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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텍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에 계신 독자 여러분들께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심정이 어떤지를 생생히 전달해 드리기 위해 제가 현지의 어느 한국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조금 수정해 올립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에 계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한국에 계시는 여러분들도 현지에 사는 한인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아시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문맥에 영어가 뒤섞여 있는 점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필자 주>
이 글을 쓰는 것이 좋을까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저의 의견을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먼저 무엇보다 희생자 가족들과 부상자, VTech 학생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며 그들의 아픔이 하루라도 빨리 치유되기를 간곡히 기원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러셨겠지만 저도 처음 이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shocking 이라는 말 Brutal, unthinkable, unimaginable... 이라는 단어로도 과연 표현이 되겠는지요. 사건 다음날 CNN을 보는데 희생자의 클라스 메이트인 어느 여학생이 'I just can say Devil is real'이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한 번 shocking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범인이 나와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난 뒤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정상적이지 못한 개인이 저지른 문제요 인종이나 집단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여 사는 multicultural society 이고 그럼으로써 자연히 majority와 minority 로 나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누가 majority이고 누가 minority 인 것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minority 임을 부정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다른 많은 한국인들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사건이 majority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그건 단순히 개인의 문제이지 누구도 인종의 문제를 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minority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 우리가 minority 로 살아가는 한 벗겨낼 수 없는 족쇄요 십자가인 셈입니다.
다행히도 대부분 미국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인종 문제로 보지않고 매스컴도 그런 쪽으로 몰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 있는 한인 사회와 유학생들도 지혜롭게 잘 대처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고 언제나 돌출적이고 극단적인 그룹은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민감한 사안에서는 자그마한 돌출 사건 하나가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지난 LA 폭동의 단초는 흑인인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에게 두드려 맞는 것이 비디오에 찍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똥이 엉뚱하게 한국인들에게 튀어 삽시간에 LA 코리아타운이 불바다가 되는 참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건은 다름 아닌 한국계 학생이 직접 미국 사람들을 난사한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더라도 그들 마음에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10년째 미국에 살고 있지만 거리에 나가보면 여전히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의 눈에 보이는 한국 사람은 더 그 사람이 그 사람같아 보일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볼 때 매스컴에 비치는 광기어린 조승희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이지 않는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더라고 만약 학교에서 미성숙한 미국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에게 손가락질 하며 집단 폭행을 하거나 린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 어떻게 보장 할 것이며 그런 뒤 만약 한국 학생들이 다시 보복을 가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지금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과민반응이다' 라는 것을 말할 때가 아니라 희생자들을 위해 자숙하고 애도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책임의식을 느끼며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현지 언론을 통해서 보도가 되었지만 각종 한인 행사들이 취소되고 추모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 1~2 주가 고비라고 생각합니다. 한 2주만 무사히 넘기면 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극도로 조심하고 자제해야 할 때입니다. 각종 행사는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며 다른 인종이나 그룹들을 자극할 수 있는 단체 모임이나 심지어 운동모임 같은 것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이 사건이 더 큰 폭력이나 분열을 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 사건은 정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의 약점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고쳐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본다면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normal 하지 못한 한 개인을 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 비극적인 사건으로 결론나기 전에 조치하지 못한 학교 당국의 문제, 총기에 대한 허술한 규제 등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사회의 그런 문제들을 지적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문제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싫든 좋든 조승희는 이 땅에 살아가는 한국인의 한 사람이요 우리의 형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가 시민권을 가지지 못했든 영주권자이든, 유학생이든 교포이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는 여러분과 나와 같이 '미국에 사는 한국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삶 가운데 있었던 누군가가, 정말 그를 사랑으로 대했다면, 정말 그를 위해 진심으로 해결 방법을 찾았다면 오늘날의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나이 들어 유학생으로 와서 또 부족한 영어로 직장생활을 하며 정말 힘들었고 심지어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비단 저 혼자만의 상황이 아니라 누구나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이민자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시련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시련을 이겨내 갑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겨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는 연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대 생활이 힘들어도 대부분 사람들이 견디어내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탈영, 총기 사고를 내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문제는 견디는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는 이런 특별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정말 우리는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고 제2, 제3의 조승희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먼저 혹 ‘내 자녀가, 내 조카가, 내 룸메이트가, 내 친구가, 내가 아는 누구인가가 그런 사람이 아닌가’ 돌아보고 그들에게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고독과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며 남몰래 세상에 대한 증오를 키우며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 제가 반성하고 깨닫는 것은 우리의 삶의 너무나 이기적이었다는 것입니다. 9/11이 일어났을 때, 물론 이 때는 제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지만 그 비극에 충격은 받았으나 강 건너 불 보듯 남의 일로 생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직접적인 내 아픔이요 내 삶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사건의 중심에 나와 같은 한국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내 일처럼 생각했는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LA 폭동 때 그 불똥이 한인들에게 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돈만 벌고 지역사회에 무관심한 한인들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우리만을 위해 산다면 우리는 고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지목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얼마나 이 땅에서 사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으며 미국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민은 물론 감히 유학생 여러분들께도, 물론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이 땅에서 공부하는데 감사하며 조금 더 이 땅에 대한 관심을 가져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또 이 사건이 우리 조국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도 생각해봅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조기 유학 열풍이 끊이지 않고 미국으로 향한 이민 행렬이 여전히 줄을 잇고 있지만 과연 진정으로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더 나은 교육을 위한 것인지 정말 진지하게 생각보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 살며 정서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집단은 초중고 때 미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인으로 자리 잡기도 전에 미국에 온 이들은 살아가며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가족들이 함께 와서도 바쁜 부모들의 삶에서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하물며 소위 기러기 가족으로 떨어져 있는 자녀들은 어떻겠습니까? 부디 우리 한국에 계신 부모들은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닌 가족이 함께 살며 부모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는 것이란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일어나지 말았으면 너무도 좋았겠지만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깨닫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지금은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부상당한 사람들과 가족들, 학생들을 위로할 때입니다. 부디 이 사건이 또 다른 폭력이나 분열을 낳지 않기를 바라며 이 아픔을 통해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우리의 연약함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글로 인해 불편함을 느낄 분들에게는 죄송함을 표하며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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