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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타잔처럼 밧줄을 타다 강으로 다이빙을 한다.
 이렇게 타잔처럼 밧줄을 타다 강으로 다이빙을 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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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오르는 아이, 왜?
 나무에 오르는 아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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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즈의 하루하루는 너무나 짧았다. 국토가 워낙 작다 보니 단 일주일이면 자전거로 다 돌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오래 머무를 이유도 없었다. 키 코커 섬 이외에는 따로 볼 것이 없었고, 그나마 다른 중미에 비해 가격도 비싸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부담스런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내면 깊숙한 속살을 보고 싶었지만 여행의 모든 포인트를 집약시켜 놓았다는 과테말라라는 중미의 매력덩어리를 눈앞에 두고 지체하는 것도 아니다 싶었다. 나는 얼른 과테말라로 가기 위해 벨리즈와 과테말라의 국경 마을로 이동했다. 

국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강에는 삶의 생기들이 넘쳐났다. 인류의 발전이 물과 함께였다는 사실을 주지하지 않아도 언제나 물이 있는 곳에는 희망도 같이 있었다. 강의  물줄기를 따라 두 바퀴도 같이 흐름을 따라간다. 나무에 올라가 밧줄을 타고 다이빙 하는 애들, 강에서 멱 감는 청소년들, 낚싯대를 드리우고 낮잠 자는 남자, 그리고 빨래하는 아낙네들.

"와서 같이 수영하지 그래!"

물놀이 중인 벨리즈 아이들.
 물놀이 중인 벨리즈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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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녀석들이 내게 손짓했지만 잠깐 한 눈 파는 사이 물건을 도둑맞을 수도 있는 까닭에 가볍게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 자전거를 위에 두고 내려와 물놀이를 해야 해서 긴박한 순간에 눈 뜬 장님이 될 수도 있었다. 지난 멕시코에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에 카메라와 캠코더를 눈앞에서 빼앗겼던 아픔이 떠올라서다. 대신 이들의 장난기 어린 물놀이에 마음껏 시원한 대리만족을 느끼며 여유를 즐겼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점점 날씨가 우중충해졌다. 는개 사이로 스며든 쌀쌀함이 온 근육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옷까지 젖어가는 마당에 무리하지 않고 하루 더 벨리즈에 있겠단 생각으로 국경 마을에서 하룻밤 쉬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곳은 성당.

다른 게 아니라 부활절 행사 준비로 분주한 모습들에 동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에너지 넘치는 삶을 좋아한다. 내 앞에 놓인 문제를 두고 무기력하고 냉소적인 태도보다 기꺼이 받아들이며 맞부딪히는 그런 마인드를 신용한다. 부활절 준비가 이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니만큼 바쁘기도 하여 여유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자전거를 타고 찾아와 준 나그네를 환대하는 모습에 마음을 뺏겼던 것이 머물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강에서 빨래하는 아낙네.
 강에서 빨래하는 아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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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는 교우들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세마나 산타 때 거리 행진을 할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가톨릭 신자로서 벨리즈 아이들에게 영어 및 다양한 교육을 가르치기 위해 온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프레즈비티어리언(장로교인)인 나도 이 축제를 위한 준비에 한 몫 거두는데 장벽은 없었다. 봉사를 하는데 신분, 계급, 인종, 종교 따위가 논의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고, 주말 행사를 위한 일손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은 화색이 돈 채 저마다 자신의 식기를 들고 와 훈제 치킨과 감자 샐러드의 환상적인 식사로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캐나다에서 온 한 청년은 자신의 방학 중 한 달의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온 다른 청년은 자신은 베지테리안이라면서 감자만 접시에 쌓아두고는 이 봉사가 끝나고 어디로 놀러 갈 것인지에 대해 들떠 있었다. 다들 지역은 달랐지만 한 가지 목적, 교육 단기 봉사를 온 멋진 청년들이었다.

저녁 시간에는 세마나 산타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건지 교육관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멜 깁슨이 제작해 화제가 되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였다. 나는 영화를 볼 건지 고민하다 앞에 몇 분만 보고는 조용히 뒷문으로 빠져 나왔다.

왜 보지 않느냔 수녀님 말에 이미 한국에서 봤노라 하며 핑계를 댔다. 사실은 스페인어라서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고(가뜩이나 기독교 용어가 어려운데 스페인어는 더더욱 그랬다), 멜 깁슨의 수작이라 일컫지만 이전에 봤을 때 기독교 대작인 미션이나 벤허, 십계만큼의 감동이 없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뭐랄까, 너무 감성에만 의존했다고나 할까.

비 오는 날 벨리즈에서의 마지막 자전거 여행.
 비 오는 날 벨리즈에서의 마지막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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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참으로 중요한 십자가 부활에 대한 메시지는 묻히고 영화 내내 그리스도의 수난을 포커스 삼아 자극적인 영상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보기 불편했다. 게다가 감성적으로도 미션에 비하면 한 수 아래였고, 스토리 라인도 벤허나 십계에 한참 떨어지는 점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한 마디로 다른 기독교 영화에 비해 재미도, 감동도 없었던 것이다.

혼자 빠져 나온 나는 매트리스를 펴고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피곤했음에도 달콤한 잠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비가 퍼 부으면서 모기란 온 동네 모기가 실내로 들어온 것이다. 처음에는 손으로 휘저어 보고, 이불로 몸을 감싸도 보았지만 이내 틈 사이로 가미가제 뺨치는 공격을 퍼 붓는 전투대원들로 인해 백기를 들어야만 했다. 짜증날 대로 짜증났지만 호통을 친다고 알아먹는 것도 아니고, 시골 마을이라 뿌리거나 향을 태우는 모기약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나는 진심으로 절규했다.

"노아는 왜 방주에 모기를 실었나?"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몰려오자 나는 구시렁구시렁 이 죽일 놈의 모기에 대해 불평을 쏟아놓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저 웃어넘기기만 했다. 그러면서 한 녀석이 농을 건넸다.

"모기가 너를 사랑하나 봐. 우리에겐 오지도 않더라고."

그러면서 유유히 몸에 바르는 모기약을 내보이는 것이다. 그 후로도 모기들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나만 물어 재꼈다. 샤워까지 했는데 도무지 영문을 몰랐다. 이거야말로 '패션 오브 문', 아니 '패션 프럼 모스키토'였다.

결국 견디다 못한 난 최후의 수단으로 확실한 예방책인 텐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공간이 넓은 실내에다가 텐트를 쳤다. 그제야 끔찍한 모기들의 공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여전히 텐트 바깥에는 지긋지긋한 모기들이 달라붙었다. 하지만 비로소 안락한 잠을 청할 수 있게 된 난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의 세계로 날아들었다. 벨리즈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세마나 산타(부활절) 준비로 분주한 자원봉사자들.
 세마나 산타(부활절) 준비로 분주한 자원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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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나 산타 준비로 교회 내부 장식 중.
 세마나 산타 준비로 교회 내부 장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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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벨리즈, #자전거 세계여행, #비전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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