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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가 위기라고 한다. 매체 이용자는 줄고 덩달아 매출은 떨어진다.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그렇다면 잡지는 퇴물? 그렇지 않다.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잡지에 웃고 울고 감동 '먹는다'. 너무나 빠르고 얄팍한 시대. 잡지는 오히려 빛난다. 대한민국 잡지여 영원하라! [편집자말]
순정만화 잡지 <윙크>
 순정만화 잡지 <윙크>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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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순정만화 주인공들은 눈이 다 큰가?"

'우문'에 '현답'이 날아온다.

"만화 속의 아이들은 연기를 하고 있다. 순정만화는 풍부한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모든 감정이 큰 눈에 담겨 있다. 아이들은 그 큰 눈으로 독자와 '아이 콘택트(eye contact)'하며 소통한다."

'아이들'이라며 만화 속 캐릭터들을 자기 자식처럼 끔찍이 아끼는 오경은(36) <윙크>팀 차장. 1995년 서울문화사에 입사해 14년간 책을 만든 <윙크>의 산증인이다. 

순정만화 잡지 기자는 뭔가 다르다?

<윙크>팀 6명을 모두 만나기 전 오 차장은 귀띔했다. "순정만화 만드는 사람들은 (기자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를 것"이라고.

순정만화 잡지 <윙크>를 취재하기 전 설렜던 건 사실이다. <윙크> 곳곳에서 '윙크 편집부 미녀 삼총사', '윙크의 여섯 미녀' 등의 문구를 목도하기도 했지만, 왠지 순정만화 만드는 사람들은 만화 주인공처럼 '샤방한' 모습에, '순수한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드디어 <윙크>팀을 대면했다. 책에 쓰여 있는 대로 '미녀'였다(절대 강요당한 것 아님). 그러나 만화의 그들과는 사뭇 달랐다. 여섯 미녀가 자주하는 게임은 '요조숙녀' 게임이란다.

"가끔 오가는 말들이 거칠다 싶으면 '요조숙녀' 게임을 한다. 시간을 정해 놓고 비속어나 은어 안 쓰는 게임이다. 걸리면 100원씩 벌금을 내는데, 생각보다 많은 액수가 걷힌다."

환상은 금세 깨졌다. 19일 서울문화사(서울시 용산구 한강로)에서 적당히 현실적이고 적당히 거친(?) 여섯 '미녀'를 만났다. 이분들, 이름부터 참 독특했다.

<윙크>는 순정만화 잡지 1위가 아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배미선 기자, 김희경 미술 담당, 오경은 차장, 김영은 어시스턴트, 이승연 기자, 김유미 기자
▲ <윙크>를 만드는 사람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배미선 기자, 김희경 미술 담당, 오경은 차장, 김영은 어시스턴트, 이승연 기자, 김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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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질문 답변은 '배바지'가 해봐."
"'모퉁이'도 한마디 해야지."

혼란스러웠다. '배바지'는 뭐고 '모퉁이'는 뭐지? 게다가 '까리'도 있고, '올가미'도 있다. 신선한 '오산소'는 물론 약간의 향기가 느껴지는 '뽕이'도 있다.

"지면에서 우린 이런 별명을 사용한다. 독자와 친밀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윙크>를 창간한 1993년부터 별명을 사용했다. 사무실에서도 이렇게 서로 별명을 부른다."

입사 당시 다른 '오'씨 성 가진 선배와 구별하기 위해 O2, '오산소'가 된 오경은 차장이 <윙크>의 '별명 설화'를 설명해줬다. 독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소중한(?) 이름을 버린 <윙크>의 독자 사랑은 유별나다.

'잡지계가 위기'라는 전제하에 던진 질문에 <윙크> 팀은 "왜 이렇게 질문이 암울해요"라며 다그친다. 이렇게 자신할 만큼 아직 <윙크>의 독자층은 두껍다.

