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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이 구입한 '크리스마스 실'. 매년 이맘때면 벌어지는 '실 강매 논란'에 학생, 교사, 대한결핵협회 모두 상처를 받는다.
ⓒ 김귀현
"실(seal)이요? 선생님이 사라고 해서 샀죠. 사고 싶어서 사는 사람이 있었나요?"

회사원 박중일(30)씨는 매년 이맘때쯤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실에 대해 '강매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실에 대해 지닌 기억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강매 논란은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크리스마스 실'은 결핵 퇴치기금을 모으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크리스마스 전후 발행하는 증표로 1904년 덴마크의 우체국에서 처음 판매했다. 국내에서는 1932년 처음 발행되었고,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설되면서 본격적으로 발행됐다. 2006년 현재 한 장당 300원, 1세트(10장)에 3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대한결핵협회는 크리스마스 실의 69%를 학교로 보내며 나머지는 공공기관, 우체국, 금융기관 등으로 보낸다. 대한결핵협회의 2006년 실 판매를 통한 모금 목표액은 66억원. 대한결핵협회는 모금액이 모두 결핵퇴치 사업에 쓰인다고 밝혔다(60%는 결핵 연구 지원과 검진 사업, 25%는 환자 지원, 15%는 결핵 예방 홍보 활동).

취지는 좋지만 '크리스마스 실'은 '선생님이 학생에게 강매한다'는 이유로 매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최근에도 전국의 학교에서 '강제로 구매했다'는 학생들이 속출해 일선 교사는 물론 발행처인 대한결핵협회까지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다.

'실 사면 상점(賞點) 줄게'... "이거 강매 맞죠?"

기자는 '실을 강제로 샀다'는 수원 A중학교에 다니는 2학년 김아무개(14)양의 제보를 받고 김양을 만나 보았다. 김양은 크리스마스 실을 사기 싫었는데 억지로 샀다고 얘기 했다. 사기 싫다면서 왜 샀는지 물으니, 김양은 '상점' 때문이라고 답했다.

"학교에 벌점이 있고 상점이 있어요. 벌점은 수업시간에 떠들 때, 뛰어다닐 때, 복도에서 신발 신고 다닐 때, 수업태도 불량할 때 받아요. 벌점이 30점 쌓이면 수업도 못 듣고 학교를 돌아다니며 청소해야 되는데, 이거 진짜 힘들어요. 상점은, 그냥 선생님에게 잘 보이면 되요."

상점이 많으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 묻자, 김양은 "상점이 있으면 벌점을 없앨 수 있어요"하고 말했다. 결국 김양은 그동안 받은 벌점을 없애기 위해 실을 산 것. "실을 왜 판매하고 왜 사는 것인지 알고 있느냐"고 묻자 김양은 "아뇨, 모르죠"하고 답했다.

김양은 자기 이외에도 상점을 받아 벌점을 없애기 위해, 벌점이 있는 친구들은 거의 다 실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팔린 실이 김양의 반에서만 100여장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강매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니 김양은 "사고 싶지 않은데 산 거니까, 이거 강매 맞죠?"하고 답했다.

▲ 대한결핵협회 자유게시판에 '실 강매'를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 대한결핵협회
의정부의 B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아무개(16)군도 '강매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께서 실 살 사람 손을 들라고 하셨어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1분단 모두 내일까지 3000원씩 가져와'라고 하셨어요."

다른 곳에서도 강매 사례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강매하는 교사들뿐 아니라 발행처인 대한결핵협회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결핵협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불만의 글들이 쇄도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한 네티즌은 '용의검사를 했는데 회색양말을 신었다고 실을 사게 했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고등학생은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는 애들에게 실을 사게 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대학생 이대환(25)씨는 "실을 산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며 그 후 실이나 결핵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못했다"고 말하고 "학생들에게 결핵을 올바로 알리고자 학교모금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살 때도 반강제로 사고 졸업해서는 금세 잊히니 실효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하고 의견을 밝혔다.

