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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MP3 어디 있어! 어라, 외장하드도 없네? 이것 봐라. 선글라스에 플래시에 아흑, 서...설마, 이런 가방에 꼼쳐놓은 돈까지!"

 

아침부터 에스텔리 소방서는 요란했다.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 막막한 허전함 투성이었다. 지난 밤 근무했던 소방대원 견습생들 모두를 불러냈다. 건들건들 말년병장 포스로 걸어 나오던 견습생들을 향해 다짜고짜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격한 서운함을 토해냈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 걸."

"나 역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모두들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처량하게 도난당한, 지릅뜨며 목울대를 세우는 자전거 여행자의 아픔을 누구도 포용하려 하지 않았다. 이미 누군가의 몰이에 걸려든 이상 빠져 나올 방법은 전무해 보였다. 심지어는 '횽아, 부자 나라에서 왔으면서 그까짓 몇 개 잃어버렸다고 투정임? 좀 더 자비로운 아량을 가지삼' 하는 채팅 언어로 나불대는 표정마저 읽을 정도였다. 무감각한 시선에 나는 일말의 자애로움마저 쏟을 기력이 소진돼 버렸다.   

 

좋다. 다 좋다 이거다. 하지만 외장하드는 가지고 가면 안 되는 것이다. 거기엔 지난 1년 간 내 자전거 세계일주의 모든 정보와 사진들이 들어있단 말이다. MP3고 돈이고 뭐고 다 가져도 외장하드만은 돌려달란 이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게 중요할 리가. 선과 악은 공존하되 타협할 수 없다. 마치 그것은 물과 잉크와의 관계 같아서 좋음에 나쁨이 섞여만 져도 나쁜 것이 된다. 그래서 동기도 선해야 되고, 과정도 선해야 되고, 머리는 아니라도 가슴은 결과까지 선해야 한다.

 

나는 불판 위에 올려진 낙지처럼 온 몸을 배배꼬며 사악한 분위기에 힘겹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낙지가 어떻게 최후의 발악을 하는지 지켜보는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다.

 

지난 밤 직감적으로 능글맞은 미소를 알아챘으면서도 몽롱한 피곤함은 상황을 유야무야 덮어버렸다. 유달리 요란하게 친절한 소방서 견습생들 덕분에 삐걱거리고 가운데가 푹 꺼진, 시트는 얼룩지고 그래서 벼룩이 신나게 활개 치는 침대 한 켠을 허락받았다.

 

샤워를 하고,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는 최고의 세레모니인 콜라 한 잔을 마시러 잠시 바깥에 나갔다 오고, 그 후 잠들고 눅눅한 실내에 햇살이 굿모닝으로 가슴에 파고들 때까지 나는 내게로 다가오는 비극적 스토리를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샤워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침대 주변에서 어슬렁 거렸고, 콜라를 사러 나갔다 왔을 때 가방이 흐트러져 있었던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굳이 변명하자면 사랑방 촛불보다 어두침침한 단 하나의 누런 백열전등 아래서 예민한 감각을 흔드는 수고로움을 겪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전에 그들의 상냥하고 선한 눈빛을 나는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누군가 내 침대로 와 가방을 건들었잖아!"

"네가 불편할까 봐 시트를 갈아준 것 뿐야."

 

실제로 시트는 간밤에 보던 거와 달라져 있었다. 아마 외출한 사이 갈아 놓았으리라. 괜히 호의를 베풀며 재워줬는데 화를 내면 어쩌면 미안해질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참으려고 했다. 어차피 외국에서 도난당하면 99.9%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건 그간 경험으로도 잘 알고 있었다.

 

천사의 가면을 쓴 트로이 목마의 습격이었다. 너무 허무했다. 니카라과는 가난하긴 하지만 도시는 또 다르다. 젊은 친구들은 우리가 누리는 거의 모든 전자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때문에 MP3가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외장하드는 분명 보기 힘든 장치이다. 아마도 겉보기에 돈이 될 만한 값어치가 보여 충동적으로 가져간 것 같다.

 

포기하고 그냥 떠날까. 그래도 뭔가 제스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만 한 채 10여분 정도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걸 그들은 제법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한 번 찾아보겠다고, 어딘가 네가 찾는 물건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각자 사무실과 도미토리로 들어갔다.

 

'어차피 몰입도 떨어지는 삼류 연기만 하고, 모른다고 잡아뗄 걸' 생각한 난 마른 웃음을 내뱉으며 긴 호흡으로 가슴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남미다. 깜짝 놀랄 대반전이 일어났다. 너무 완벽을 기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양심이 찔려 적당히 합의보려 했던 것일까.

 

갑자기 12살짜리 꼬마가 손에 뭔가를 들고 나왔다. 와우, 이런 세상에나! 분명 손에 들려있는 건 잃어버린 내 6GB짜리 MP3였다. 에릭이라는 녀석인데 마치 우연히 찾았다는 듯 큰 소리치며 MP3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의 늠름한 태도는 금맥 발견한 노다지꾼 뺨칠 기세였다. 

 

"어디서 찾았는데?"

"카를로스. 그 사람 옷에서. 사물함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우연히 뒤적거리다 찾았어."

"오호라, 카를로스의 옷에서? 그 녀석 지금 어딨는데?"

