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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병상련'의 의미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 계기도 얼마 되지 않는다.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것 같고, '남의 죽음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의 의미에만 충실하게 반응하던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이 나였는데 오늘은 참 많이 아프다.

"언니, 나 또 사고 쳤어."

요즘 건강은 어떤지 궁금해져서 문득 수화기를 들게 했던 후배가 농담처럼 한 마디 툭 던졌다. 건강도 안 좋은 친구가 또 무슨 일을 벌여서 저딴 소리는 하는가? 되짚어 물으려던 참인데 내 말문을 막듯 후배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언니, 얼마 전에 CT를 찍어 봤더니 폐에서 간으로 뻗쳤다는구먼…."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한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리는 것 같았다. 중병을 앓으면서도 어찌나 씩씩하고 유쾌한지 이 친구는 나 같은 '좀팽이'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 같아 존경과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게 했던 후배였다. 그런 후배의 세 번째 암 전이 소식.

같은 병을 먼저 앓았으면서도 무사히 '십 년'을 견딘 나를 보며 저도 나를 표본 삼아 그렇게 일어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후배였기에 특히 믿는 구석도 많았다. 언뜻 보면 생사의 기로에 선 중병환자라는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일상을 잘 다스리던 사람이라 평상심을 저렇게 유지한다면 그깟 병마쯤에 꺾이지는 않겠지, 애써 불안을 떨어내기도 했다.

"한 번 태어나면 언젠가 죽기 마련인데", "인간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는 걸 누가 모르나?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도 '생로병사'의 필연 법칙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진리 또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아직 젊은 우리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남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내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코앞에 닥친 내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절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 중간 중간 히히거리며 웃기도 하는 후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저렇게 웃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낮을 공포 속에서 떨어야만 했을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그렇게 생의 집착을 내려놓기까지 후배가 감당했어야만 했던 절망과 분노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 목소리를 들으니까 괜히 눈물이 나네…."

조만간 얼굴이라도 봐야 하겠지만 후배와 전화를 끊은 다음부터 몸과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음을 둘 데가 없을 정도로 불안하면서 온몸 여기저기 고장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명치끝이 더부룩하고 소화도 되지 않으면서 억지로 한 술 떠넘기면 또 장은 장대로 불편하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흡사 갱년기 우울증처럼 푹 가라앉았다가 뜬금없이 눈물도 찔찔 흘릴 만큼 마음도 잡을 수가 없었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나 생존해 계시는 친정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올랐다. 평소엔 연세를 의식하지 못할 만큼 생생했던 어른들이 가까운 친구나 형제가 세상을 떴을 때 그 충격으로 갑자기 서너 살은 더 잡순 것 같이 팍 늙어버리시지 않던가.

동병상련의 아픔. 건강한 당신들은 못 느끼겠지만 중병과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우'만큼 동병상련의 아픔을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없다. 설사 마의 '5년'을 넘긴 환자조차 재발의 두려움을 떨치기가 쉽지 않을 지경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유명 인사들의 사망 소식. 만약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면 무의식적으로 발병 연도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암 환자들의 습관이다. 완치판정을 받아 조금 마음을 놓았던 사람이라도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의 사망원인이 10여 년 만에 재발한 암 때문이라면 다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마지막 화두. 죽음을 의연하게 맞으며 품위 있게 세상과 작별하고 싶다는 소망이 내 인생의 마지막 숙제인데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과 직면하면 여전히 아프다. 동병상련의 그 아픔에 익숙해질 날은 언제인가.


태그:#사는 이야기,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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