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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살다보니 서울에 올라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도 이번에 짬을 내어 학술대회 및 박물관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 이틀간 올라와서 머무르기로 하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시청광장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서울로 올라온 시간이 꽤 늦었던지라 노제에 참여하긴 힘들었다. 하기에 29일은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하면서 29일에 있었던 영결식과 노제, 그리고 시민들의 촛불집회 등의 모습을 보면서 괜스레 후회되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로서 과거의 역사만을 보기보다, 현재의 역사 또한 보고 느껴야 된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30일날 아침 발걸음을 옮겨 서울시청으로 향하였다.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방송이나 인터넷으로만 보던 대한문 분향소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온라인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내 상상을 초월하였다. 서울시청에서 난 상상치도 못한 모습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상상하지도 못한 현실을 맞닥뜨리다

 

 

아침 9시가 넘어 시청역 1번 출구로 나오자 그만 어안이 벙벙하였다. 시청광장을 메우고 있는 경찰버스 때문보다도 침통의 고요함이라는 기괴한 느낌 때문이었다. 이런 침통함은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한문 분향소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찾은 곳이었지만 대한문 분향소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내가 직접 맞닥드린 모습은 그동안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보던 그런 모습이 아닌, 말 그대로 폐허로 변해버린 분향소 모습이었다. 가운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탁자 등으로 분향소의 구색을 갖추었지만 무너진 천막과 부숴진 집기들, 난잡한 모습은 그야말로 상상을 깼다.

 

곳곳에서 탄식소리와 통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망연자실하게 현장을 바라보는 시민들, 꾹 다문 얼굴로 조문객들을 받는 자원봉사자들, 조문을 하기 위하여 줄지어 대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쁜 기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밤을 샌 듯 피곤한 모습의 시민들도 여럿 보여 밤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날 새벽에 있었던 일들을 큰 소리로 말하며 분을 토하는 아저씨와 언론의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5시 30분경 경찰들이 서울광장에 있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내쫓으면서 이곳 분향소도 발길질을 하였다고 한다.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고 그 과정에서 영정과 화환 등이 쓰러졌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시민들은 현장에 기록하였고, 또한 그러한 경찰들의 만행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찾은 그 시각. 수백 명의 시민들은 다시 이곳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지키고자 하였다. 불과 거창한 국민장을 치른 지 하루 만에 만신창이가 된 분향소. 이게 바로 현대사의 모습인가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애통하였다.

 

한 아저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한 상태로 십 분이 넘게 흐느끼고 통곡을 하였고, 주위 사람들은 이를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사마저도 짓밟은 경찰들에게 크나큰 분노를 자아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 가운데에서 학생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학생들, 잘 봐둬. 어른이라고 꼭 본받지만 말고, 본받을 건 본받되, 배우지 말아야 할껀 배우지 말라고. 그리고 오늘을 잘 새겨둬. 이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니깐."

 

 

 

"학생 오늘을 잘 새겨둬, 이게 바로 우리 역사니까"

박물관에서 특별전을 관람하고 난 후 일부러 시간을 약간 조정하였다. 내려갈 기차표를 이미 끊어놓은 상태였지만 시청광장의 모습을 또 한 번 보고 싶었기에 1시간 정도의 여유를 가졌었다. 다시 시청광장으로 가고, 아침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후 3시 30분경 내가 다시 대한문 앞을 찾았을 때, 1번 출구에는 경찰들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다시 대한문 분향소로 가니 아침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언뜻 봐도 수백명, 혹은 천여 명이 넘는 인원이었고, 이들의 모습은 아침보다 격양되어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추모를 하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고 현장은 아침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약간은 복구되었지만 대부분 시민들에게 그 현장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그대로 둔 곳이 많았다. 그리고 새벽의 만행에 대한 분노의 글과 현수막들이 여기저기에 걸려있었다.

 

'군홧발에 밟힌흔적 현장보존! 해 주세요'

'49제까지는 여기는 아름다운 곳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인가?'

 

자원봉사자들 중에서도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돋보였다. 학생들은 생각보다도 많이 보였는데, 이들 모두가 이번 사건에 대해 애통하게 생각하고 또한 분노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작은 손을 보태어 분향소에 큰 힘이 되주고 있었다. 이렇게 모여 있는 가운데 갑자기 한 아저씨가 이곳으로 달려오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지금 학생들이 경찰들에 의해 출구에 막혀 있습니다. 모두들 가서 학생들을 도와줍시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모두들 그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나로서는 잠시 망설였다. 이곳에 오래있기엔 기차표 시간 때문에 크게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장을 살펴보자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을 때 그만 깜짝 놀랐다. 수십 명의 시민들이 1번 출구로 몰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청년이든 학생이든, 여성이든 노인이든 상관없이 모두들 주먹을 꽉 쥐고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폭력경찰 물러나라!" vs "정부 지시기에 어쩔 수 없다"

 

이미 백여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1번 출구에 몰려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폭력경찰 물러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

 

수많은 시민들이 손을 들고 구호를 위치고 이미 몸싸움도 벌어진 상황이었다. 여기에 시민들이 한꺼번에 합류하자 경찰 측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이미 방패로 방어를 하면서 출구를 봉쇄하고 있었고, 시민들은 그런 경찰들을 밀고 있었다. 곳곳에서는 "으쌰, 으쌰" 거리면서 집단적으로 힘을 내어 밀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민들에는 청년, 학생, 스님, 여성 등 이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수였다.

