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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대지진으로 인한 부상자.
 쓰촨 대지진으로 인한 부상자.
ⓒ 쑨씽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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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시각, 쓰촨성 지진 발생 현장에 취재 나가 있는 한 중국 기자 친구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중국 친구] "너무 비참해서 뭐라고 말도 안 나와.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아주 기막힌 기적이거나 우연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야."
[기자] "지금 상황이 어때?"
[중국 친구] "곳곳에서 시신 썩는 냄새로 온 신경이 다 마비될 지경이야. 많은 사람들이 구토를 밥 먹듯이 하고 있고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주검들이 지천에 깔려 있어.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야."
[기자] "그래도 상황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고 있는 거지?"
[중국 친구] "글쎄… 아직도 구조 인력이 들어가지도 못한 지역이 아주 많아. 특히 산간 지역엔 제대로 접근조차 못하고 있어. 산간 지역 주민들은 구조를 기다리다, 굶어죽어도 예전에 굶어 죽었을 거야. 생각보다 상황이 아주 많이 안 좋아. 지금은 구조보다는 주검 수습을 하는 게 대부분이고 무너진 건물 잔해들을 치우는 데 집중하고 있어."
[기자] "주민들 분위기는 어때?"
[중국 친구] "분노와 체념이 공존하는 분위기라고 할까. 학교에서 공부하던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분노는 지금 극에 달해 있어. 하지만 분노한다고 해서 달리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체념을 하고 있어. 그들에게 다가가서 섣불리 위로하는 말도 못하겠어. 그 얼굴에서 느껴지는 표정들이 너무 비극적이거든."

쓰촨 대지진 현장 수습 모습.
 쓰촨 대지진 현장 수습 모습.
ⓒ 쑨씽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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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국민장' 후 본격 복구 시작... 현장에선 구호물자 둘러싼 갈등도

5월 23일 현재, 공식적인 사망자 숫자만 이미 5만5천명을 넘어섰다. 실종자는 약 3만명으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현지에 나가 있는 중국 취재 기자는 "이러한 통계는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일뿐 실질적인 조난자 수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 지역이 거의 한국 면적에 필적할 만큼 아주 광대하기 때문에 재난 피해 통계를 정확히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지진 발생 후 열흘 이상이 지난 지금, 중국 정부는 사실상 구조 작업을 중단하고 주검 수습, 잔해 처리 등 재해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는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범국민 애도 기간을 정해 지진 조난자들을 위한 사실상의 '국민장'을 치른 바 있다. 22일 다시 쓰촨성 지진 현장을 방문한 원자바오 국무총리가 "구조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앞으로는 재건 작업에 더 중점을 두라"는 지시를 한 것에서도 본격적인 재해 수습 국면으로 전환했음을 알 수 있다.

지진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쓰촨성 베이촨현의 경우 지난 21일 모든 마을이 봉쇄됐고, 방역 인원을 제외한 어느 누구의 출입도 금지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진앙지인 원촨현보다 더 큰 피해를 낸 베이촨현은 지진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후세까지 길이 역사의 교훈장으로 남겨질 예정이라고 한다.

쓰촨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건물.
 쓰촨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건물.
ⓒ 쑨씽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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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 들어 지진 피해 지역 곳곳에서는 구호물자 배분을 둘러싸고 재해 지역 주민들과 관리, 경찰들 사이에 심심찮은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각지에서 보내진 구호물자가 중간에서 사라지거나, 탐관오리들과 상인들이 결탁해 물자를 빼돌려 일반 가게에서 버젓이 팔리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면서 재해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다고 한다.

23일자 홍콩 일간 <명보>도 관련 보도를 통해 일부 지역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재해민들과 경찰들 사이에 유혈 충돌이 빚어졌다고 전했다. 22일자 중국 일간 <남방도시보>에서도 관련 기사를 통해, 직접적인 지진 피해 지역이 아닌 쓰촨성 청두에서 재해민용 천막이 일반 시민들 사이에 버젓이 유통되거나 사용되고 있어서 많은 분노한 시민들이 해당 부서에 격렬한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이와 관련한 민심 이반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현재 중국 해당 부처에서는 재해 현장에 인력을 급파해 구호물자 배분 관련 문제를 조사 중이다.

지진이 만들어낸 최대의 영웅, 원자바오... '공산당=인자한 부모' 논리 대변

5월 12일 지진이 발생한 후 중국 CCTV를 비롯해 각종 방송과 언론 매체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신속한 지진 속보 체제로 전환했다. 중국 언론은 24시간 지진 관련 실시간 보도를 해서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투명한 보도를 했다는 칭송을 받았다. 아울러 지진 관련 보도를 통해 현장에서 수많은 감동 뉴스들과 영웅들을 발굴해 많은 중국인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애국심을 모아내는 데 성공했다.

