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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설마 설마 했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걸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런 날이 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만 하면 오래 사신 것 아니냐고.

대통령까지 하고 가셨으니 할 건 다 하지 않으셨냐고.

입원하여 병환으로 가신 거니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그 분이 떠나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런 것들로 위안하려 한다.

(같은 '사람'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은

꼴통 잡것들의 망발들은 무시해버리면 그만이고.)

 

사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리고 누구와도 작별인사를 나누고 떠나지 못했던,

석 달 전의 이별을 떠올려 본다면,

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는

저런 위안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고령의 연세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 분의 가심을 단순한 '노환'으로 삼을 수는 없다.

단순히 그 분이 여느 노인들의 마지막처럼

'자연사'하신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직접적 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 분이 돌아가신 건 바로 마음이 다쳐서 몸이 쇠하신

그야말로 '화병' 때문이라는 걸.

그런 든든한 '거목'도 시들시들 말라버려서

급기야 뿌리가 허하여 송두리째 뽑히고 말아 버린 것이라는 걸.

 

원래 집안에서 초상이 나면 가장 우려하는 것이

상주들의 건강이란다.

사람의 몸이란 건 신기하여 마음 따라 움직이기 쉽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곁을 떠났다는 그러한  '상심'이

자연스럽게 온 몸을 쇠하게 만들게 되므로

마음과 몸이 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걸 잘 다스리지 못하면 바로,

있어서는 안되지만,

잘 일어나기도 쉬운 '줄초상'으로 이어지기 때문.

 

우리도 5월의 그 황망함에 얼마나 마음이 다쳤는가.

그 때 김대중 대통령님은 오죽했는가.

누구나 알기 쉽게 표현하고,

짧은 말에 모든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아도,

그 어떤 화려한 수사보다 진실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그 '말 잘하시는' 분이 표현 한 말이

"내 몸의 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였다.

그 절절한 비통한 마음은 장례식장의 오열에서,

그리고 그 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로 대신한 추도사에서,

고스란히 다 드러났다.

 

자신의 뒤를 이은 대통령이 그렇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본인이 평생을 바쳐서 온 몸으로 표현했던,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남북통일이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화해 버리고 말았던,

대한민국의 현실을 차마 '눈 뜨고' 바라볼 수도 없어,

너무도 원통하고 답답했던 그 분의 심정이

온 몸으로 절절하게 다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 울화병이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지금 갖고 있는 그거.

그걸 김대통령님이 안고 가신 거지.

그야말로 속이 터져서.

 

노대통령 때에 비하여 많은 것이 차분한 건 사실이다.

그 분의 닉네임과도 같았던 '준비된' 대통령이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마치 당신의 서거를 준비하라고 배려하신듯

그 때에 비하면 덜 황망스럽기는 하다.

상상도 못했던 그 때와 어찌 똑같으랴.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만든

'벼랑' 끝에 몰려 있던 그 마음을 받아들일 때와 같을 수가 있으랴.

그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돌아볼 것을,

그렇게까지인 줄 알았으면 그렇게 무시하고 외면하지 말 것을,

국민들 가슴 가슴에 미안함을 남기게 했던 그것과 어찌 같으랴.

그 분의 그 삶이 우리네와 다를 바 없어 더 한탄스럽던

서글펐던 그 마음과 어찌 같으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때보다 더 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하던 그 분들을

결국 이렇게 죽음으로 몰고간 그들에 대한 마음이

마음 저 밑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석 달 전에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면,

지금은 가슴이 돌로 변하여 버린 것 같다.

우리가 받아들인 이 사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상을 논하기 전에

그들과 싸워야 하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평생을 '왜곡'과 '외면'과 마주하여 사셨던 분,

지금 돌아가신 이 마당에도 '빨갱이 수괴가 죽었네'라는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들으셔야 하는 분,

그를 도저히 정상적으로 이겨낼 수 없는 자들에 의해

반칙과 폭력과 탄압과 축출을 평생 안고 사셨던 분,

조국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더 인정하고 존경하고 사랑받았으나,

오로지 당신의 조국을 위해 포기하지 않으셨던 분,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 모든 것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포용하고 이해하셨던 분,

누구보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마음을 지니고,

자신이 믿는 그 절대가치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행동'하셨던 분,

 

그런 분을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거기 있을 것 같던 그런 '어른'이

이제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다.

그들에 의해.

