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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정상회담 자세 아주 좋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 곧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노 대통령이 북쪽에 끌려다니거나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지 않을까 싶어 남북정상회담이 갖는 긍정적 의미에 대한 기대보다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더 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것 자체가 노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을 북한 측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겠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북미수교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의 개최에 이용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응했으리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으로서는 이 회담에서 얻을 것이 별로 없는 상황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북쪽이 남북정상회담을 열자고 하는데 노 대통령이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흔히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과 관련하여 남쪽의 노 대통령이 북한쪽에 요청해서 열린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노 대통령 쪽이 요청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노 대통령 쪽이 요청한다고 해서 열릴 수 있는 회담이 아니고 이 회담은 전적으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원했기 때문에 열릴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으로서는 귀국보고에서 밝힌 대로 “평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운” 회담이었고, 이것을 노 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처럼 어려운 조건에서 갖게 된 남북정상회담이었는데도 노 대통령은 이 회담을 원만히 치룬 것 같아 대단히 다행스럽다. 자칫하면 임기 중 최대의 실정이 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남한의 대통령으로서 이 시기에 꼭 해야 할 일을 해서 의미있는 성과를 냈을 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일은 거의 하나도 하지 않은 것 같아 노 대통령의 지혜롭고 신중한 대처에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리라고 본다.

그러면 노 대통령이 어떤 자세로 이 회담에 임했기에 이런 성과를 거두었는지 그 자세와 정상회담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서 특기할 만한 부분만 밝혀두고자 한다.

우선 평양으로 떠나면서 밝힌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 아주 좋았다.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 운운하면서 자랑하거나 자신만만해 하는 자세가 아니고 차분하고도 겸손한 자세였었는데, 이런 자세를 갖기가 쉽지 않을 수 있는데 노 대통령이 이런 자세를 취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다음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루 더 연장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 노 대통령이 완곡하게 거절한 것도 아주 잘 한 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국가원수끼리의 정상회담을 하루 연장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다 북쪽이 회담을 하루 더 연장하자는데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기 쉬운 측면도 있어 그 제안을 거절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적절한 핑계를 대고 거절한 것은 아주 잘 할 일임이 틀림없다. 만약 그 제안을 노 대통령이 수용했더라면 그 부작용은 엄청나게 컸으리라는 점에서 천만 다행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북쪽과 1차 회담을 해보고서 “쉽지 않는 벽을 느낀다”는 말을 했는데, 노 대통령의 이런 자세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왜냐하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회담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이런 말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원수가 대외관계에서 자기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꼭 적합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긴 하나 남북관계의 경우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성과를 약화시키는 말은 일체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벽을 느낀다’고 말한 것은 대단히 잘 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무엇보다 잘 한 것은 정상회담 준비를 잘 한 것이었다. 이것은 8개항의 합의사항에서 잘 나타나는데 8개항의 합의사항은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서해북방한계선(NLL) 문제가 걸려 있는 서해문제와 관련하여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한 것과 베이징 올림픽 때 남북응원단이 경의선을 이용하기로 한 것은 대단히 잘한 일 같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이를 북미사이의 문제라거나 6자회담에서 다룰 문제로 간주할 뿐 남북사이의 문제로 취급해서 북한핵을 폐기할 것을 직접 요구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기는 하나 이미 그런 입장에서 6자회담을 진행하고 있는 마당에 지금 와서 북한을 향해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다소 뜬금없는 일일 수도 있어 공동선언에서 밝힌 대로 6자회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를 통해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고 한 것으로도 충분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즉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그냥 넘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 북한 핵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이 ‘한반도 평화’ 운운하면서 북한핵문제 이외의 문제만 다루면서 남북경협을 다루었다면 이것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되어 대단히 잘못된 회담이 되었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핵무기 보유는 일리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적도 있는 노 대통령이었기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들러리를 서기가 쉬웠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남북한 사이에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데 그것을 다 풀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갖거나 심지어 이번 회담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과욕이고 억지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한번 한다고 다 풀릴 일이 애당초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문제를 푸는 데 이런 회담이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귀국 보고 때 납북자문제, 국군포로문제 등을 제대로 풀지 못한 아쉬움을 언급한 것으로도 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입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의 목적은 관철되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전혀 아니다. 북한은 남북한 사이의 문제를 잘 풀어가는 모습을 취함으로써 북한의 목적이었던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북미수교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이런 목적을 관철했다고 해서 남한이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남한의 입장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하고 남북한 사이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할 뿐이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한의 ‘보수세력’이 확인했으면 하는 일을 한 가지 지적해두고자 한다. 이것은 보수세력만 알아야 할 일이 아니라 ‘진보세력’과 국민일반은 물론이고 노 대통령까지도 알아야 할 일이다. 무엇인가 하면 북한은 남한의 ‘북한 퍼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 퍼주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남북경협이 가장 중요한 북한 퍼주기일 텐데 북한은 남북경협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을 이번에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노 대통령이 북한 측에 대해 남북경협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북한 측에서 그것을 수용하지 않아 안타까웠다는 뜻을 피력했는데 이것은 북한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남북경협은 북한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일이고 또 그것이야말로 북한 인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그것은 북한의 정권과 체제의 유지에 대단히 위험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북한 퍼주기’를 비난하는 보수세력의 무지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노 대통령이 남북경협의 필요성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경협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한 것도 이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판단을 파악하지 못한 데서 나온 적절치 못한 일이었다. 남북경협을 확대하고 싶을수록 북한 측에 남북경협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북한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면 사고가 발생해서 더 지체되기 때문이다. 평화체제의 구축도 마찬가지다. 북한정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공세를 하면 북한은 남북사이의 긴장을 조성하는 일을 반드시 만들어내게 된다. 이번에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무리하게 합의한 것이 많다 싶으면 남북사이의 긴장을 조성하는 일을 야기해서 합의사항의 이행을 늦추거나 파기하려고 할 것이다. 남한의 지혜로운 대처가 있어야 한다.

끝으로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김정일 위원장이 대남전략 내지 대외전략을 ‘대전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정확히 알 필요가 있겠다.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이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나온 것은 ‘개혁과 개방’ 또는 남북관계에서 전략을 대전환했다기보다 북미수교를 이루어 북한의 핵무기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그것을 통해 정권과 체제를 유지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려 하고 있다. 중국이 이를 싫어할 것이 분명한데 그렇더라도 북한은 그런 방향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한반도문제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이번에 있은 공동선언에서 정전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종전선언을 함에 있어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만나서 추진하자고 했는데, 이것은 한반도 종전선언에 중국의 참여를 배제하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고, 이런 뜻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를 반영한 것일 것이다. 즉 북한은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중국을 배제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만큼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강하게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강하게 권유했는데, 김 위원장은 청취하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나, 이것은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바라는 김 위원장의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목적이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기대한 데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아무튼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아주 성공적으로 수행했는데, 그 지혜와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덧붙이는 글 | 장기표 기자는 신문명새정치연대 대표이며 17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입니다. 이 글은 장기표시사논평(www.weldom.or.kr)에 올린 글입니다


태그:#노대통령, #김정일, #정상회담,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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