구나.

민들레를 비행기 꽃이라 부르고, 잘 마른 노을빛 낙엽이 곱다며 내게 선물하던 마로. 조금 있으면 만 3살이 되는구나.

올해는 아빠가 우리 가족에게는 완전히 0점이구나. 결혼기념일은 '국가보안법폐지 전국도보행진' 챙긴다고 새벽이 돼서야 집에 들어오더니, 엄마 생일은 '국가보안법폐지 서울도보행진'할 때라 전화 한 통으로 넘어갔구나.

우리 마로 생일 전에는 국가보안법 문제가 해결돼야 할 텐데. 성탄절 전에 해결되면 좋겠다. 시골에서 홀로 지내시는 할아버지와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말이다.

마로. 밤마다 버스 타고 아빠한테 가겠다며 노동에 지친 네 엄마를 곤란하게 한다지.

사회의 모순은 이렇게 가족과 개인에게 짐을 지운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나의 눈 나의 심장 마로가 어른이 되었을 땐 지금과 같은 사회가 아니길 아빠는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지금 아빠는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위해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마로야. 국가보안법이 뭘까?

얼마 전 아침 안개가 수락산에서 내려와 우리 동네에 가득했을 때, 엄마가 "마로야 하얀 안개가 예쁘지?"라며 아침안개에 취했지. 그때 마로는 "엄마 누가 세상을 하얗게 색칠했어?"라고 물어봐, 네 엄마는 너의 상상력에 감동했다지.

엄마 아빠가 갖고 있지 못한 상상력을 우리 마로는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엄마 아빠는 너무 행복하단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존경한단다.

이처럼 '새로운 상상력'은 사람에게 희망, 사랑, 감사, 미래, 발전, 가능성……, 수많은 아름다운 미래와 그 미래를 향한 오늘을 주는 힘이란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사람들의 '새로운 상상력'을 빼앗고 심지어 머릿속에 형제를 미워하고 이웃을 의심하는 생각만 남기려고 한단다. 그리고 전쟁과 폭력, 증오와 멸시를 유포하고 사회의 악인 감시와 처벌을 사회의 선으로 둔갑시킨단다.

실례로 아빠와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노력하는 삼촌, 이모들이 매일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만나는데, 세칭 '반공할아버지'들이 이모들의 뺨을 때리고 발로 차고, 심지어 물어뜯기까지 했더구나.

아빠는 아빠의 눈이자 심장인 마로의 '새로운 상상력'이 훼방 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로의 의지와 상상력이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열매를 맺고 씨앗이 될 수 있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조금은 힘들지만 마로와 떨어져 있단다.

마로의 말처럼 눈이 세상을 새하얗게 색칠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마로가 귤 두 개를 겹쳐들고 눈사람이라고 아빠한테 자랑하곤 했지. 세상이 하얗게 색칠되는 날, 까치 우는 아침부터 해님과 달님이 만나 세상이 단풍색으로 물들 때까지 눈사람 만들자꾸나.

나의 눈 나의 심장 마로와 함께 열린 세상에서 책 읽고 토론하는 날을 고대하며 아빠는 꿋꿋이 모형감옥에서 단식농성을 지키련다.

사랑하는 마로. 아빠가 군고구마랑 군밤 들고 찾아갈 새하얀 날을 기다려 주렴.

2004.11.24.

첫눈 오기 전에 마로와 함께 하길 고대하는 아빠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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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석은 한양대에서 철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교원대에서 교육정책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교육감 정책비서와 국회 보좌관, 교육부 장관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민생경제연구소 공동소장과 (사)돌바내 이사이며, 2021년에 포스트86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공공정책에 초점을 맞춘 정책연구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를 만들어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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