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토요일(23일),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로 나들이를 갔다. 목적지는 영종도 끄트머리에 자리한 을왕리 해수욕장. 가는 길에 영종도 기념 박물관에 들러 전망대에 올라 영종도 인근 바다를 구경했다. 영종도가 점점 가까울수록 뜨고 내리는 비행기의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와~ 비행기 뜬다."

 

나의 고함소리에 아이들은 작은 창문에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다 아홉살짜리 큰아이가 "나는 비행기 타봤다"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말에 일곱 평생 비행기라곤 타본 적이 없는 작은아이가 울먹이며 "나만 비행기 못 타보고"라고 하더니 "엄마, 비행기 타고 신혼여행 가는 거지?"라며 물었다.

 

"응" "그럼 나 시집 갈래."

 

이제껏 절대 시집 안 가고 엄마랑 백년 살면서 십만원씩 열 번 벌어다 주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던 딸이 갑자기 시집을 가겠다고 하니 뜨악했다.

 

"왜?" "나도 비행기 타고 싶어서'"

 

이유는 간단했다. 비행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타고 딸은 못탄 비행기, 왜?

 

물론 타보니 좋았다. 묵직한 쇳덩이가 구름 속을 나는 모습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행기 때문에 시집을 가겠다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사실 아홉살짜리 아들이 비행기를 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친정부모님과 나, 남편뿐. 그것을 본 사람도 증명해 줄 사진도 없다. 그 이유는 바로 거짓말 때문이다.

 

성실해 뵈는 남편을 따라 무작정 야반도주를 하고, 전국을 다니며 장사를 한 지 일년째. 설익은 복숭아를 보고 생 침이 도는 걸로 내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병원에 갔더니 역시나 임신이었다.

 

딸자식이 객지로 돈벌러 간 줄로만 알고 계시던 부모님께는 죄송했지만, 아이가 생긴 이상 더 이상 부모님을 속일 수는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남편과 함께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달려갔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대뜸 큰 절을 하며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데, 어느 부모가 "그러십시오"라고 하겠는가?

 

아버지는 예비사위의 절을 요리조리 피해다니시며 "댁한테 절 받을 일 없습니다"라고 하셨고, 엄마는 걸죽한 입담으로 "부모를 갖고 놀아도 유분수지…, 뭐시야 돈을 벌러가 야? 아나 돈이다!! 결혼이 아아들 장난도 아니고, 이것이 뭐여, 오살헐"이라고 하며 역정을 내셨다.

 

"결혼이 장난이고 오살헐... 빨리 날 잡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꺼낸 히든카드가 바로 아이였다.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안 엄마는 방금 전까지의 자세는 온데간데 없이 "배 불러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날을 잡아 아무도 이 사실을 몰라야 한다"고 했다. 하여 인사한지 보름 만에 남들은 여름휴가를 계획할 그 더운 날에 부랴부랴 날을 잡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지금이야 속도위반과 혼수가 동일시되지만 그 때만 해도 알려지면 남세스러운 일이었다.

결혼식 이틀 전에야 청첩장을 받아든 친구들은 한달 전 곡성에서 친구 결혼식에 참석할 때만 해도 남자친구가 없다고 시치미를 떼던 내가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어김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날렸다.

 

"너 혹시…."

 

이럴 때는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혹시 뭐? 야 늬들, 나를 그 정도로 밖에 안 봤다 이거지? 세상 사람이 다 속도위반을 해도 나는 안 그래~ 나는 선천적으로 남자 싫어한다니까."

"남자 싫다며 결혼은 왜 하는데?"

"그거야…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서 그러지. 너희들, 결혼은 가장 수익률이 확실한 보험이야. 돈 벌어다 줘, 평생 보호해줘, 먹여줘, 사랑까지 해주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보험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난 보험드는 거야~"

 

물론 이런 감언이설에도 안 넘어간 친구들은 나를 세워놓고 한 바퀴 돌아보게 하는 것도 부족해서 직접 배를 만지며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다행인지 당시 장사가 너무 힘들어서 평소 100근에 이르던 몸무게가 잠시 80근 대에 머물러 있어,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아니 '속도위반을 해도 배 안 나오는 여자'로 지내고 있었으니 제 아무리 더듬어봐도 밝혀지는 건 없었다.

 

남편의 '완샷'에 위기를 넘겼지만

 

그리하여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으나 문제는  피로연이었다. 친구 중 제일 괜찮은 녀석을 데려가는 벌로 남편친구들이 만들어 준 '벌주'는 사람으로서는 마실 수 없는 쓰레기였다. 물론 평소 같으면 그 쓰레기조차도 알코올로 소독해 버리겠다는 일념 하에 '완샷'을 했을 테지만, 말했다시피 난 예쁜 것만 보고 예쁜 것만 먹어야 하는 예쁜 예비엄마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 "나 속도위반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말함과 동시에 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다 아는 작은 마을에 부모님이 가장 우려했던 '몹쓸 소문'이 날 건 뻔했으니 말이다. 나 하나 손가락질 받고 욕먹는 건 괜찮지만, 나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부모님께서 욕을 듣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때, 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편이 술이 담긴 구두를 들더니 '완샷'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한 잔 더!!" 절대 마시지 못할 거라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쓰레기술을 '완샷'도 부족해 "한잔 더!"를 외치는 남편의 모습에 친구들은 장난기를 그만 접어야 했다.

 

남편의 재치와 배려 덕분에 피로연 자리는 그렇게 무사히 넘길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이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신혼여행에서도 아직 임신 초기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말도 탈 수 없었고 유람선도 탈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은 평소보다 더 힘들었다.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몸으로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친정에 갔는데 결혼식때 못 왔다고 부러 얼굴을 보러오신 동네 할머니께서 나의 뒷모습을 보더니 "쟈, 터 팔았는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말이 뭔지 몰랐지만 곧 엄마가 정색을 하며 "나는 딸 자식 그리 안 키왔습니더"라고 하는 말로 미루어 그 말이 임신했느냐는 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엄마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할머니가 가실 때까지 평소 싫어하던 줄넘기를 뛰어야 했다. 며칠 쉬었다 가려고 했건만, 할머니가 다녀가신 뒤 엄마는 부랴부랴 짐을 챙기시더니 당장 올라가라고 했다.

 

"친구들아, 속아줘서 고마워"

 

그렇게 쫓기듯 친정에서 나와 새 둥지에 도착을 했다. 그 동안 맘고생·몸고생 하느라 힘들어서 오히려 빠지던 살이 잘 자고 잘 쉬니까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룩해져 왔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한지 8개월 만에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게 되었다. 나의 출산소식에 친구들은 축하와 동시에 "너 혹시?" 하며 또 한번 의심을 품었지만 난 끝까지 허니문 베이비라고, 애가 성격이 급해서 8개월만에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우겨야 했다.

 

하지만 진실은 10년 전 주례선생님 앞에서 결혼서약을 할 때 여행가방을 들고 비행기 안에서 좌석번호를 확인할 때 2인분의 식사 앞에서 아쉬움을 달래야 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남편과 나 그리고 내 아이 이렇게 셋이었다.

 

"친구들아, 팔삭동이 내 아들 사실은 예정일보다 보름 늦게 나온 만삭둥이야. 잘 키워서 꼭 훌륭한 사람 만들어 이 비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아 준 너희들에게 탕수육 시켜주라고 말할게."

덧붙이는 글 | '잊을수 없는 거짓말' 응모합니다


태그:#속도위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