'부정적인 뉴스는 최대한 축소해서 보도한다'는 중국 언론 보도의 암묵적인 규율을 깬 이번 지진 보도는 그동안 티베트 사태 등으로 서방 세계와 대립해온 중국에 적지 않은 성과들을 안겨주었다. 국제 사회에 중국 지진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티베트 사태와 관련해 올림픽 개폐막식 참석을 보이콧할 움직임을 보이던 서구 사회의 여론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들끓던 민족주의 열풍을 재난 앞에 하나 되는 '중화민족'이라는 숙연한 '애국심'으로 모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자료 사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자료 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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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성공한 '영웅'은 바로 원자바오 총리.

베이징대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한 중국인은 "이번 지진 보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보도 논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모아낼 수 있는 감동 뉴스 만들기, 그리고 뇌봉(1940~1962, 22살에 요절한 인민해방군 병사로 이타적 삶의 화신으로 칭송되는 인물)과 같은 재난 현장의 영웅 만들기, 중앙정부와 공산당을 '눈물 흘리는 부모' 상으로 재현해 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중에서도 원자바오 총리의 활약상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원 총리는 그야말로 이번 재난 현장에서 '만들어진' 최대 영웅"이라며 원 총리가 이번 지진 보도 과정의 최대 '수혜자'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서는 "원 총리님, 사랑해요!"라는 글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고 "총리님, 감사합니다!"라는 글들로 도배되다시피 하는 곳도 있다. 지진 발생 후 현장에서 5일간 구조 작업을 지휘하면서 반백발이 된 원 총리의 초췌한 모습과 그의 분노, 눈물 등등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자주 언론의 머리기사로 오르면서 원 총리의 이미지는 급속도로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상세하게 전달된 원 총리의 이러한 행보는 바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인자한 부모상'을 재현해 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진으로 인해 폭발할 수도 있는 국민적 심리와 재해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원 총리의 이미지 덕분에 적지 않은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는 분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이번 중국 언론의 지진 보도는 전례 없는 보도의 투명성과 신속한 정보 전달을 통해 각종 악성 유언비어를 차단하고, 원자바오 총리 이미지를 이용한 중앙 정부 및 공산당에 대한 국민적 호감도 상승에 여러모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돈 내라 돈!"... 기부금 적게 낸 유명인들과 기업들, 여론의 뭇매 맞아

지진 발생 후 중국 사회에 불고 있는 또 하나의 애국 열풍은 바로 기부 운동이다. CCTV에서는 매일 각 분야별 유명인들과 기업인들의 기부금 기부 현황을 특별 방송 형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인터넷 등에서도 유명인들의 기부금 내역이 상세히 공개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기부한 유명인들의 경우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이들을 '좀스럽고 쩨쩨한' 사람들로 매도하는 경우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야오밍(자료 사진).
 야오밍(자료 사진).
ⓒ 휴스턴 로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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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뭇매를 맞은 유명인은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농구스타 야오밍이다. 그는 이번에 총 7만 달러를 기부했는데, 중국 여론은 그가 버는 돈에 비해 턱없이 적은 액수를 기부했다며 그에게 뭇매를 퍼부었다. 이밖에도 유명 연예인이나 아나운서, 스포츠 스타, 그리고 유명기업인들도 그들의 기부 액수에 따라 여론의 환호를 받거나 비난을 받는 상황들이 비일비재 하다.

한국 기업인 삼성이나 LG 등도 다국적 기업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기부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터넷에서는 한 푼도 기부하지 않았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아 한때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한국산 불매 운동을 벌이자'라는 험악한 목소리들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며칠 전 중국 최대의 건설업체인 완커 그룹 회장인 왕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기부금 관련 글을 올렸다가 된통 혼쭐이 났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기부금이 기업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직원들에게도 10위안 이상의 기부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등의 발언을 남겼다가 곧바로 "도대체 양심이 있는 기업가냐"라는 여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 뒤 그는 "당시 구체적인 지진 피해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한 말이었다"고 꼬리를 내리고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기부금 내역에 중국 여론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까르푸 불매 운동 당시 불참자들을 향해 '매국노'라고 욕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이번 지진 관련 기부 운동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왜곡되고 과장된 애국주의 혹은 민족주의 정서가 이번 기부금 모집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기부라는 것은 개인들의 선한 동기에서 비롯되는 자발적인 행위임에도, 그것을 사회적 분위기나 여론의 압력을 통해 강제되는 모금 운동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중국 쓰촨성 두장지안시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후 병원 바깥의 임시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다.
 중국 쓰촨성 두장지안시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후 병원 바깥의 임시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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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쓰촨 대지진, #원자바오, #야오밍, #애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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