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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 정말 이혼할까봐. 요즘 우리 남편이 날 아주 볶아 먹는다니까. 주식 잘될 땐 마누라가 복덩이라며 대놓고 좋아하더니만 요즘 안 된다고 어찌나 내 탓을 하는지 정말 치사해서 못살겠어."

 

"말도 마. 나도 집값만 오르면 서방인지 남방인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동안은 집을 사든 팔든 한번도 관심도 갖지 않던 인간이 요즘엔 내가 집 잘못 사서 집값 떨어지고 이자 부담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면서 나만 보면 성질인 거 있지."

 

"말도 마라. 인테리어 하던 수진이 아빠 있지. 요즘 일이 없어서 거의 쉬고 있잖아. 수진이 엄마가 남편 밥 해대느라 꼼짝없이 집에 있는데 남편이랑 마주 보고 있다 보니 싸움만 한다더라. 돈도 못 벌어오는 건 좋은데 좁쌀영감처럼 잔소리를 하도 해서 미치겠대."

 

"이 불황 언제까지 가려나? 이러다 정말 나이 오십에 이혼한다 소리 나오겠어. 돈에 졸리니까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하루도 안 싸우는 날이 없고…. 사랑만 있으면 산다고?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해. 춥고 배고픈데 사랑은 뭔 사랑?"

 

"이혼은 무슨 이혼. 그래도 이러다가 다시 세상이 좋아져서 돈만 잘 돌아봐라. 이혼소리는 쏙 들어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죽고 못 산다고 하지…."         

 

부동산 호황, 주식 시장 활황일 때는 부부동반 골프를 하네, 해외여행을 가네, 뮤지컬을 보러 가네, 콘서트를 가네… 부부가 찰떡처럼 붙어 다니며 여보란 듯 꿀 찍어 먹는 금실을 자랑하던 분당 박 여사 부부와 강남 김 여사 부부가 요즘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결혼 25년이 넘도록 큰 실패 없이 재태크를 해온 덕에 남편 월급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생활비는 물론 애들 학원비, 과외비를 해결하고 심지어는 유학비까지 보태주던 그녀들마저도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세계적인 불황 한파에 버텨낼 힘을 잃고 하나, 둘 백기를 들고 있다.

 

더구나 남편들에게도 예외 없이 불어 닥친 불황의 한파는 잘 나가던(?) 한 가정을 얼어 붙이기에 충분했다.

 

불황 한파, 부부 금실까지 위협하나

 

IMF 구제금융 위기 때 정리해고를 당해 직장을 다시 구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다시 해고되거나 해고 위기에 놓인 중년의 가장들. IMF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이제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중년의 자영업자들, 소상공인들, 소자본 창업주들…. 이런 사람들이 줄줄이 하던 일을 멈추고 혹은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높아만 가는 물가를 따라 늘어가는 생활비, 커가는 학자금 부담에 졸업하고도 취직하지 못하는 아이들, 극복하기 힘든 참담한 현실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미래 속에서 경제적인 부담을 견디지 못해 이혼을 택한 경우는 이미 적지 않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석 달 동안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통해 이혼상담을 받은 여성 가운데 29%가 경제문제 때문에 이혼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전문가는 이것이 전년 상담 비율인 21%에 비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이며 경제난이 지속될수록 더욱 늘어갈 추세라는 평도 내놓았다.

 

경제난과 빚 독촉에 시달려 가족이나 부부가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도 간간이 들려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불황이라는 괴물이 물질적인 궁핍 뿐 아니라 인간성 파괴마저도 불러올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소규모로 하청가구공장을 경영하던 친구가 크게 부도를 맞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닥에서 시작해 열심히 일구어 온 공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잘 자라던 세 아이마저 시댁으로, 친정으로, 시누이집으로 더부살이를 보냈다던 친구는 한동안 억장이 무너져 실어증까지 걸렸었다.

 

"애들 때문에라도 살아야 하는데…. 나와 애 아빠는 어른이니까 어떻게든 이겨낸다 치지만 애들 잘못될까 가장 걱정스러워. 한참 공부할 나이에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부모로서 할 말이 없다. 그나저나 애 아빠랑 나랑 할 일을 찾고 있는데 일자리도 없는 거 있지. 워낙 문 닫는 가게들이 많아서 허드렛일 하는 자리도 귀하다더라."

 

친구들 몇몇이 십시일반으로 작은 성의를 보탰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산다는 친구. 불황이 지속될수록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서민들은 숨이 가빠질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가정들이 불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불행한 선택을 하고 있는 지금 더 많은 가정과 아이들이 위기로 내몰리기 전에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함께 살 방 한 칸이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가족들, 학비가 없어 학교를 쉬어야 하는 아이들, 급식비를 내지 못해 점심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 몸이 아파도 병원비가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노인들이 늘어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들 불황의 늪에 빠진 국민들을 위한 긴급구호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불황이 00에 미치는 영향' 공모글 


태그:#경제불황,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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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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