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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의사에게 치매라는 질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아버지
ⓒ 김혜원

"여보세요? 큰딸이냐? 아부지다. 내가 반포 둘째딸네 왔는데 길을 잃었나보다. 아무리 찾아가려고 해도 길을 모르겠어."

"참 이상하다. 내가 어제 네 엄마랑 여행을 다녀왔는데 오늘 아무리 기억을 해보려고 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다에 다녀온 것 같긴 한데…. 어떻게 이렇게 기억이 없냐? 아부지가 늙긴 늙었다보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어."


올해 73세이신 아버지. 아버지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시기 시작한 것은 올 초부터이지 싶습니다.

한참 활동하시던 젊은 시절에는 100개 이상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니셔서 수첩이 필요 없었다던 아버지. 한때 자식들의 모든 질문과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주는 가장 편리한 만능 사전이며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던 만물박사였던 아버지의 달라진 모습을 보는 자식들의 반응은 '우리 아버지도 늙으시는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전에 없이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하시거나 자식들에게 묻고 또 묻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이시기는 했지만,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의 상태를 별로 심각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취미삼아 쓰시던 붓글씨도 여전히 잘 쓰시고 지난해부터는 아코디언까지 배우러 다니시는 등 지적 능력이나 기능적인 능력이 보통의 노인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상행동에 대해 자식들은 '관심을 끌기 위한 아버지의 지능적인 편법'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늘 함께 살던 자식들을 하나씩 둘씩 결혼시켜 내보내고 노환을 앓으시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엄마와 단 두 분만 단출히 사시다 보니 외로움이 커지셔서 자식들에게 관심을 얻기 위해 일부러 장난삼아 그러시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장난 그만하세요. 치매예요? 왜 그러세요?"

▲ 다른 환자분과 함께 진료순서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 김혜원
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친정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쉽게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삼년 전부터 자신이 둔 물건을 찾지 못한다거나 했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일종의 건망증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아버지가 몰고 다니시는 자동차 여기 저기에 접촉사고의 흔적이 늘어가고, 차를 가지고 나가셨다가도 길을 잘못 들거나 헤매는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해서 예사로 볼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저 역시 최근 들어 아버지가 몰고 다니시는 차의 여기 저기에 접촉사고 흔적이 흉하게 드러나 있던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던 것 같습니다.

방금 했던 말을 되묻고 되묻는 아버지에게 "장난 그만하세요. 치매예요? 왜 그러세요"라며 장난삼아 놀렸던 자식들로서는 가슴 철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형제들과 의논한 끝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아 오신 엄마의 경험담과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이상 행동 등을 미루어 보건대 치매가 의심이 되었던 때문이지요.

문제는 특별히 치매라는 질병에 나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를 어떻게 병원에 모시고 가며, 어떻게 검사에 협조를 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치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병원 검진을 거부하실 것이고, 자식들에게 불같이 화부터 내실 것이니 말입니다.

결국 자식들과 엄마는 아버지를 잠깐 속이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앓으셨던 뇌졸중에 대한 재검을 포함해서 건강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종합검진을 받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치매를 진단하기 위한 검사는 하루 종일 진행되었습니다. 혈액검사, 뇌파, 초음파, 골밀도, MRI, MRA등 기계를 이용한 정밀 검사는 물론 2시간 여에 걸친 심리검사까지 치매를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이 다양한 만큼 진단을 위한 검사 역시 세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정밀한 검사 결과 아버지는 치매 1기를 넘어서고 있다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우측 전뇌가 축소되어 있었으며 우측 뇌로 혈액을 공급해야 하는 혈관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동안은 발견되지 않았던 질병인 당뇨와 갑상선기능저하 역시 치매를 급격하게 진행시킬 수 있는 병증으로 치매를 치료하거나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치료가 시급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치매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 건강하게 해로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자식들에겐 힘이 됩니다.
ⓒ 김혜원
"벽에 똥을 발라야 치매가 아닙니다. 환자 분처럼 지능이 높고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의 경우 평소에 비해 조금만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판단이 흐려져도 중증치매에 해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치매의 진단은 사람마다 굉장히 차이가 납니다. 별로 머리를 쓰지 않은 사람이 10개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치매라면 아버님의 경우 2개만 기억하지 못해도 치매로 진단할 수 있거든요.

지능이 높고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의 경우 중증 치매 상태가 되어야 병원에 오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주변에서 의식을 못하는 거지요. 어머님이 함께 계시고 유심히 관찰하셔서 일찍 발견하셨으니 다행이신 겁니다. 초기인 만큼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신다면 반드시 좋아지실 수 있습니다. 뇌졸중도 지금처럼 극복하셨으니 치매 역시 노력하시면 좋아지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경우는 혈관성치매와 알츠하이머가 동시에 온 경우로 초기에 발견된 경우라 더 이상의 진행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치료에 따라 호전을 보일 수도 있는 단계라고 하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사의 진단을 받은 아버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으신 듯했습니다. 단 한번도 당신의 건강을 의심해 본 일이 없으신 분이니 스스로 자신이 치매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더욱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고맙게도 당신의 질환을 받아들이시고 치료에 적극 임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병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치매 역시 본인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적극 받아들일 때 가장 높은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적극적인 아버지의 성격과 강한 의지력을 보건대 아버지는 분명 멋지게 치매와도 싸워 이기실수 있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덧붙이는 글 |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료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최소 1200만여명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2050년에는 3배에 가까운 3600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2005년에 35만명, 2015년에는 52만명의 치매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8.3%인 35만여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노령화를 볼 때 치매라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비용의 손실을 막기 위해 치매 예방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며,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의 인간적인 삶의 유지를 위해 노인수발보험 등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정책 시행을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치매의 원인(대한치매학회)

인간의 인지 기능들은 뇌가 담당하고있는데, 뇌세포들이 죽거나 기능이 떨어지면서 치매가 나타납니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치료 가능한 치매의 원인으로는 뇌 속에 물이 고이는 뇌수종, 갑상선 기능저하증, 뇌막염, 경막하 혈종, 약물중독, 우울증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체 치매의 약 15%정도 차지합니다.

한편 적극적인 치료로 좋아질 수 있는 치매에는 혈관이 터지거나 막혀 생기는 혈관성치매, 알쯔하이머병, 알코올성 치매 등이 있습니다. 한편 광우병과 같은 뇌염이나 픽병등은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치매의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은 알쯔하이머병과 혈관성치매입니다. 이들은 전체 치매의 약 75%정도를 차지하고 우리나라에는 알쯔하이머병이 모든 치매 환자의 반 정도에서 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혈관성 치매는 두 번째로 중요한 원인이 되며 이것은 여러 번에 걸쳐 혈관이 막히거나 또는 한번이라도 뇌의 특정 부분에 혈액 공급이 저하됨으로서 발생되는 것입니다
  
☞ 치매가족회의 치매의 진단표 바로가기(치매가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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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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