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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7월 26일  뜨거운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 야구를 하였다. 정말 재미있는 경기였다. 그런데 한 순간 친구가 뒤에서 발을 걸어 나를 넘어지게 하였다. 넘어지면서 팔을 짚었는데 골절되었다. 워낙 시골이라 병원에 가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고통이 너무 심하여 몸무게가 3kg이나 빠졌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팔을 뒤틀면서 골절된 부분을 끼어 맞추었다. 무려 25년 전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 골절 고통은 사라졌다.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완디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읽으면서 25년 전 골절 사건이 기억났다.

 

과연 의사는 무엇일까? 우선 그들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들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의사만큼 고귀한 직업도 없다. 사람이 만든 직업 중 '생명'을 다루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다. 그러므로 의학과 의사는 환자를 대할 때마다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의학와 의사에 대한 이런 의식은 현대의학과 의사를 '절대'의 개념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의사는 전지전능한 '신'인가? 아니 의사는 사람이기에 오류의 가능성은 있더라도 '의학'은 오류가 없는 것인가?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은 '오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우리는 의학을 지식과 처치가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지식, 불확실한 정보,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들의 모험이며, 목숨을 건 줄타기이다. 우리 일에는 과학이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또 습관과 직감, 때로는 단순한 낡은 추측도 있다. 우리가 아는 것과 우리가 목표하는 것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본문16쪽)

 

의사는 누구인가? 사람이다. 의사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가 행하는 모든 진단과 진료, 치료 과정에는 오류가능성이 항상 있다. 그는 어떤 환자라도 고칠 수 있는 초월자가 아니다. 자기의 의사로서 능력을 비하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를 찾은 환자의 병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일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할 수 없다. 설령 그를 완전히 치료할 수 없을지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그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의과 의사는 부단한 노력과 훈련을 통하여 조금씩 진보한다. 인간의 모든 학문은 노력과 훈련을 통하여 진보한다. 의사와 의학이 피아노와 피아니스트, 성악과 성악가가 다른 이유는 단 하나, 의사와 의학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직업이라는 차이일 뿐이다. 그 차이는 엄청나지만. 이런 훈련과 노력 과정에서 의료사고는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가완디가 말하는 '의료사고'의 예를 보자.

 

"일반외과의 커다란 금속제 도구를 환자복부에 남겨둔 채 닫아서 내장과 방광벽이 찢어진 경우, 암 전문 외과의가 엉뚱한 유방의 생검을 하는 바람에 암 진단이 몇 달이나 늦어진 경우,  심장 전문 외과의가 심장판막수술을 중 작지만 중요한 단계를 건너뛰는 바람에 환자가 사망한 경우."(본문 79쪽)

 

가완디의 예를 읽어면서 2006년 11월 큰 형님이 경운기 사고로 겪은 일이 생각났다. 응급실에 실려가 X-선, CT촬영을 했는데도 환자는 고통을 호소했고, 의사들은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다음날에야 고통의 원인이 대장에 천공이 뚤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복부에는 이물질이 흘러나와 부패하고 있었다. 생명은 위급했다. 의사들의 첫 진단은 실수였고, 생명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첫 진단은 잘못했지만 그 후에 모든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가완디가 예로 들었던 의료사고는 무능력과 부도덕한 의사들이 범한 사고가 아니라, 최고의 의과 의사들이 범한 사고였다. 그들은 실수하였고, 어떤 경우는 환자의 생명을 잃게 하였다. 고의는 아니지만 사고로 생명을 잃게 하였다. 최고였던 그들이. 여기서 한 가지. 의사와 의학, 환자들이 깨달아야 할 일이 있다.

 

인정과 신뢰다. 의사는 자신을 절대 믿어야 하지만 언제든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겸손이 필요하다. 환자는 의사가 100% 완벽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최선을 다하여 자기 가족과 자신을 치료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신뢰해야 한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은 의사와 의학의 실수를 발설하여 환자가 불신하도록 저술하지 않았다. 의사의 불완전성을 알림으로써 더 나은 의학의 진보를 통하여 모든 생명을 실수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기를 위함이다. 우리나라도 의사와 환자가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고 신뢰하는 의료 문화가 꽃피우기를 원한다.

덧붙이는 글 |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아툴 가완디 저/김미화 역 | 소소 |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동녘사이언스(2003)


태그:#현대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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