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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나는 내 감정을 숨긴 순간의 거짓말로 어쩌면 내 평생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을 친구를 잃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그 친구는 키도 작고 통통한데다 둥근 뿔테안경을 쓰고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기돼지’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 친구를 놀리거나 하는 의미에서의 별명은 아니고 그 친구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해낸 별명이었기에 그 친구도 아기돼지라 불리는 것에 대해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다.

아니 혹시 마음 속으로는 싫어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고등학생이면서 일찌감치 취업 중이었던 나와 그 친구, 그리고 다른 또래 친구들은 모두 같은 회사에 근무하면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사춘기 또래들이 모이다보니 언제나 기숙사 안은 시끌버끌하니 활기가 넘쳤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다보니 서로의 일거수일투족도 훤히 들여다 보였다. 또 또래들끼리라고 해도 몇몇 친한 아이들끼리 그룹도 생겨났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친구는 매일 회사일과가 끝나면 내가 생활하는 기숙사방으로 찾아와 우유나 쥬스 등의 음료수를 하나씩 건네주기 시작했다. 그 친구의 호의에 나는 ‘고맙다’는 말도 채 못하고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친밀감을 표시하는 일이 낯설었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누군가 옆에서 사춘기에 한 번쯤은 겪을 수 있는 감정적인 일이라고 조언을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당시 내 주변에는 그런 조언을 해주는 이가 없었다.

대신 “그 아이가 너를 좋아하나 보다, 너는 좋겠다”라는 등의 약간은 놀림 섞인 언니와 친구들의 반응들이 있었을 뿐.

나는 주변의 그러한 반응 속에서 어떻게 그 친구를 대해야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정말 혼란스러웠다. 여자들끼리 생활하는 기숙사인지라 20여년 전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도 ‘레즈비언’이니 ‘동성애’니 하는 단어들이 오고가기도 했다.

그런 속에서 혹시라도 그런 식으로 오해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후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내게 “그애가 매일 음료수도 갖다주면서 널 찾아오는 걸 보니 너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너도 그애 좋아하니?”라고 물었다.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덜컥 겁이 난 나는 “아니, 나는 걔가 별로 안 좋고 매일와서 음료수 주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걔한테 싫다는 말을 못하겠어”라고 대답해 버렸다. 아마도 혹시라도 받을 수 있는 오해로부터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내가 했던 말은 그 친구의 귀에 들어갔고, 이후로 그 친구를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마주쳐도 애써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난 다른 친구들로부터 그 친구가 내말에 많은 상처를 받고 마음아파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정말이지 난 그때 그 아이나 나를 대하는 그 아이의 태도가 싫은 게 아니었다. 그 아이가 건네는 음료수도 싫지 않았다. 나와는 달리 그 아이의 밝고 쾌활하고 자기감정에 솔직한 외향적인 성격도 참 좋았다, 닮고 싶을 만큼. 어쩌다 그 아이가 항상 오던 시간보다 늦으면 기다려지고 궁금해지고 걱정되기도 했다.

다만 그 아이에 대해 같이 좋아 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왠지 망설여졌고 두려웠다고나 할까. 아마 사춘기 소녀의 치기어린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는데 나만 누군가로부터 일방적으로 좋아한다는 대시를 받고 있다는데 대한 우월감이랄까.

그 친구의 대시를 받아들일 경우 서로 좋아하는 것이 되니까 나만이 갖고 있는 우월감이 아무렇지도 않게 될까봐 애써 나는 싫어하는 척 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의 거짓말이 그 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됐고 난 어쩌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할 수도 있는 친구 한 명을 잃었다. 그 아이의 행동이나 그 아이가 베푸는 호의에 대해, 아니 그 아이의 감정표현에 대해 나도 같이 좋아해주고 웃어주면서 결코 그 아이가 싫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은 너무 아쉽다.

그때 그 아이의 이름이 ‘영숙’이었다. 지금도 가끔 한 번씩 쾌활하던 그 친구가 얼굴 가득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음료수를 건네던 그 순간이 생각나곤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의 거짓말이 생각나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그 친구는 그 회사에 오래도록 근무를 했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들을 통해 전해들었지만 나는 그 아이를 찾지 못했다.

내가 한 거짓말에 상처받았을 그 아이를 대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 친구를 만난다면 그때 나도 널 좋아했었다고, 네가 건네는 음료수가 참 맛있었다고, 넌 정말 나를 생각해주는 내 최고의 친구였다고, 너에 대해 항상 고맙고 네가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이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영숙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거짓말에 응모합니다.



태그:#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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