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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보물창고라며 옷을 고르고 있는 딸아이
 이곳이 보물창고라며 옷을 고르고 있는 딸아이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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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는 여자들의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설. 나의 딸의 치마길이는 평상시에도 워낙 짧았기 때문에 이 설이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경기가 어려울수록 화려해지고 싶어 한다는 여자들의 마음은 요즘 유행하는 꽃무늬가 가득한 옷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날씨가 아직 쌀쌀한데도 얇은 옷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나가는 딸을 보면 젊으니까 가능하구나 싶지 하다가도 용돈도 넉넉지 않을 텐데 어디서 저렇게 옷을 사나 싶어 물어보았더니 글쎄, "이건 3000원짜리고, 이건 5000원짜리고, 이건 내가 레이스만 단거잖아. 작년에 입던 거"라고 하는 게 아닌가.

멀쩡한 옷을 천원단위로 사면서 에누리까지 했다는 딸의 말을 들어보니 신통방통 하기도하고, 직접 솜씨를 발휘해서 리폼까지 해서 입는 딸이 대견하기도 해서 오늘은 딸을 따라가서 옷이나 한 벌 사줘야지 했더니 덜컥 구제가게로 가자고 하여 궁금한 마음에 따라가 보기로 했다.
               
다양한 옷들이 많아 딸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구제가게이다.
 다양한 옷들이 많아 딸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구제가게이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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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입구에 있는 구제가게,저렴한 가격대의 옷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딸이 시간나면 가끔 들리는곳이란다.
 시장입구에 있는 구제가게,저렴한 가격대의 옷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딸이 시간나면 가끔 들리는곳이란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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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명품구제' 집들. 예전에는 구제가게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느 때부턴가 구제가게로 바뀌었다. 불황에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않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한 방편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지나가면서 저런 우중충한 가게에 누가 들어가서 옷을 사나 싶었더니 그 먼지더미에서 옷을 고르는 것은 내 딸이 아닌가. 알레르기도 있는 녀석이 연신 재채기를 해가며 옷더미 속에서 눈을 뗄 줄을 모른다. 딸은  "여기가 숨은 보물창고"라며 창고 같은 가게 안에서 옷걸이를 넘기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동네에 구제가게들은 타깃이 아줌마들이잖아요. 작은 옷이랑 가끔 들어오는 귀여운 옷은 팔리지 않고 항상 한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그거 산다고 하면 주인아줌마도 좋아라! 하면서 몇 천원에 준다니까요~"
            
잘 어울리는지 맞추어 보고 있는 딸아이
 잘 어울리는지 맞추어 보고 있는 딸아이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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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가게인듯 가게주인과 서로 트고 지낸다며 웃음꽃이 핀다.
 단골가게인듯 가게주인과 서로 트고 지낸다며 웃음꽃이 핀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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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르고 고른다는 것이 꽃무늬 원피스 7000원, 분홍색 치마 6000원 합이 1만3천원이다. 치마도 7000원 달라는 사장님에게 애교로 천원을 에누리한 딸. 

계산하고 나오는 폼을 보아하니 가게 사장님들과도 안면이 터서 수다까지 떠는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쇼핑하러 가면 엄마랑 꼭 같이 가려고 했던 딸이 이렇게나 싹싹해지고 여우같아졌다니 나도 정말 옛날 사람들처럼 '시집가도 되겠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사실 오늘 쇼핑하러 가면서 딸이 입고 간 옷도 내가 10년도 더 전에 입었던 카디건이다. 젊었을 때 입었던 카디건을 딸이 입고 보니 산뜻하니 귀엽다.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카디건을 내가 입었던 당시에도 옷이 곱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지금도 그 화사함을 잃지 않고 딸아이의 봄패션에 제격이다.

게다가 같이 입은 치마가 알고 보니 내가 입던 치마를 리폼 했단다. 유행에 뒤처지던 긴 청치마였는데 어디서 찾아내었는지 긴 부분을 잘라서 레이스 하나 달아주니 기성복 못지않은 디자인이 되었다.

옷 한 벌 사면서 환경 생각까지 했다는 딸아이가 기특하기만 한데 그러는 사이 딸은 집에 들어와서 이옷 저옷을 꺼내가며 오늘 산 옷과도 맞추어 보고 입어본다.
        
6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옷을 골라온 딸은 화사한 꽃무늬옷을 입어보며 흐뭇해한다.
 6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옷을 골라온 딸은 화사한 꽃무늬옷을 입어보며 흐뭇해한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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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구입한 구제옷을 입어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딸, 사랑스럽고 귀엽다.
 싸게 구입한 구제옷을 입어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딸, 사랑스럽고 귀엽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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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딸아이와 백화점을 드나든 것도 참 오래되었다. 자식들이 머리가 컸다고 이제는 나의 간섭 없이도 옷을 척척 사오는 걸 보면 잔소리가 목까지 차오지만 아이들 각자 개성이 있고 취향이 있다고 생각하며 뒷짐 지고 본 지가 몇 년이 된 것 같다.

그 사이 딸은 환경까지 생각하면서 값이 싼 옷으로 자기 개성을 살리려고 무던히 발품을 팔아 돌아다녔구나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아무리 불황이어도 스타일은 포기 못해요. 예전에는 계절이 바뀌어서 옷장정리를 할 때 이 옷은 유행이 지나서, 이 옷은 단추가 하나 없어서, 이 옷은 어느 부분이 불편해서 등등의 이유로 버린 옷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한 번 더 생각하고 어떻게든 입으려고 노력해요. 조금만 손봐서 입거나, 동대문 가서 단추 세트로 사오면 되니까. 덕분에 동대문 종합시장에 가는 일도 많아졌다니까요."

그리고 딸아이는 동네 구제가게 뿐만 아니라 인터넷 중고거래 카페도 많이 이용한단다.

"평상시에 입고 싶었던 옷이 있었는데 때를 지나서 못 샀거나, 인터넷에서도 품절되었거나, 가격이 너무 높아서 못 샀던 옷들은 중고거래 카페를 이용하면 구할 수 있을 때가 있어서 자주 이용하는 편이에요. 사람들이 자신에게 안어울리거나 맞지 않아서 파는 경우가 많으니까 옷 상태도 아주 좋고요. 하지만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거래인만큼 위험부담이 커서 믿을 만한 카페에서만 거래하는 편이구요." 

중고거래 카페에서 구매뿐만 아니라 판매까지도 하고 있는 딸이 가끔 나에게 옷 입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때가 있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올봄에는 여기저기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날이 풀리는 대로 딸과 함께 벼룩시장도 구경하고 참가해볼 생각이다. 불황에도 스타일을 포기 못하는 개성 강한 딸이 불황 덕에 더 돋보이는 것 같아 대견스럽고 예쁘다.                    

덧붙이는 글 | '불황이 OOO에 미치는 영향' 응모글



태그:#구제가게,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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