"몰라. 집에 있겠지."

"그래? 그럼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겠군."

"그 친구는 야간 근무 때 없었어."

 

옆에서 얘기 듣던 알베르토가 끼어들었다. 어설픈 디카프리오를 닮은 야간 근무조 책임자였다. 자, 이제 얘기는 좀 더 복잡해진다. 어찌됐건 찾아줬으니 고마운 마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 내가 다 죽여 버리겠다고 '허이짜 허이짜'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노트북과 DSLR 카메라는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또다른 시각에서 참으로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자, 이제 일단 범인이 나왔다고 치자. 카를로스 그 녀석 말야. 그럼 내 외장하드랑 나머지 것들도 걔가 가져간 거겠네."

"글쎄. 그 친구 옷에서 나오긴 했지만 그가 범인은 아닌 것 같아."

"경찰이 와도 못 찾을 것 같은데? 물론 난 아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적극적 협조도 경찰에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MP3 찾았는데 뭘 더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이쯤하자는 귀찮은 표정이 역력했다. 요것들이 비불발설(祕不發說)이라? 이럴 땐 영험한 독심술이나 솔로몬의 명민한 지혜가 아쉽다. 그들은 끝내 다른 물건 찾기를 거부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내가 스스로 지치게끔 유도했다. 이것은 조용한 매장이었다.

 

분명 키 작은 에릭은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사물함 위의 옷에서 찾아냈다, 그런데 다른 물건은 전혀 없었다? 더구나 그 카를로스 옷은 내가 머문 곳과 다른 숙소에서 나왔는데 에릭은 어찌 그리 용케도 빨리 찾아낸 걸까? 샤워할 때 내 침대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던 키 큰 녀석의 실루엣은 누구였지? 내가 말이 서툴고 잘 웃어주니 손쉽게 보였을까?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전진할 수 없었다.

 

그들은 프롬프터(prompter)가 되어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대사를 외우지 못한 배우는 커튼 뒤에 숨어 대본 읽어주는 프롬프터의 말소리만 따라할 수 밖에 없다. 설사 그들이 장난을 치거나 실수를 한다 해도 의심이 확신이 되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본을 모르는 배우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지금 내가 바로 그런 배우의 역할을 맡고 있다. 스페인어도 그렇다고 갓 들어온 니카라과의 문화도, 법도 잘 모르는 그저 풋내기 여행가의 배역을 맡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의지가지없는 신세는 아무런 저항도 그 어떤 항명도 할 수 없었다. 서글픈 역할이었다.

 

도심을 벗어나 한갓진 그늘 아래 자전거를 세워 두고 복잡한 머리를 나무에 기댔다. 출발할 때 구입한 콜라 한 모금 털어내며 요동치던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곤 나직이 속마음을 털어놨다.

 

"당신은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신다면서요? 솔직히 이건 많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쭙잖은 제 신앙심, 기분 따라 상황 따라 롤러코스터 타는 거 다 알면서…. 부디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세요."

 

괜히 그분에게 투덜투덜 하소연만 늘어놨다. 나만을 위한 특별한 위로가 그리웠던 거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은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처음 뉴욕에서 출발할 때가 생각난다. 그 맨해튼 센트럴 파크의 지는 노을 주변 퍼플빛 하늘 아래에서의 가슴 떨림, 설렘, 로망, 내 심장을 세차게 흔들었던 것들. 지금도 순수하게 느끼고 있는 건가?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는 곳을 가는 것을 사람들이 무모함이라 말한다면 나는 위험함을 껴안고 결과에 책임까지 질 줄 아는 것이 용기라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것 봐 당했잖아'라며 조롱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당신의 젊음은 진정 후회없는 최선이었는가'하며 뜨거운 가슴으로 묻고 싶다. 하필 왜 그런 곳을 자전거로 가느냐며 도리질하는 얼굴을 마주보며 '꿈!' 그 단 한 단어로 세상 누구보다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싶다.

 

결국 이 중대한 사건은 다음 도시의 레온 소방서에서도, 이전에 교제한 엘살바도르 안드레아 최 사장님의 국가를 넘어선 열렬한 도움으로도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하늘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신 또 다른 도전을 주었기 때문이다.

 

신이 젊음이라는 시간에 밉살스러울 정도로 태연하게 좌절을 삽입해 주는 것은 '그래서 결국'이라는 자기 합리화에 함몰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뜨거운 가슴을 가져보라는 값진 배려다. 상황을 역전시키는 선물을 낡고 헤진 고통의 보자기에 싸서 주는데 너무 많은 이들이 겉모습만 보고서는 그걸 발로 차 버린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자신은 보지 않은 채 문제를 야기한 상황 탓만 한다.

 

비록 아쉬움 짙은 사고였지만 난 분명 내 안의 울림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겨우 이정도 일로 멈출 거였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내 '모든' 것이었던 외장하드를 이젠 '겨우'란 표현을 쓸 만큼 난 회복의 시간이 빠르다. 느린 문제 해결 대신 조금 더 빠른 망각의 축복을 준, 기대대로 나만을 위한 특별한 하늘의 위로였다.  

 

'힘내, 넌 지금 비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야!'

 

예측불허 사고뭉치라 해도 젊음은 원래 이런 거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니카라과,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세계여행, #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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