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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 모여 추석을 재미 있게 보냈다. 어머님이 바리바리 싸주시는 선물꾸러미를 보니 하늘을 날아갈 듯했다. 너무 고조된 마음이 접촉 사고를 불렀다. 잘못은 상대방이 했지만 접촉사고에 100% 책임은 없는 것 아닌가? 피해가 크지 않아 각자가 책임지기로 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보니, 피해는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그리곤 열쇠로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열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물쇠를 채운 경첩이 파손되어 있었다. 우리집 현관 문은 철문이 아니라 나무재질이기 때문에 경첩을 사용한다.

"여보!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도둑이!"

급히 들어갔다. 한 눈에 보니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깨끗했다. 없어진 물건이 없다고 안심했다. 텔레비전에서 도둑이 들면 장농을 뒤지고,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만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런 흔적도 없는 방안을 살펴본 후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없어진 물건은 없어요. 괜히 걱정했어요."
"그래도 자세히 살펴봐야지요."

아내 눈은 달랐다.

"여보! 큰 일 났어요. 카드와 통장, 서류 가방이 없어어졌어요. 어떻게 해요?"
"뭐라고! 이거 큰 일났군.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지요. 113인가?"
"113이 아니라 112!"
아이들이 일제히 말했다.

경찰이 올 때까지 없어진 가방 속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카드 3개, 종이 통장 5 개, 전자 통장 1개, 아이들 통장 3개, 인터넷 뱅킹 보안카드 2개, 중요 문서 2개, 아이 셋 산모수첩, 헌혈증서 10개, 주민등록증, 골수기증 서류 등등. 집에서 가장 중요한 물품이 없어졌다. 가슴이 쿵쾅 거렸다. 현금은 집에 두지 않기 때문에 다행히 돈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경철조서를 처음 받았다. 하지만 이미 장농 손잡이와 문고리를 우리가 잡았기 때문에 범인 지문을 채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지문과 족적을 조사하면 범인을 쉽게 잡을 수도 있지만 잃어버린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한 범인을 잡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섣부른 행동이 이런 결과를 낳고 말았다.

카드사와 은행에 분실 신고를 했다. 추석 연휴라 신고를 받아 줄지 불안했지만 모든 카드사와 은행은 분실 신고를 받아 주었다. 추석 연휴에도 고객 관리 금융기관들은 철저하다는 것을 새삼느꼈다.

"안녕하세요, 카드를 분실했습니다. 통장을 분실했습니다. 보안카드를 분실했습니다."
"네 그렇습니까? 분실 신고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무엇보다 아이 셋의 산모 수첩 분실을 안타까워 했다. 카드와 통장은 분실 신고를 하고 다시 만들면 되지만 산모수첩은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7살, 9살, 10살까지 모든 접종과 병역을 기록한 것이라 찾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산모수첩을 아이들이 혼인을 하면 며느리와 사위에게 줄 것이라 했는데, 이제 그럴 수없다.

"여보! 산모 수첩만이라도 돌려 주면 좋겠어요. 아이들 과거가 다 들어 있는데, 얼마나 정성스럽게 수첩을 적었는데, 안타까워요."
"당신 마음은 알지만 이미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내를 위로했지만 아내가 얼마나 정성을 다하여 산모수첩을 적었는지 알기 때문에, 나 역시 카드와 통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내는 이런 말까지 했다.

"여보! 다른 것은 몰라도 오늘 밤에 도둑이 현관 앞에 산모수첩이라도 살짝 갖져다 놓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아내가 우습기도 했다. 산모수첩에 대한 아내의 애착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여보! 우리 현관문 철문으로 바꾸면 안 되요? 경첩을 달면 다시 뜯어내고 들어올 수 있잖아요."
"우리 집에 철문이 어울릴까?"

아내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허물어져가는 집에 현관문만 철문으로 한다고 도둑이 들지 않을까? 10층 20층 아파트, 도어락으로 된 현관문도 열고 들어가는 도둑인데 나무문과 경첩으로 된 자물쇠를 뜯고 들어 오기는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관문을 철문으로 교체할 수 없다. 다시 경첩을 사서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 이미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 애착을 가진다는 것은 헛된 공상일 수 있지만 우리집을 턴 도둑이여 제발 아내가 10년을 적은 산모수첩이라도 돌려 주오.

덧붙이는 글 | 우리가족의 특별한 추석 풍경 응모



태그:#추석연휴,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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