 

나또한 인파에 밀리면서 어쩌다보니 제일 앞자리로 가게 되고 몸싸움에 끼기도 하였다. 출구 아래의 학생들 또한 경찰들을 밀면서 올라오려고 하고 있었다. 경찰들의 얼굴에서도 이렇게 시민들과 부딪히기 싫어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몸싸움보다 대화로서 시민과 경찰이 서로를 설득시키려는 모습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여러분 이러지 마세요. 이러다가 정말 사람 다쳐요!"

"왜 출구를 막고 있는 것입니까?"

"저희도 여길 막을 수 밖에 없어요!"

"어서 비키세요. 시민들이 길을 지나가야하지 않습니까?"

"아저씨, 우리도 정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왜 우리가 이렇게 싸워야 합니까? 도대체 누굴 위해!"

 

급기야 한 여학생은 울음을 터트리기까지 하였다. 경찰과 시민이 왜 서로 싸워야하냐면서 울먹이면서 길을 비켜달라고 하였다.

 

"잘못했어요. 그니깐 길을 비켜주세요. 이렇게 싸울 필요까진 없잖아요."

 

몸싸움이 일어났다가 다시 소강상태가 되어 구호를 외치고 설득을 하거나 하는 장면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몸싸움이 일어나는 와중에서는 아찔한 장면들도 더러 보였다. 몇몇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끌려나와 무장해제를 당하고 그러한 경찰들에게 시민들은 폭행하지 말라면서 감싸주고 한쪽으로 비켜서게 하였다.

 

그리고 서로 간에 물병이 날아가거나 지하철 아래에 물을 뿌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소 폭력적인 대응을 자제하라면서 흥분한 시민들과 경찰들을 막아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10분정도 다소의 소란이 있자 경찰 쪽에서는 전경들이 투입되었다.

 

전경들은 헬멧과 방패를 들고 다시 길을 가로막았으며 또다시 몸싸움이 일어났다. 분노한 시민들은 전경들에게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성토하기도 하였고, 흥분한 전경들은 방패와 경찰봉으로 시민들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이명박이 쪽바리한테 충성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어."

"그따위가 대통령이야! 일국의 대통령이야!"

"노짱 만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섣부른 몸싸움으로 서로 피해를 보지 않게하기 위해 시민들과 경찰들 사이에서 막아서는 것 밖에는 없었다. 시민들의 이미 강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고, 또 경찰들에게 강한 불신을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맨손이었고 또한 다수는 서로의 싸움을 막기 위해 몸을 던져 막아서고 있었다.

 

나로선 이곳에 오래 있기엔 사정이 힘들었기에 할 수 없이 먼저 자리에서 떠야했다. 곳곳에서 시민들은 몰려오고 또한 이렇게 된 정부를 욕하며 현실을 개탄하고 있었다. 나중의 보도를 보면 이후 시민들과 경찰들의 대치는 계속 되었고 강제진압이 이뤄져 70여명이 잡혀갔다고 한다. 이게 바로 2009년 현재의 대한민국이리라.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정치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그 와중에 우리가 흠모하는 큰 정치인마저 운명을 달리하셨다.

 

이제 또다시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작년보다도 더욱더 시민들이 분노하고 또한 정부를 성토한다. 싸움의 결과는 모르지만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는 강하게 추락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정치적 타살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루고, 국민장 하루 만에 경찰의 강압적인 태도에 시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경찰은 진정 국민들의 뜻을 알고 그에 맞춰 강압적인 태도가 아닌, 같이 대안을 모색하고 존중해야 하는 태도를 보여야한다.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 시민과 전경들의 몸싸움. 5월 30일 낮에 일어난 시민과 전경들의 몸싸움입니다. 시민들은 '폭력경찰 물러나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이들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몸싸움의 원인은 경찰들이 1번출입구를 막은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 송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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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5월 30일에 서울시청을 2번 방문하였습니다. 시간 관계상 많이 있진 못하였지만 그때 겪었던 일들을 소상히 적어보았습니다.


태그:#대한문 분향소,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서거, #경찰, #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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