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쏟아지던 폭우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일터 뒤편의 숲에 가보았다. 근래들어 자연을 벗하지 못해 몸과 정신이 지칠대로 지쳐있어, 영양제와 만병통치약이 숨어있는 숲으로 향했다. 학교 주변 인근 주민과 학생들이 가벼운 산행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는 말을, 함께 일하는 연구조교에게 언뜻 들은 적도 있었다. 답답한 공기를 날려준 맑은 비바람이 머물다 간 숲은 눈부신 초록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뭇잎 아래서 비를 피하던 풀벌레들은 비가 그치자 제 짝을 찾기 위해 일제히 노래를 불러댔다. 알록달록하게 변하기 시작한 나뭇잎도 보였고, 가지를 흔들어대는 바람에 알밤을 드러낸 밤송이가 떨어져 있기도 했다. 그런데 밤나무의 씨앗들은 오솔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빼앗긴 채였다. 그리도 요심이 많은지 다람쥐가 먹을 만한 작은 알맹이 조차 남겨놓지 않았다. 그렇게 초록 생명이 넘치는 숲의 건강한 기운을 받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나아갈 때, 사람들의 발길로 넓혀지고 파헤쳐지고 있는 등산로를 뒤돌아보게 되었다. 속살이 드러난 오솔길은 너무나 황폐했다. 그 모습에 갑자기 '이렇게 아름답고 조용한 숲 속의 평화를 해치는 것은 무엇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나'라는 존재, 인간이란 답이 나왔다. 그래서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숲이 건네준 선물을 받아안고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며 숲에서 빠져나왔다. 이로써 숲은 잠시동안, 더 없이 평화로울 수 있을테지! 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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