'강매 논란'의 중심에 선 일선 교사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교사들은 대한결핵협회 게시판에 실 판매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몇 년째 실을 강매하고 있는 교사입니다'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팔기는 해야겠는데 사기는 싫어하는 아이들을 꾀어도 보고 권유도 해보고 하다하다 지쳐 지각하면 실 몇 장, 청소 대신 몇 장 이런 식으로 올해는 방법을 바꿔보았습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아 결국은 제가 모자란 금액을 채워 넣어야 했습니다'하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결핵협회 홈페이지에는 팔리지 않은 실은 반송을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강매까지 하면서 다 팔 필요가 없다는 것. 하지만 일선 교사들은 '반송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교사와 결핵협회 측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두 당사자들의 의견을 가상토론 형식으로 꾸며 보았다. 가상토론 참가자는 수원의 한 중학교에 재직 중인 현직교사와 대한결핵협회 홍보과 관계자. 모두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결핵협회 "반드시 반송해 달라"... 교사 "반송 힘들다"

▲ 매년 11월이면 '크리스마스 실' 문제로 각 학교에서 골머리를 앓는다.
ⓒ 김귀현
대한결핵협회(아래 결): "실 판매 때문에 선생님들께서 중간에서 고생 많이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학교에 강매하지 않을 것을 부탁드리고, 팔리지 않는 분량은 반드시 반송해달라고 말씀드린다."

현직 교사(아래 교): "이맘때면 교사 1인당 약 80~100장씩의 실이 할당되는데, 이건 기왕이면 다 파는 것이 좋다. 반송 말씀을 하셨는데, 좋은 취지에서 하는 건데 반송한다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실 판매의 공익성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치 못한 무능한 교사로 낙인찍힌다. 결국 팔고 남은 30장은 내 돈을 주고 구입했다."

결: "어려움이 많으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절대 강제로 판매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결핵 협회와 선생님들 모두 욕을 먹는다. 미판매분은 전량 반송을 받으니, 개인적으로라도 협회 측에 반송을 요구하면 조치를 취하겠다. 그리고 우리도 강제적이 아닌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 노력하겠다."

교: "말씀하셨듯이 자발적 모금이 중요하다. 실 판매를 통한 모금 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학생들이 강매라고 느끼는 부분도 많다."

결: "우리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현재 결핵 홍보 동영상(DVD) 1만개를 실과 함께 배포하였다. 여기에는 결핵의 위험성과, 모금액이 어떻게 쓰여 지는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홍보 영상으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겠다."

교: "학교에서 실을 판매하는 목적은 결핵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결핵을 예방하는 데 있다. 실과 함께 동영상을 보여준다면 교육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스티커 형태의 실은 문제가 좀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편지를 자주 쓰지 않다보니 실의 효용성도 떨어진다. 일례로 우리 반에서는 실을 산 아이들이 자기 책상이나 벽에 아무렇게나 붙여 놓더라."

결: "동감한다. 현재 종이형식의 실을 통한 모금 이외의 다른 모금 방식을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다. 향후에는 실을 이용하여 물품을 살 수 있는 쇼핑몰을 개발하고, 모바일 실도 발행할 예정이다.

11월 20일부터 모바일 서비스를 실시하고, 쇼핑몰도 연다. 모바일 서비스 방식은 실을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장당 500원이다. 쇼핑몰에선 실을 이용해 물품을 살 수 있다. 실 도안이 새겨진 교통카드와 티셔츠 등을 판매할 계획이다.

또한 12월 7일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이메일에 실을 붙여 보내는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다. 결핵 예방 홍보 행사의 일환이며 이용료는 받지 않는다."

교: "강매 논란 때문에 우리 교사들도 이맘때면 마음고생이 심하다. 결핵협회엔 강매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결: "실 판매 사업은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부의 방편이다. 실이 처음 나왔을 때는 기능성도 높았다. 크리스마스 전후에 사람들이 편지를 많이 보내기 때문에 자발적인 모금(구매)도 많았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우편물 이용이 줄면서 기능성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강매 논란이 더욱 불거진 것 같다. 이제 기능적 측면을 고민하기보다는 '사랑의 열매' 같은 성금을 냈다는 증표 형식의 실이 되도록 홍보할 생각이다."

다시 찾아온 결핵의 공포
"실 판매액은 예방활동에 쓰인다"

▲ 한국의 결핵 사망률은 미국과 일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 대한결핵협회
경제성장과 함께 사라진 질병으로 간주되던 결핵이 최근 학생들을 중심으로 집단 발생해 결핵 예방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지난 9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결핵검사를 한 결과 1학년 272명 중 18명이 결핵에 감염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지난해 11월에는 안산의 한 고교에서만 46명이 결핵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었다.

국제보건기구의 통계 자료(2003년)에 따르면, 한국에서 10만명 당 결핵 발병자수는 87명으로 미국의 5명, 일본의 31명보다 훨씬 높다. 10만명 당 결핵 사망자 수도 10명으로 미국(0명), 일본(4명) 등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대한결핵협회측은 "결핵감염자가 최근 다시 증가함에 따라 결핵 예방 활동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 김귀현

덧붙이는 글 | <제1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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