"요즘 웹툰이 발달했고 불법스캔본을 다운로드해 만화를 보는 경우가 많아 예전보다 판매 부수가 줄긴 했지만, 아직 열정적인 독자들이 많다. 독자 엽서도 꽤 많이 오고 있다. 15일 기다리는 재미를 느끼는 독자들이 여전히 많은 편이다."

오 차장의 말처럼 <윙크>는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순정만화의 전성기'였던 1993년 창간한 격주간 순정만화 잡지 <윙크>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당시 창간했던 대부분의 순정만화 잡지는 현재 폐간한 상태다. 오 차장의 말이다.

"<윙크>와 타 잡지의 다른 점은 작품의 퀄리티(질)가 높다는 것이다. 작품 질이 높으니 고정 독자가 생기고, 실력 뛰어난 만화가 지망생들이 <윙크>에 만화를 싣고 싶어하면서 우수한 신인을 꾸준히 발굴할 수 있다. <윙크>의 원동력이다."

역사가 깊은 만큼 사연 깊은 독자들도 많다. 비에 젖은 흰 바지가 섹시해 '배바지'가 됐다는 배미선(30) 기자는 "소녀에서 엄마가 된 독자, 딸과 함께 보는 엄마 독자, 철마다 편집부에 전복을 보내주시는 전남 완도의 독자 등 꾸준한 독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교도소에서도 독자엽서가 온단다.

철저한 독자관리와 수준 높은 만화로 많은 독자를 확보한 <윙크>. 당연히 순정만화 판매 부수 1위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란다. 적은 내부에 있었다. 오 차장은 "같은 서울문화사에서 출판하는 <밍크>가 순정만화 잡지 중 가장 잘 팔린다"고 말했다. 뭐가 다를까?

"<윙크>는 20대 초반이 주 독자 타깃인데 비해, <밍크>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타깃이다. 20대 이상의 성인보다 초중생이 책을 더 잘 사서 본다. 출판사에선 '(초중생 타깃) 학습 만화가 출판사의 기둥'이라고 할 정도다."

'만화기자'란 말 들어보셨나요?

<윙크> 팀을 총괄하는 오경은 차장
 <윙크> 팀을 총괄하는 오경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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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문제 한번 풀어보자.

'리니지', '레드문', '언플러그드보이', '궁', '꽃보다 남자', 열거한 다섯 개의 공통점은?

'리니지'와 '레드문'은 유명한 게임이다. 리니지는 아직도 수많은 마니아 및 폐인을 양성하고 있다. '언플러그드보이'는 1990년대 후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만화다. 주인공 '현겸이'는 당시 풍선껌 CF 모델로도 활동했다. '궁'은 드라마로 유명하다. 주인공 윤은혜와 주지훈은 스타덤에 올랐다. '꽃보다 남자'는 곧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다.

게임과 드라마로 알려진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윙크>에 연재됐던 만화라는 것이다. 연재된 만화는 연재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2차 판권'이란 이름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용된다. 이는 <윙크> 인기의 원동력이자 좋은 수입원이 된다.

현재도 <윙크>에 연재되는 '탐나는 도다(정혜나 작가)'가 서우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다. '궁'은 유럽·동남아 등 11개국에 수출되고 있다(드마라 '궁'은 끝났지만 <윙크>에선 아직 연재 중이다). 2차 판권이 이뤄지기까지는, 그 이름도 생소한 '만화 기자'가 한몫한다. 눈이 커서 '까리(눈까리)'라는 예쁜 별명을 가진 이승연(29) 기자는 "대한민국의 만화기자는 극소수"라고 전한다.  

만화기자의 주 임무 중 하나는 '작가 관리'다. 이 기자는 "보통 기자 한 명당 3~4명의 작가를 맡고 있다"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작가의 고민 상담과 연애 상담, 개인 재무 상담까지 해준다"고 말했다. 신인 발굴과 트레이닝도 한다. 이 기자는 "매년 신인 공모전을 열고 데뷔를 시킨다"며 "'언플러그드 보이'의 천계영 작가도 <윙크> 공모전 출신"이라고 전했다. 천 작가는 이후 '오디션'으로 인기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어 '피 말리는' 마감 이야기도 곁들였다.

