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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은 극단 '김동수컴퍼니'에 의해 2003년 초연된 이래 현재까지 20차 공연을 올리며 롱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간 이 연극을 본 관객수만 해도 특별, 지방순회 무대까지 합쳐서 15만 명에 이르니 책으로 친다면 스테디셀러 감이다.

 

'우동 한 그릇'에 담긴 배려

 

<우동 한 그릇>은 일본 작가 루리 료헤이(栗良平)의 1987년 동화 <한 그릇의 메밀국수>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줄거리는 단순하다. 일본에는 한 해의 마지막 날 '장수와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서' 메밀국수를 먹는 세시풍습이 있다고 한다.

 

어느 해 '북해정'이란 한 우동집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사내 아이 둘과 함께 들어온다. 낡은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은 그 여인은 여주인에게 몹시 미안해하며 우동 한 그릇을 시킨다. 주문을 받은 무뚝뚝한 용모의 남자주인은 0.5인분을 더 얹어서 내놓는다. 마음 같아서는 섣달 그믐날인데 인심 한 턱 쓰는 셈치고 3인분만큼 주고 싶지만 혹여 이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듬해 같은 날 이들 모자가 다시 찾아온다. 역시 추레한 옷차림에 가난한 자 특유의 피로감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들은 반갑게 맞이하는 우동집 주인은 지난해 가격 그대로 0.5인분을 더 얹어 따끈따끈한 우동 한 그릇을 내놓는다.

 

그 다음해 마지막 날 두 아들과 함께 찾아온 부인은 이번에 우동 두 그릇을 주문한다. 지난 해보다 더 푸짐한 우동을 먹는 두 아이를 보며 부인은 그동안 교통사고를 내고 죽은 남편이 남겨 놓은 빚을 다 갚게 되었다고 감사해한다.

 

이후 가난한 모자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우동가게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주인 내외는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섣달 그믐밤이 되면 그 모자가 앉던 식탁은 비워둔다. 과연 그 모자는 가난의 시련을 이기고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누구나 보고 싶은 동화 한 편, 연극적으로 '다르게' 말하기

 

<우동 한 그릇>은 언젠가부터 우리 주위에서 갑자기 실종된, 끈끈하고 따스한 인정을 정교한 연출로 빚여낸 예쁜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연극은 우동 한 그릇을 놓고 정담을 나누며 나눠먹는 다정한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준다. 작은 배려의 미덕을 잃어가며 오로지 더 많은 것을 더 빠르게 소유하려는 풍조가 만연된 사회에서 뭔가를 놓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감동적인 자극을 준다. 잔잔하게 진행되던 연극이 클라이맥스에 다가가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울음의 여울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 연극의 흥행 요인은 눈물샘을 강하게 자극하는 휴머니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목할 점은 진부할 지도 모를 이런 주제를 전달하는 그 말하기 방식이다. 김동수 연출가는 일본에서 빅히트를 친 동화 한 편을, 러시아 연극인 카마 킨카스의 <검은 수사>란 공연에서 힌트를 얻어 끌어낸 '소설 보여주기'란 그릇에 담아 내놓는다.

 

이를테면, 무대에 한 배우가 나와 "우동집 주인이 가게 문으로 다가가는 순간 문이 스르륵 열리고 낡은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은 여인이 두 사내아이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라는 대사를 치고나면 그대로 극중 행위가 진행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연기자는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와 연기자 역할을 번갈아 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전달방식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는 단순명료하다. 관객은 다음 이야기를 상상할 때 동반되는 긴장감에서 해방된다. 아가다 크리스티의 <쥐덫>을 볼 때처럼 복선을 찾아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관객은 연극과의 쾌적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극 속에 몰입된다. 

 

이것이 아동극도 아니면서 여타 연극에 비해 아동 관객이 많고 중년에서 백발성성한 노인까지 부담없이 보고 즐길 수 있는 특색이다. '부담 없고 감동적이되 진부하지 않은 연극', 이것이 <우동 한 그릇>의 대중적인 성공요인인 셈이다. 

덧붙이는 글 | 공연문의) 02-3675-4675
공연장소) 김동수컴퍼니 
홈피 : i-actor.co.kr


태그:#우동 한 그릇, #김동수컴퍼니, #장기흥행의 요인, #소극장 서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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