장례 일정같은 것에서도 주판알을 튕기며,

잔머리를 쓰는 비열한 그들을 향한

마음 속의 차가운 분노가 아득히 다가온다.

 

이제서야 그 분꼐 편지를 드립니다

 

김대중 선생님.

당신의 공식 명칭은 '전 대통령'이시지만,

아직도 저희에게는 '선생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치를 시작하신

당신의 그릇을 어찌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만,

당신의 삶에서 인생을 배웠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치를 배웠습니다.

당신의 가치에서 사랑을 배웠습니다.

 

어린 시절 당신의 이름이 제 머릿 속에 각인되었던 건,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때였습니다.

구속과 가택연금으로 점철된 당신이

어린 제 눈에까지 미처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제 눈에 당신의 이름이 보여진 기간은

그야말로 봄처럼 짧고 강렬했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 그리고 사형선고,

곧 이은 미국망명으로 다시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그 이후 85년 다시 귀국한 당신에게는

늘 '재야인사'라는 이름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영웅의 대접을 한 쪽에서 받기도 했지만

다른 쪽에선 늘 '눈의 가시'처럼

온갖 비난과 오욕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87년 대선시 '김대중 비판적 지지'라는 말로 볼 수 있듯이

민주화 진영에서조차 유일한 선택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두 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대선에 출마했을 땐

'대통령병'에 걸렸다는 비아냥도 많이 있었죠.

하지만 당신을 믿고 표를 던진 우리는

결국 1997년 대통령 선거의 승리로 그 모든 걸 돌려 받았습니다.

 

투표라는 것이 '희열'이란 걸 줄 수 있구나를

체험하게 만들었던 1997년 겨울.

그 날의 흥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굳이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수식어가 아니더라도,

우리 손으로 뽑은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니,

그게 현실로 과연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티비를 통해 지켜보면서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었던 것이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그 흥분을 실감하진 못할 겁니다.

대통령이라고는 박정희밖에 없는 줄 알았던 우리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대통령이란 건

'그들끼리' 해 먹는 자리로만 알았던 우리가,

'우리' 대통령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그 감격을요.

 

네에, 다시 떠올려집니다.

지금은 마치 옛날 책에나 기입되어 있는 고루한 단어와도 같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말...

당신과 그 이후 당신의 뜻을 이은 그 분이 이뤄놓은 그것이,

마치 우리 주변의 '공기'와도 같이 늘 머무르고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잊고 살았습니다.

이제야 그것이 얼마나 목숨같은 가치였는지,

그래서 그걸 지키기 위해 정말로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했고,

실제로 목숨을 잃었던 무수한 분들을 마주했어야 했던,

그 시절의 우리가 이제야 다시 생각납니다.

당신이 가신 이 마당에

이제야 새삼 그것이 생각납니다.

 

재임 중에 이루어 놓은 공적은 굳이 다시 떠올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민주주의와 인권, 민족화합과 평화에 기여한

그 평생도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공'의 크기에 비교할 수 없는 '과'도 있으시지만,

그것을 여기서 따져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늘 주장하고 그대로 실천하셨던

'행동하는 양심' 그만으로도 얼마나 당신이 위대한지

그것만 다시 되새겨 보겠습니다.

평생을 다해 이뤄 놓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걸 바라봐야 하는 그 비통함 속에서,

그래도 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끝까지 '행동했던'

그 '양심'만 가슴에 새겨 놓겠습니다.

 

한 분이 떠났고,

이제 또 당신마저 떠나심으로 인하여,

소중한 '우리의' 10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행복했던 그 10년의 세월을

우리는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가치를,

당신이 그토록 나누고 살던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분노를 마음에만 담지 않겠습니다.

우리끼리 울고 화내지만 않겠습니다.

그것만이 잃어버린 우리의 10년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당신은 우리에게 죽음으로 보여주셨으니,

우리는 그걸 노력으로 답하겠습니다.

당신이 말했듯이,

투표로, 여론조사로, 담벼락 낙서로,

할 수 있는 우리의 모든 방법으로 말입니다.

 

김대중 선생님,

당신처럼은 못하더라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고문도 비난도 왜곡도 납치도 구속도 아무 것도 없는

저 위의 하늘 나라에서,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마시고,

무거운 짐 이제 내려 놓으십시오.

 

당신의 사랑을 맘껏 받고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국민들입니다만,

이제 우리가 하겠습니다.

당신은 저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안녕히 가세요.

우리 선.생.님.

 




태그:#김대중, #행동하는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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