"인터넷 없던 시절에는 작가가 원고를 직접 들고 와야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주고받는다. 작가를 직접 못 보니,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정전이나 컴퓨터 고장으로 원고를 못 받는 경우가 있고, 도둑이 컴퓨터를 훔쳐가 원고를 못 넘긴 경우도 있다. 마감 압박을 못 이겨 집 비우고 도망간 작가도 있었다."

<윙크>는 15일마다 발행되는 격주간지기에 '마감 압박'도 더 심하다. 작가가 늦게 원고를 넣는 경우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전화해서 요즘 불경기라는 걸 상기시킨다. 연재 종료된 만화를 언급하며 '왜 사라졌을까'하고 묻는다. 그때쯤 되면 우리가 '사채업자'된 것 같다.(웃음)" ("왜 사라졌을까"란 대목은 <개그콘서트>의 '많이 컸네 황회장'을 떠올리며 읽어보시길...)

만화가 들어오면 기자들은 꼼꼼하게 오탈자를 잡고 좋은 위치에 만화를 배열한다. 이렇게 작가와 만화기자의 '콤비플레이'로 한편의 잡지가 만들어진다. 2차 판권 판매에도 만화기자가 적극 개입한다. 잘되면 작가는 이름을 날리고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린다. 함께 만들었는데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작가에게 집중된다. 서운할 만도 할 텐데 아니란다.

오 차장은 만화기자를 한마디로 '독 짓는 늙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황순원 소설 <독 짓는 늙은이>에서 '좋은 독을 만들고자 하는' 노인의 마음으로 작가와 함께 작품을 만든다"며 "작품이 히트를 치면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까리' 이 기자가 큰 눈을 깜빡이며 거들었다.

"만화를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이 일 못한다.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놀면서 일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회사에서 만화를 보면 논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만화 보는 것이 일이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는다."

로맨스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윙크 패밀리'!

<윙크> 배미선 기자가 신인 작가의 작품 콘티를 검토하고 있다.
 <윙크> 배미선 기자가 신인 작가의 작품 콘티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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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 편집부 미녀삼총사와 함께 떠나는 겨울 여행! 멋진 겨울의 추억을 윙크와 함께 만들어봐요~♡'

<윙크>의 미녀들(누차 강조하건데, 절대 강요당한 것 아님)이 또 뭔가를 꾸미고 있다. 내년 1월 독자와 함께 겨울 여행을 간단다. 단체 패키지에 꼽사리 끼는 줄 알았다. 아니란다. '미녀삼총사'와 함께 여행하는 행운은 단 두 명의 독자만이 차지할 수 있다. 소규모 자유여행이다. 지난 9월에는 <윙크> 블로그도 개설했다. 재기발랄한 미녀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윙크>의 독자들은 심심할 겨를이 없겠다.

'독자'라는 말을 계속 쓰면 적당히 까칠하신 <윙크> 미녀들에게 한마디 들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는 패밀리"라며 오 차장은 '힘주어' 말한다.

"<윙크>가 독자를 가족(패밀리)이라 부른 지 벌써 13년이나 됐다. 우린 독자를 '윙크 패밀리'라 부르며 소통한다."

중국집에 걸린 진경산수화에서 구석 모퉁이가 맘에 든다는 발언으로 '모퉁이'가 된 김유미(28) 기자는 "누구나 꿈꾸는 로맨스가 이뤄지는 것을 보며 심리적 공감을 한다"며 순정만화의 매력을 말했다.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이면 누구든 '윙크 패밀리'가 될 수 있다. 남자도 상관없다. <윙크> 독자 중 '열성 남자 독자'도 많다고 한다. '언플러그드 보이'의 지율이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왕방울 눈'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러나 <윙크>의 여섯 미녀는 지율이의 눈보다 더 큰 마음으로 '윙크 패밀리'와 '마인드 콘택트(mind contact)'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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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윙크,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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