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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마치고 두오모에 갔다.

 

소나기가 지나가 상쾌해진 광장에서 건축물을 감상했다. 두오모는 분홍색, 초록색 그리고 하얀 색의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밝고 경쾌한 인상을 줬다. 이 흔하지 않은 색감의 대리석은 토스카나 지방 특유의 것이라고 하는데, 때 마침 맑게 갠 하늘과 색이 잘 어울렸다.

 

외장은 조각상 먼저 눈에 띄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제자의 상이다. 조각상이 서 있는 좁은 공간 천장의 배색은 피렌체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밤하늘의 별이 떠 있는 것처럼 표현한 짙은 남색 바탕에 금색 별의 배색이었는데, 이곳의 상징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각상 못지 않게 화려한 부조들이 눈에 띄었다. 성당에 조각상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어서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부조가 많다는 것은 흔하지 않다. 학창시절 미술 시험을 위해 외웠던 개념인 '부조'를 그때부터 주목해서 보게 됐다. '부조'에 초점을 맞춰서 보니 도시 곳곳에서도 산재해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오모의 조각과 부조는 한 사람이 하기에 작업량이 많아 보였다. 혼자 할 수 없을 것 같다. 조각하는 사람, 건축 설계하는 사람, 벽화 그리는 사람 등등 각각 분야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분업해서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큰 건물을 한 사람이 전체를 다 설계하고, 짓고, 세세하게 조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문 하나 만드는데도 예술가의 한 생을 바쳤다고 한다. 종탑도 조토가 만들었기 때문에 '조토의 종탑'이라고 따로 이름을 붙여줬다고 하는데, 대성당 하나 짓는 데에는 한두 명의 천재가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다수의 천재들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물들은 천재들이 각자의 재능을 살려 만든 거대한 공동작품이다.

 

거꾸로 이런 대성당에 참여했기 때문에 작품과 함께 후세에 이름이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건축물이 눈 앞에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 회자 되는 것이고, 후손인 우리들에게까지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그것은 '전설'이 돼가고 있었다.

 

외장의 화려함과 대조적으로 내장은 깔끔했다. 전에 봤던 성베드로 성당의 화려함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천정화가 별로 없어서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돔을 제외하고는 천정화는 별로 없었다. 돔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의심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성당의 멋이 꼭 화려함에 있는 것만은 아니기에 전반적으로 심플한 것도 보기 좋았다. 바티칸보다 좀 덜 화려하다 해도, 여전히 굉장했다.

 

성당 안에서 돔 천장을 올려다 봤을 때 오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오모 꼭대기는 올라가지 않았다. 어쩐지 의지가 발동되지 않았다. 바티칸에서의 여운이 아직 생생했다. 여운이 아직 남았던 것도 있었지만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가면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좀 더 높은 곳에서 보는 쪽을 선택했다. 성당 안에 관람객이 많아서 일행을 놓쳤는데 나는 꼭대기에 오르지 않을 계획이어서 먼저 광장으로 나와 일행을 기다렸다.

 

▲ 피렌체 두오모 시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피렌체의 대표적인 성당이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 건축물은 종교와 무관하게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낸다.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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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앞의 잡상인, 비둘기 떼처럼 날아간다

 

두오모 광장은 수많은 인파와 그 인파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만드는 활기로 가득했다. 이탈리아인처럼 보이는 상인은 없었다. 상품은 상인들의 외모만큼 다양했다. 광장을 관리하는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 했는지 경찰이나 단속반이 출동하면 도망다녀야 했다.

 

그들은 단속이 나올라치면, 관광객들은 인지할 수도 없는 정도의 먼 거리에 있는 단속반을 인지하고, 상품을 신속하게 챙겨서 유유히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비둘기처럼 뒤뚱뒤뚱 하다가도 때가 되면 날렵하게 날아오른다. 상품을 치우는 솜씨가 날짐승처럼 날렵하다. 위협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동물적으로 발달 돼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려고 시도했으나 좋은 장면은 좀처럼 담을 수가 없었다. 단속반을 감지하는 나의 감각이 그들보다 둔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물건을 치우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단속반이 출동한 줄 알았고 그제서야 캠코더의 전원을 켰다. 캠코더의 전원을 켜두자니 단속반이 언제 올 줄 몰랐고, 배터리는 한정적이어서 꺼둬야 했다. LCD에 'Handycam'이라는 로고가 나오는 동안 상황은 이미 종료되기 일쑤였다.

 

▲ 두오모 광장에서의 오후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의 숨바꼭질이 매일 같이 벌어지는 곳.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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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인들은 언뜻 보더라도 이주민(혹은 그 후손)들이 많았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주 노동자의 삶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엿 볼 수 있었다. 유럽에서 외국인이 돈을 버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타국에서 이주민으로 사는 것 또한 굉장히 고단한 일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또 유럽사회가 외국인에게 쉽게 일자리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국은 국내로 유입되어오는 외국인 인력에 대해서 개방적인 편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자본가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고용되는 사람으로서 내 나라만한 곳은 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점점 더 해외로 눈을 돌려야만 할 대한민국의 청년으로서 내 나라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 앞날이 캄캄해진다. 절이 싫은 중이야 떠나면 되지만 쉽게 떠날 수 없는 주지는 절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막막하다. 달인에 가까운 그들의 기술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뒤돌아서 생각해 보면 결코 재미있는 정황만은 아니었다.

 

광장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체되자 아무래도 내가 늦게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자리를 옮겼다. 한참 골목길을 혼자 걷다가 우선 민박집으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였다. 유럽에서는 아침식사와 저녁 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집들이 많은데 내가 숙박하던 곳도 마찬가지였다. 한식을 먹을 수 있고 식비를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적극적으로 귀가(?)해서 식사를 하고 다시 구경을 나가곤 했다.

 

민박에서 식사를 하면 같이 여행하는 한국사람들과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호스텔에서 만나는 외국인들보다 말이 잘 통하기 때문에 편하고, 더 많은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다.

 

함께 식사를 하던 사람들과 미켈란젤로 광장에 가기로 했다. 쉴 사람 빼고 다 같이 길을 나섰다. 혼자 갔더라면 많이 헤맸겠지만 이미 다녀온 사람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피렌체에 있는 동안 매일 올라갈 생각이라고 했다.


태그:#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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